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둥대는 국방부... '폭탄'이 된 박정훈 대령 영장청구서 [김형남의 갑을,병정]
[김형남 기자]
▲ 호우피해 실종자 수색작전 중에 발생한 해병대 고 채 모 상병 사망사고를 수사하다가 항명 등의 혐의로 군검찰에 입건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검찰단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
ⓒ 유성호 |
국방부검찰단이 지난 8월 30일 해병대 전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을 상대로 청구한 구속영장 청구서에는 의미심장한 내용이 담겨있다. 군검사는 박정훈 대령의 '항명' 혐의를 입증하겠다며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이 박 대령에게 구체적, 개별적으로 채 상병 사망 사건 기록 이첩 보류 지시를 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면서 군검사는 7월 31일 오후 상황을 설명한다.
원래 7월 31일은 해병대수사단이 전날 국방부 장관에게 결재받은 수사결과에 따라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포함한 8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민간 경찰에 이첩하겠다는 계획을 언론에 브리핑하기로 한 날이었다.
이날 임성근 사단장은 사단장 직무에서 배제된 상태였다고 한다. 그러나 오후 2시로 예정된 브리핑이 낮 12시 경 갑자기 취소된다. 국방부에서는 장관 주재 대책회의가 열렸으며, 수사 결과를 설명하러 국회에 가려던 해병대 부사령관도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장관 주재 대책회의에 불려 갔다. 오후 2시경의 일이다.
같은 시각 해병대사령부도 발칵 뒤집혔다. 전날만 해도 해병대사령관, 해군참모총장, 국방부장관이 순서대로 수사결과를 보고받고 결재도 했다. 언론브리핑을 진행하기로 한데다 국회에도 수사결과를 설명하기로 약속을 다 잡아둔 마당에 모든 게 전격 취소되었으니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장관 주재 회의에 참석했던 부사령관이 사령부로 복귀한 후, 해병대사령관은 회의를 소집한다. 오후 4시경의 일이다. 참석자는 사령관, 부사령관, 참모장, 공보정훈실장, 사령관 비서실장, 정책실장, 법무과장과 서북도서방위사령부 참모장, 그리고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이었다.
사령관은 이때 부사령관에게 장관 주재 대책 회의에서 듣고 온 국방부장관의 지시사항에 대해 설명하게 했고, 부사령관은 회의 참석자들에게 지시사항 4가지를 전달한다.
① 수사자료는 법무관리관실에서 최종 정리를 해야 하는데, 혐의자를 특정하지 않고 경찰에 필요한 자료만 주면 된다.
② 수사결과는 경찰에서 최종 언론 설명 등을 하여야 한다.
③ 장관이 8. 9. 현안 보고 이후 조사 결과를 보고하여야 한다.
④ 유가족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는 모두 구속영장청구서에 기재된 내용이다. 영장청구서에 따르면 국방부장관은 분명 8명의 혐의자가 특정된 수사결과를 수정해 '혐의자를 특정하지 않고' 이첩하라는 지시를 했고, 수사기관도 아닌 법무관리관실이 수사 자료를 최종 정리하라는 압력도 행사했다. 이는 그간 이종섭 장관이 '외압은 없었다', '혐의자를 넣어라, 빼라는 지시는 한 적이 없다'고 항변해 온 것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다.
▲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 남소연 |
그런데 지난 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한 장관은 영장청구서에 적힌 지시를 한 적이 있냐는 의원들의 질의에 "그런 적 없다"는 답을 내놨다. 희한한 일이다. 그럼 장관 지시사항을 진술한 해병대사령관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인가? 아니면 군검사가 박 대령을 구속시키기 위해 있지도 않은 장관 지시사항을 조작하기라도 한 것인가? 그런 적 없다는 장관의 말이 진실이 되려면 군검사는 가짜 영장을 꾸민 죄로, 해병대사령관은 허위 진술을 한 죄로 당장 수사를 받아야 한다.
군형법상 항명죄의 성립요건은 '명령이 개별적이고 구체적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걸 입증하려면 '이첩 보류' 지시가 구체적으로 있었다는 정황을 밝혀야 한다. 이 때문에 항명을 입증하려하면 할수록 '수사 개입'을 자인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는 순환구조에 빠지게 된 것이다.
채 상병 사망 사건과 관련한 대통령실, 국방부, 해병대 고위 관계자들의 말이 꼬이고 있다. 국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사람마다 앞뒤가 안 맞고 서로 말도 다른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일례로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8월 30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안보실 임무는 대통령의 국정 전체를 보좌하는 것이지 특정 사안의 수사 과정 디테일을 파악하는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채 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서 진상을 밝히고 조사를 잘하는 방법은, 사실은 안보실장인 제가 이 문제에 대해서 관여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며 대통령실의 수사 개입을 전면 부인했다. 조 실장의 말에 따르면 대통령실은 수사 과정 디테일을 파악하지도 않았고, 아예 이 문제에 대해 관여하거나 코멘트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에 앞선 8월 25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선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8월 2일) 안보실 2차장이 상황 파악을 하기 위해서 저한테 전화를 해서 관련 경과에 대해서 잠시 말씀드렸습니다"라고 답변했다.
전화가 온 시간은 해병대수사단이 수사 서류를 이첩하고, 국방부검찰단이 무단으로 이를 회수해 갈 무렵이었다. 수사 과정 디테일을 파악하지도, 문제에 관여하지도 않았다면서 안보실 차장이 직접 사령관에게 전화까지 걸어 경과 보고를 받았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다.
▲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지난 8월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 남소연 |
이처럼 말이 꼬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박 대령 영장 청구서에 적힌 내용은 이 사건과 관련된 진술들이 다듬어지고 만들어져 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장청구서에는 해병대사령관이 진술을 할 때마다 말이 바뀌는 게 그대로 적혀있다.
사령관은 국방부검찰단의 박 대령 항명 사건에 대한 참고인 조사 과정에서 1회 조사 시에는 '박 대령에게 이첩 보류 지시를 하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을 했다가 2회 조사 때는 갑자기 기억이 되살아났다며 "7. 31. 16:00 회의 때 조사결과 이첩 시기에 관한 언급이 있었는데 이전 조사에서 기억이 명확하지 않아서 오늘 그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이다"라고 했다가, 3차 조사에 이르러서는 "장관님으로부터 7.31. 기록 송부 보류 지시를 받고 그 이야기를 그날도 하고, 그다음 날도 하고, 기록 송부 보류에 대해서 명확하게 수차례 지시한 것도 맞다"라며 매우 세세한 이야기까지 다 기억해 낸다.
일생을 군인으로 살아왔고, 해병대를 총지휘하는 사령관이라는 사람이 민감한 사건과 관련한 지시를 했는지 기억을 못하다가, 며칠만에 갑자기 매일 매일 지시를 했다고 진술을 바꾸는 과정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참고로 8월 2일 오후 5시, 박 대령 수사를 맡은 국방부검찰단장은 본격적인 수사에 앞서 직접 해병대사령관을 찾아가 집무실에서 3시간이나 면담을 하고 다음 날 진술을 받아 갔다고 한다. 국방부장관 직할 수사기관의 장이 참모총장이나 사령관을 찾아가 장시간 직접 면담을 하는 일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진실을 꺾어 만들어진 말들은 결국 꼬이고 만다. 이번 주 들어 이종섭 국방부장관, 임종득 국가안보실 2차장, 임기훈 국방비서관의 교체설이 쏟아져 나온다. 하나 같이 말이 꼬이기 시작한 이들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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