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크닉] 프리즈·키아프 동시 개막, 거대한 팝업 스토어가 열린다

유지연 2023. 9. 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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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서울은 ‘아트’ 열기로 뜨겁습니다. 6일부터 9일까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아트 페어 ‘프리즈(Frieze) 서울’과 ‘키아프(Kiaf)’ 덕분이죠. 아트 페어는 말 그대로 미술품 장터입니다. 국내외 정상급 갤러리가 참여, 동시대 최고 작가들의 작품을 한 번에 만날 수 있어 지난해에 약 7만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고 합니다. 업계에 따르면 이 두 페어에서 단 4일간 6500억원 상당의 미술품이 거래됐다고 하네요.

〈지난해 '프리즈 서울 2022'의 입장을 기다리는 관람객들. 4일간 약 7만여명이 다녀갔다. 연합뉴스


‘단군 이래 최대 아트 행사’로 불린 흥행 기록 때문일까요, 올해 역시 프리즈를 앞두고 업계의 기대감이 큽니다. 미술계뿐만이 아닙니다. 비슷한 소비자군을 공유하는 패션·유통가에서도 9월을 ‘행사의 달’로 콕 집었죠. 9월 첫 주에 맞춰 각종 아트 협업 제품을 쏟아내고, 매장에서 전시 기획을 하는 등 연계 프로그램 준비에 한창입니다.

오늘 비크닉 레터는 프리즈를 더 풍성하게 즐길 수 있도록 패션·유통가 소식을 전하면서, 브랜드와 기업들이 왜 이렇게 아트 마케팅에 열심인지 분석해보려 합니다. 브랜드로 트렌드 읽기 시작해볼게요.


패션 매장에 전시된 만화경 달린 의자


지난 4일부터 MCM 청담 하우스에 열리고 있는 잉카 일로리 협업 전시 전경. 사진 MCM

서울 청담동 MCM 하우스(플래그십 매장) 1층에 들어서면 10점의 의자들이 반깁니다. 프리즈 기간에 맞춰 시작하는 ‘MCMX잉카일로리’ 프로젝트인데요. 잉카 일로리는 나이지리아 출신의 영국인 디자이너입니다. 화려한 색감과 경쾌한 작품으로 최근 세계적 기업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죠.

이 의자들은 영국에서 건너온 버려진 의자들입니다. 여기에 MCM 재고 가죽을 더해 ‘업사이클링’ 작품을 만들었죠. MCM 로고 패턴인 ‘비세토스’가 새겨진 작품들이 제법 귀엽죠? 의자마다 달린 동그란 렌즈도 관전 포인트입니다. 눈을 대고 들여다보면 꽃이나 구슬 등 작은 소품들을 발견할 수 있어요. 일로리는 4일, 기자 간담회에서 이 만화경에 대해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로, 각자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4일 기자 간담회에서 협업 전시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사빈 브루너 MCM 브랜드·커머셜 담당 임원 사진 MCM


약 1년여의 준비 끝에 펼쳐진 전시를 통해 MCM은 뭘 하고 싶은 걸까요. 같은 날 사빈 브루너 브랜드·커머셜 담당 임원은 “과거 세대가 올드한 명품을 좋아했다면 최근 세대는 새로운 의미의 명품을 찾기 시작했다”며 “MCM은 전형적인 럭셔리 브랜드가 아닌 특유의 목소리를 내는 브랜드가 될 것”이라고 밝혔죠.


무플보단, 악플…브랜드 ‘목소리’ 내기


브루너의 발언에는 최근 패션 업계가 예술 분야와의 협업에 발 벗고 나선 이유가 정확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바로 ‘젊은 세대’ 그리고 ‘목소리’죠.

요즘 브랜드에 대한 가장 부정적인 이미지가 무엇일까요. 바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브랜드’입니다. ‘악플’보다 ‘무플’이 무섭다는 얘기는 브랜드의 세계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어찌 됐든 계속해서 소비자의 머릿속에서 회자해야 살아남는다는 거죠. 물론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와 팬덤 형성을 위해서는 매력적인 목소리를 내야 하겠죠. 그리고 현시점에서 ‘문화’ ‘예술’만큼 장기적으로 브랜드의 가치를 올려주는 콘텐트는 없어 보입니다.

샤넬 코리아의 프리즈 후원으로 제작되는 ‘나우&넥스트’ 영상 시리즈 참여 아티스트. 사진 샤넬


그래서일까요. 요즘 문화 지킴이, 예술 후원자를 자처하는 브랜드가 많습니다. 협업 제품 발매가 아니라 아예 제품 판매와 무관한 사회 공헌 활동에 나서기도 합니다.

샤넬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한국의 젊은 예술가를 조명하는 ‘나우&넥스트(now&next)’ 영상 시리즈를 선보였습니다. 영상에서는 임민욱·홍승혜·문성식·이은우·장서영·전현선 등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기성·신예 예술가 간의 대화가 펼쳐집니다. 예술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돋보이는 콘텐트죠.

보테가 베네타는 한국 작가 강서경의 개인전, ‘버들 북 꾀꼬리’를 지원합니다. 프리즈 기간에 맞춰 한국 작가를 세계에 알리겠다는 목적의 후원 활동입니다.

보테가 베네타는 리움 미술관에서 열리는 강서경 작가의 개인전 후원에 나섰다. 사진 보테가 베네타


럭셔리 브랜드만이 이런 예술적 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닙니다. 유니클로는 8일 세계적 아티스트 카우스(KAWS)의 아트북을 발매합니다. 카우스는 현대 예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로 손꼽힙니다. 유명 출판사 파이돈과 함께 독점으로 발매하는 이 책은 파이돈의 컨템포러리(동시대) 아티스트 시리즈 중 한 편입니다.


고객 접점 늘려라, 프리즈 라운지 운영하는 백화점


프랑스 피아크·스위스 아트바젤과 더불어 세계 3대 아트 페어로 불리는 영국 프리즈는 2003년 런던 리젠트 파크의 천막 아래서 시작된 미술품 장터입니다. 미술 애호가들뿐만 아니라, 작품을 감상하려는 사람들, 문화를 체험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죠. 자연히, 문화를 매개로 이어지는 ‘소셜 플랫폼’ 역할을 하는 행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세계 3대 아트 페어 프리즈는 런던, LA, 서울에서 열린다. 사진은 지난 2월 열린 프리즈 LA 현장. 중앙포토


이런 플랫폼은 늘 고객 접점을 늘리기 위해 애를 쓰는 패션·유통 업계의 주요 관심사죠. 더구나 프리즈와 패션가는 비슷한 고객 집단을 공유하고 있고요. 패션 매체 BoF는 “프리즈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예술과 디자인에 관심이 많고, 창의적이며, 세련되고 부유하다”며 “이들은 패션 브랜드에도 중요한 고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신세계백화점은 프리즈 서울 공식 파트너로 프리즈 서울 현장에서 ‘신세계 라운지’를 운영합니다. 한국의 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간으로, 사전 초청된 우수 고객에 한해 이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온라인 편집숍 ‘W컨셉’도 프리즈 서울 행사장에서 고객 라운지를 운영합니다. W컨셉 관계자는 “최근 20·30세대 사이 국내 아트페어나 전시회에 대한 관심이 점차 커지는 추세에 참여를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프리즈 서울 2023 신세계 라운지. 사진 신세계 백화점

프리즈, 거대한 ‘팝업 플랫폼’이 되다


사실 브랜드와 아트의 동행은 더는 이슈가 되지 않을 만큼 흔해졌습니다. 그런데도 시간이 갈수록 패션·유통가와 예술계의 교류는 더 심화하는 양상입니다.

최지혜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 연구위원은 “요즘 소비자들은 대량 생산된 제품보다 한정판처럼 누구나 살 수 없는 희소한 가치에 대한 갈망이 높다”면서 “이런 상품군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예술품”이라고 설명합니다. 특히 풍요의 시대에 태어나 물건이 없어 본 적이 없는 젊은 세대일수록 이런 경향이 더 강하게 나타나죠. 흔해진 물건들 속에서 가치를 발견해야 간신히 지갑을 연다고 할까요.

유니클로는 8일 아티스트 카우스와의 협업 아트북을 발매한다. 사진 유니클로


이들은 흔히 ‘아트슈머(art+consumer)’로 명명됩니다. 단순히 예술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를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라, 소비를 통해 문화적 만족감을 얻으려는 소비행태를 통칭하죠.

기업이나 브랜드 입장에서는 공장에서 찍어낸 물건들을 팔지만, 공산품 이미지를 탈피하고 창의적이며 희소한 가치를 입히고 싶습니다. 이럴 때 예술만큼 좋은 외피는 없는 거죠. 게다가 신제품을 개발 및 출시하는 것보다 기존 제품에 시시때때로 예술 이미지를 더해 새롭게 보이는 것이 비용절감 측면에서도 더 나은 선택입니다.

지난 프리즈 서울 2022 현장. 관람객들이 각 갤러리 부스의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프리즈는 아트슈머들의 대표적인 놀이터로 평가받는 곳입니다. 특히 국내서는 트렌드에 민감하고, 소비력 있는 밀레니얼·Z세대들의 참여가 늘고 있어 보다 효과적인 마케팅의 장(場)으로 여겨집니다. 최지혜 연구위원은 “SNS 세대이기도 한 MZ세대는 시각적 비주얼에 관심이 많고, 문화적 감수성이 높은 편”이라며 “이들에게 결국 프리즈는 성수동에서 열리는 ‘팝업 스토어’와 비슷한 한시적 소통 창구이자 문화 유통 플랫폼”이라고 분석합니다.

어떤가요, 팝업 스토어라고 하니 프리즈에 대한 장벽이 확 낮아지는 느낌이죠? 요즘에는 패션 매장도, 아트 페어도 ‘살 사람 아니면 오지 마’ 같은 태도로는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그들은 ‘접점’을 원하고, 우리는 ‘체험’을 원합니다. 이번 주, 가벼운 마음으로 프리즈 나들이 한번 해보면 어떨까요?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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