[IS 피플] 20년 차에도 타율 0.340, 김재호의 '깨어 있는 야구'
차승윤 2023. 9. 6. 09:20
두산 베어스 유격수 김재호(38)는 올해로 프로 20년 차 선수다. 마지막을 준비할 법한 시기에 뜨겁게 활약 중이다. 타율 0.340 출루율 0.438로 KBO리그 어느 유격수들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다.
그런 김재호의 출전 경기 수는 65경기(두산 111경기 일정 소화)에 불과하다. 전반기만 해도 주전이 아니었다. 세대교체가 필요했던 두산은 이유찬, 안재석 등 어린 내야수들을 적극 기용했다. 하지만 전반기가 다 지나도록 이들이 자리 잡지 못했고, 돌고 돌아 김재호가 주전이 됐다.
김재호의 신체 능력이 후배들을 압도해서는 아니다. 김재호는 '천재 유격수'로 불리던 전성기 때도 신체 능력에서 동시대 라이벌 유격수인 오지환(LG 트윈스)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등에 미치지 못했다. 이들은 빠른 발, 강한 어깨, 20개 이상의 홈런을 치는 파워를 과시하며 '메이저리그급'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김재호는 다르게 접근했다. 그들처럼 한 걸음 더 빨리 달리진 못하고 더 빨리 방망이를 휘두를 순 없었다. 대신 상대 투수의 노림수를 읽어 타격했다. 상대 타자의 노림수와 경향성을 파악하고 한 걸음 먼저 이동해 쉽게 타구를 잡아냈다.
1985년생인 김재호는 곧 불혹의 나이가 된다. 전성기 때보다 힘이 떨어지는 지금, 20대 후배들이 김재호보다 힘이 떨어질 리 없다. 그런데도 김재호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는 "어린 선수들이 신체적인 부분에서는 확실히 이전보다 능률이 올랐다"면서도 "영상도 보고, 학원도 다니지만, 너무 정해진 대로만 (폼을) 만들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실전과 괴리됐다는 거다. 155㎞/h 이상을 던지는 영건이 늘어나고, 빠른 발과 힘을 갖춘 타자 유망주들이 팀마다 즐비하나 만개한 이가 드물다. 두산만 해도 최고 유망주로 꼽히던 김대한, 안재석 등이 여전히 알을 깨지 못하고 원석에 머무르고 있다.
김재호는 강하게 던지고, 강하게 치는 걸 부정하지 않는다. 대신 실전에서 스스로 풀어갈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야구는 선수들이 실전에서 스스로 풀어가야 한다. 그런데 후배들이 잘 치고만 싶고, 잘 던지고만 싶어 한다"며 "가령 투수라면 아무리 좋은 공을 가지고 있어도 타자와 싸울 수 있는 (정신적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후배들에게 그런 중요한 부분 하나씩이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김재호는 '화수분'으로 불리던 시절 두산의 두꺼운 선수층을 뚫고 1군 주전을 차지했다. 2004년 데뷔한 그가 주전이 된 게 2014년이다. 그와 함께 경쟁을 뚫어낸 양의지, 정수빈은 그때도 지금도 두산의 주축이다. 김재호는 "의지나, 수빈이, 나는 경쟁을 뚫고 고생하는 과정에서 경기를 푸는 법을 익혀가며 자리 잡았다"며 "최근 어린 후배들은 실전을 경험하면서 안 되면 '아, 안 되는구나'하고 잘 되면 '아 되는구나'하고 생각을 단순하게 마친다"고 했다.
김재호는 "깨어 있는 야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큰 스윙을 했을 때 공이 맞지 않으면 짧은 스윙으로 공을 맞히려 해야 한다. 투수가 컨트롤이 안 돼도 계속 세게만 던지려 해선 안 된다. 그건 마치 로봇 같은 야구가 아닐까. 현실에 맞게 투수와 싸우고, 타자와 싸우면 좋겠다"고 전했다.
차승윤 기자 chasy99@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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