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개국 "친서" 보냈다는 이재명…IMO "日방류, 투기 아냐" 왜

박현주 2023. 9. 6. 05: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4일 런던협약과 런던의정서에 가입한 88개국에 후쿠시마 문제 관련 이른바 '친서'를 보낸 가운데, 국제해사기구(IMO)는 이미 "방류 행위는 런던 의정서상 금지된 '투기'(dumping)로 보기 어렵다" 등 내용의 법률 검토를 마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제법 학계에서는 이미 논란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사안에서 국제기구 차원의 행동을 요구해 얻는 실익이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앞 단식투쟁천막에서 열린 런던협약·의정서 당사국 친서 발송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과 친서를 들어보이는 모습. 뉴스1.


IMO 사실상 "투기 아냐"


5일 국제해사기구(IMO)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IMO에 의해 작성된 '방사성 폐기물 관리와 관련된 사항'이라는 문건에는 "런던협약·의정서의 해석은 당사국의 전권(prerogative)"이라면서도 "육지로부터의 파이프라인을 통한 처리(disposal)를 런던협약·의정서 상의 투기(dumping)로 볼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는 결론이 담겼다.

당시 IMO 측은 후쿠시마 방류 문제와 관련해 회원국 간 의견이 엇갈리자 법률 검토에 나섰다. 이와 관련, 박성훈 해양수산부 차관은 4일 언론 브리핑에서 "당시 회원국 사이에서 (후쿠시마 문제를) 런던의정서 체계 안에서 논의해야 하는지 여부에 대해 논란이 있었고, IMO는 '당사국의 전권 사항'으로 정리했지만, 부대의견으로 '투기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놨다"고 설명했다.

런던협약은 비행기나 선박 등을 이용해 바다에 폐기물을 투기하는 행위를 막기 위해 1975년 발효됐다. 이후 협약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해 2006년부터 런던의정서가 발효됐다.
지난해 10월 국제해사기구(IMO)가 후쿠시마 방류와 관련해 런던협약 및 런던의정서, 유엔해양법협약 등에 대한 법적 검토를 한 문서. 문서 캡처.


"인공 해양 구조물 아냐"


런던의정서에 따르면 '투기'는 "해상에서 선박·항공기·플랫폼 및 인공 해양 구조물로부터 의도적으로 발생하는 폐기물 또는 기타 물질의 해양으로의 처리 행위"로 정의된다.

따라서 핵심 쟁점은 ▶일본이 육지에서 바다로 뚫은 1㎞짜리 해상 터널을 '인공 해양 구조물'으로 볼 것인지 ▶일본의 방류가 '해양', 즉 바다를 대상으로 하는지 여부로 압축된다.

우선 IMO는 인공 해양 구조물에 해당하는 예시로 등대, 부표 등을 들면서 "파이프라인(일본의 해저 터널)은 인공 해양 구조물로 간주되지 않으며, 파이프라인 그 자체가 투기의 대상이 되는 물질(matter)"이라고 판단했다. 이는 "육지에서 연결된 시설은 런던 의정서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는 일본의 기존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지난해 3월 촬영한 후쿠시마 원전의 모습. 교도뉴스. AP. 연합뉴스.


또한 IMO는 "런던의정서에 규정된 '바다'는 육지에서만 접근할 수 있는 해저 저장소는 포함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방류된 폐기물이야 바다로 향하겠지만 육지에서부터 이어지는 파이프라인은 엄밀히 말해 '바다에 있다'고 말할 수 없다"면서다.

결국 IMO는 '일본의 해저 터널이 인공 해양 구조물도 아니고, 방류 또한 바다를 향한 처리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낸 셈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방류 절차 그래픽 이미지.


'광범위 적용 전례' 대목 없어


이 대표는 런던 협약·의정서 회원국 88개국에 보낸 이른바 '친서'에서 "(지난해) 사무국의 런던의정서 적용에 대한 법률 의견서에서 적시됐듯이, 런던의정서의 해석은 당사국들의 고유한 권한이며, 런던 의정서를 광범위하게 적용한 전례가 있다"고 적었다.

하지만 이 대표가 언급한 IMO 의견서는 이 대표의 주장과 달리 "런던 의정서를 광범위하게 적용한 전례가 있다"고 한 적이 없다. IMO는 과거 스페인 대표단의 주장을 거론하며 "과거에는 런던 협약·의정서의 광범위한 적용이 '고려'된 적 있다"며 "하지만 이는 유엔해양법협약의 일반적인 해석 규칙과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일본이 현시점에 방류하게 된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사실 일본은 2011년 3월 원전 사고 직후 '합법적'으로 오염물질을 투기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런던협약 5조는 '인간의 건강과 관련하여 수용할 수 없는 위험을 야기하며 달리 실행가능한 해결책이 없는 비상시'에는 특별허가증을 발급받아 투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국제사회에서는 일본의 신속한 재난 극복을 우선시했는데, 특별허가증을 통한 일본의 '합법적 투기'는 절차 문제로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해양 환경에 미칠 악영향도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이에 투기를 우회하는 '방류' 등도 고려 가능한 선택지로 떠올랐지만, 일본은 자국민과 자국 해역, 인접국 해역에 미칠 영향을 정확히 평가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우선은 오염수를 보관하기로 결정했다. 반감기와 향후 이뤄질 오염수 처리 기술 개발 등을 염두에 둔 조치였다.

이미 당시 국제법적 논란은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는 학계의 의견도 그래서 나온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환경을 고려해 내렸던 일본의 자발적 보관 결정이 이제와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 됐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3일 오전 국회 단식농성장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의 런던협약·의정서 위반 의결을 촉구하는 친서 발송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대통령도 아닌데 '친서'?


한편 이 대표 측이 사용한 '친서'(親書)라는 용어도 논란이다. 외교적으로 '친서'란 '한 나라의 원수가 다른 나라의 원수에게 보내는 공식적인 서한'을 의미한다. 사전적 의미로는 '몸소 쓴 편지'라는 뜻도 있지만, 이번 발송은 공당의 대표가 88개국 정부 수반급 인사에게 보낸 '공식적 문서'이기 때문에 어폐가 있다.

실제 이 대표는 국내 기자회견 등에선 "친서를 발송했다"고 홍보했지만, 막상 88개국에 전송한 문서(국문본)에선 이를 '서한'이라고만 칭했다. 국내정치적 목적으로 '친서'라는 용어를 활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또한 서한에는 작성 주체로 "대한민국 국회의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라고 적었을 뿐 '야당'이라는 설명은 없다.

한편 5일 외교부는 이 대표의 서한 발송과 관련해 "국가 외교 행위의 단일성 측면에서 헌법상 행정부의 고유 권한이 재차 존중되지 않아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정부는 2019년 이후 런던 협약·의정서 당사국 총회에서 오염수 방류 관련 투명한 과학적 정보 공유, 인접국 및 국제사회와 충분한 협의, 런던 의정서 내에서의 논의 등을 주장해 왔다"면서다.

앞서 외교부는 지난 6월에도 민주당이 태평양 도서국 포럼(PIF) 회원국들에 일본의 방류를 저지하기 위한 국제적 연대를 촉구하는 서한을 발송하자 "국가 외교 행위의 단일성 측면에 맞지 않아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정부 부처가 특정 정당에 연이어 유감을 표하는 건 이례적이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