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가 덕 쌓아야 본다? 지리산 일출 명당은 천왕봉 아닌 이곳
진우석의 Wild Korea⑥ 지리산 성백 종주
새벽 3시 성삼재 출발
사람들은 지리산에 얽힌 추억 때문에 다시 산을 찾곤 한다. 대개 고생한 추억이지만, 풋풋한 젊은 날이 담겨 있어 소중하다. 필자도 진한 추억이 있다. 학창 시절 쌀과 고추장만 들고 종주에 도전했다. 대피소에서 전라도와 경상도 아저씨들과 어울려 고기반찬을 배 터지게 잘 먹었다. 천왕봉(1915m) 넘어 대원사로 내려오다가 길을 잃고 난생처음 산에서 비박하기도 했다. 그때의 따뜻하고 고생스러운 기억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는지 모른다.
울퉁불퉁한 능선이 부드러워지면 돼지령에 다 온 것이다. 돼지령 근처에서 운 좋게 천왕봉 쪽에서 쏟아지는 여명을 지켜봤다. 붉은 오로라 같은 빛이 천왕봉 일대를 물들였다. 노루목에서 반야봉 오르는 길이 갈린다. 반야봉(1732m)에 오르는 건 포기했다. 반야봉에 들르면 1시간을 더 잡아야 한다.
삼도봉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한숨 돌린다. 이 봉우리에서 전남, 전북, 경남이 만났다니 신기하다. 화개재까지 곤두박질했다가 다시 토끼봉을 오르는 가파른 길이 첫 번째 고비다. 고비를 넘기면 연하천대피소에서 여유 있게 점심을 먹을 수 있다. 대피소 매점에서 즉석밥을 사 즉석 짜장에 비벼 김치와 함께 먹었다. 꿀맛이었다. 숲이 우거지고 맑은 물이 흐르는 연하천대피소는 하룻밤 묵어가고 싶은 숙소다.
연하천대피소에서 벽소령대피소까지는 2시간 거리다. 커다란 바위가 많은 형제봉을 넘으면 벽소령대피소가 나온다. 벽소령대피소에서 세석대피소까지는 약 3시간 거리로 첫날의 두 번째 고비다. 먼 길을 걸었기에 배낭의 무게가 천근만근처럼 느껴진다. 덕평봉과 연신봉을 넘으며 ‘왜 고생을 사서 하는지’ 수백 번 곱씹다가 오후 6시 30분 어둑어둑해질 무렵, 세석대피소에 닿았다. 비슷하게 도착한 아저씨와 함께 밥 먹으며 서로를 위로했다.
촛대봉에서 만나는 감동적인 일출
■ 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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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성이 좋고 고도가 높은 성삼재(1102m)를 출발점으로 삼는 걸 추천한다. 첫날 성삼재~세석대피소 약 23㎞ 10시간, 이튿날 세석대피소~천왕봉~백무동 약 13㎞ 6시간쯤 걸렸다. 세석대피소에 잔 덕분에 다음 날, 촛대봉 일출을 감상할 수 있었다. 벽소령 대피소에서 자면 첫날이 덜 힘들지만 다음날이 부담된다. 대피소는 국립공원공단 예약통합시스템에서 예약한다. 짐을 가볍게 꾸리는 게 중요하다. 식사는 대피소에서 파는 즉석밥을 사고, 식수는 대피소와 능선에 있는 샘에서 구하면 된다. 발목까지 오는 중등산화가 적당하고, 스틱은 필수다. 교통은 자가용보다 ‘함양지리산고속버스’가 편리하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성삼재 가는 버스가 하루 한 번, 오후 11시 출발한다. 백무동에서 동서울터미널 가는 버스는 하루 8회 운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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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석 여행작가 mtswamp@naver.com
시인이 되다만 여행작가. 학창시절 지리산 종주하고 산에 빠졌다. 등산잡지 기자를 거쳐 여행작가로 25년쯤 살며 지구 반 바퀴쯤(2만㎞)을 걸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걷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캠프 사이트에서 자는 게 꿈이다. 『대한민국 트레킹 가이드』 『해외 트레킹 바이블』 등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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