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우리나라의 지방을 생각하다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2023. 9. 6.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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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작은 도시들이 유난히 아름답게 느껴진 이유

[김찬호 기자]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독일에서는 나름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덕분에 작은 도시에 들를 수 있는 기회가 많았죠. 아니, 생각해보면 반대입니다. 작은 도시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 독일에서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본이나 하이델베르크, 퓌센, 뉘른베르크, 라이프치히까지 여러 도시에 방문했습니다. 아, 라이프치히는 그리 작은 도시는 아니겠지만요. 그래도 베를린이나 프랑크푸르트, 뮌헨과 같은 곳에 비하면 아주 큰 도시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뉘른베르크 구시가
ⓒ Widerstand
독일 여행의 진짜 매력은 큰 도시들보다는 오히려 작은 도시에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크고 복잡한 도시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들만 가득했습니다. 높은 빌딩과 사람들이 가득한 대로 같은 것들이요. 강을 낀 도심의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독일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도시에서 기차를 타고 한 시간여를 나가면 어디든 작은 도시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전시장이나 박물관이 늘어선 도시가 아니라, 오래된 건물과 돌이 깔린 산책로가 있는 도시들이죠. 어딜 가나 높은 곳에는 중세의 성이 있었습니다.
도시만큼이나 오래된 대학이 있는 도시도 있었습니다. 하이델베르크처럼 도시의 이름보다 오히려 대학의 이름이 유명한 곳도 있었죠. 대학 탐방을 즐기는 입장에서는 이것도 아주 좋은 여행이었습니다. 누구나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즐기는 공원이 있었죠. 시청 앞에는 언제나 작은 시장이 열리는 광장이 있었습니다.
 
 라이프치히 시청 광장
ⓒ Widerstand
독일의 작은 도시들의 보여주는 풍경이 인상깊었습니다. 어느 도시에 가나 그 도시만의 매력이 있었고, 그 도시가 가진 컨텐츠가 있었습니다. 본에는 베토벤의 집이 있었고, 라이프치히에는 바흐가 일하던 성당이 있었습니다. 퓌센에는 동화처럼 아름다운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있었죠. 
어쩌면 이것이 독일이라는 국가가 가진 중요한 특징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독일은 중세의 신성로마제국 시절부터 주권을 가진 영주들의 자발적인 연합이었죠. 독일이라는 근대국가의 탄생은 곧 이 다양한 지역을 독일인이라는 하나의 민족으로 규합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독일은 유럽의 대표적인 연방제 국가입니다. 강력한 지방 분권 구조를 가지고 있는 나라죠. 독일 기본법 20조는 "독일은 민주적, 사회적 연방국가"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
ⓒ Widerstand
단순히 선언적인 것은 아닙니다. 독일의 정당은 중앙당보다 각 지역정당이 가지고 있는 힘이 큽니다. 독일 연방하원은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으로 구성됩니다. 지역구 의원은 물론 자신의 지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비례대표 역시 각 주별로 나누어 선거를 치르기 때문에, 지역정당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후보 선출의 권한을 지역정당에서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독일 연방상원이 구성되는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일 연방상원은 별도의 선거를 치르지 않습니다. 대신 각 주정부에서 인구에 따라 3~6명의 의원을 골라 파견합니다. 법률은 하원과 상원을 모두 통과해야 제정될 수 있습니다.
관료 집단도 그렇습니다. 독일 기본법 36조는 "연방의 최고관청에는 각 주 출신의 공무원이 적당한 비율로 채용되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선출직인 의원 뿐 아니라 중앙정부의 행정 관료들까지도 각 주별로 적절한 비율에 맞춰 채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죠.
 
 라이프치히
ⓒ Widerstand
정치뿐 아니라 경제 영역에서도 독일의 지방분권은 철저합니다. 기본법 106조 3항은 이렇게 규정합니다. "연방 및 주의 재정은 모든 지역에서 생활수준의 균형이 보장되도록 상호 조정되어야 한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독일의 주요 대기업은 그 소재지도 다양합니다. 당장 유명한 자동차 기업들만 봐도 그렇습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본사는 슈투트가르트에 있죠. 아우디의 본사는 잉골슈타트에 있습니다. BMW의 본사는 뮌헨에 있고, 폭스바겐의 본사는 볼프스부르크에 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
ⓒ Widerstand
어쩌면 제가 그저 독일의 도시 풍경을 좋아했을 뿐일지도 모릅니다. 이것을 독일의 분권과 자치 제도와 연결짓는 것은 너무 나간 해석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정치와 제도는 의외로 많은 곳에 흔적을 남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독일의 작은 도시들에서도, 한국의 작은 도시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저는 대학교에 다닌 4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만 살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지방에 살면서,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었던 기회는 썩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 사회는 서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생태계에 가깝다고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지방에 남아 학교를 다니고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열패감을 학습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죠. 내가 태어난 도시에서 성장해 자리를 잡고 삶을 꾸려나갈 기회가 허락되어 있는 땅이 한국에는 많지 않습니다. 그런 기회가 있다면, 한국의 도시들도 그 모습이 조금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하이델베르크 광장
ⓒ Widerstand
독일에서는 지방이니 중앙이니 하는 말은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를 중심에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제도적인 뒷받침도 있었습니다. 
작은 도시에서도, 사람들은 살고 있는 도시를 충분히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독일이라는 국가가 만들어진 기반이 바로 그 자긍심일 것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내가 사는 도시를 사랑할 수 있는 나라. 이것이 독일의 작은 도시들이 유난히 아름답게 느껴진 이유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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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CHwiderstand.com)>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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