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개국 "친서" 보냈다는 이재명…IMO "日방류, 투기 아냐" 왜
━
IMO 사실상 "투기 아냐"
5일 국제해사기구(IMO)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IMO에 의해 작성된 '방사성 폐기물 관리와 관련된 사항'이라는 문건에는 "런던협약·의정서의 해석은 당사국의 전권(prerogative)"이라면서도 "육지로부터의 파이프라인을 통한 처리(disposal)를 런던협약·의정서 상의 투기(dumping)로 볼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는 결론이 담겼다.
당시 IMO 측은 후쿠시마 방류 문제와 관련해 회원국 간 의견이 엇갈리자 법률 검토에 나섰다. 이와 관련, 박성훈 해양수산부 차관은 4일 언론 브리핑에서 "당시 회원국 사이에서 (후쿠시마 문제를) 런던의정서 체계 안에서 논의해야 하는지 여부에 대해 논란이 있었고, IMO는 '당사국의 전권 사항'으로 정리했지만, 부대의견으로 '투기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놨다"고 설명했다.
━
"인공 해양 구조물 아냐"
런던의정서에 따르면 '투기'는 "해상에서 선박·항공기·플랫폼 및 인공 해양 구조물로부터 의도적으로 발생하는 폐기물 또는 기타 물질의 해양으로의 처리 행위"로 정의된다.
따라서 핵심 쟁점은 ▶일본이 육지에서 바다로 뚫은 1㎞짜리 해상 터널을 '인공 해양 구조물'으로 볼 것인지 ▶일본의 방류가 '해양', 즉 바다를 대상으로 하는지 여부로 압축된다.
우선 IMO는 인공 해양 구조물에 해당하는 예시로 등대, 부표 등을 들면서 "파이프라인(일본의 해저 터널)은 인공 해양 구조물로 간주되지 않으며, 파이프라인 그 자체가 투기의 대상이 되는 물질(matter)"이라고 판단했다. 이는 "육지에서 연결된 시설은 런던 의정서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는 일본의 기존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또한 IMO는 "런던의정서에 규정된 '바다'는 육지에서만 접근할 수 있는 해저 저장소는 포함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방류된 폐기물이야 바다로 향하겠지만 육지에서부터 이어지는 파이프라인은 엄밀히 말해 '바다에 있다'고 말할 수 없다"면서다.
━
'광범위 적용 전례' 대목 없어
이 대표는 런던 협약·의정서 회원국 88개국에 보낸 이른바 '친서'에서 "(지난해) 사무국의 런던의정서 적용에 대한 법률 의견서에서 적시됐듯이, 런던의정서의 해석은 당사국들의 고유한 권한이며, 런던 의정서를 광범위하게 적용한 전례가 있다"고 적었다.
하지만 이 대표가 언급한 IMO 의견서는 이 대표의 주장과 달리 "런던 의정서를 광범위하게 적용한 전례가 있다"고 한 적이 없다. IMO는 과거 스페인 대표단의 주장을 거론하며 "과거에는 런던 협약·의정서의 광범위한 적용이 '고려'된 적 있다"며 "하지만 이는 유엔해양법협약의 일반적인 해석 규칙과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일본이 현시점에 방류하게 된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사실 일본은 2011년 3월 원전 사고 직후 '합법적'으로 오염물질을 투기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런던협약 5조는 '인간의 건강과 관련하여 수용할 수 없는 위험을 야기하며 달리 실행가능한 해결책이 없는 비상시'에는 특별허가증을 발급받아 투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국제사회에서는 일본의 신속한 재난 극복을 우선시했는데, 특별허가증을 통한 일본의 '합법적 투기'는 절차 문제로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해양 환경에 미칠 악영향도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이에 투기를 우회하는 '방류' 등도 고려 가능한 선택지로 떠올랐지만, 일본은 자국민과 자국 해역, 인접국 해역에 미칠 영향을 정확히 평가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우선은 오염수를 보관하기로 결정했다. 반감기와 향후 이뤄질 오염수 처리 기술 개발 등을 염두에 둔 조치였다.
━
대통령도 아닌데 '친서'?
한편 이 대표 측이 사용한 '친서'(親書)라는 용어도 논란이다. 외교적으로 '친서'란 '한 나라의 원수가 다른 나라의 원수에게 보내는 공식적인 서한'을 의미한다. 사전적 의미로는 '몸소 쓴 편지'라는 뜻도 있지만, 이번 발송은 공당의 대표가 88개국 정부 수반급 인사에게 보낸 '공식적 문서'이기 때문에 어폐가 있다.
실제 이 대표는 국내 기자회견 등에선 "친서를 발송했다"고 홍보했지만, 막상 88개국에 전송한 문서(국문본)에선 이를 '서한'이라고만 칭했다. 국내정치적 목적으로 '친서'라는 용어를 활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또한 서한에는 작성 주체로 "대한민국 국회의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라고 적었을 뿐 '야당'이라는 설명은 없다.
한편 5일 외교부는 이 대표의 서한 발송과 관련해 "국가 외교 행위의 단일성 측면에서 헌법상 행정부의 고유 권한이 재차 존중되지 않아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정부는 2019년 이후 런던 협약·의정서 당사국 총회에서 오염수 방류 관련 투명한 과학적 정보 공유, 인접국 및 국제사회와 충분한 협의, 런던 의정서 내에서의 논의 등을 주장해 왔다"면서다.
앞서 외교부는 지난 6월에도 민주당이 태평양 도서국 포럼(PIF) 회원국들에 일본의 방류를 저지하기 위한 국제적 연대를 촉구하는 서한을 발송하자 "국가 외교 행위의 단일성 측면에 맞지 않아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정부 부처가 특정 정당에 연이어 유감을 표하는 건 이례적이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벽돌로 내연남 암매장한 엽기 모녀…어느 유품정리사의 기록 | 중앙일보
- 후쿠시마 바다서 서핑하고 회 먹방…'펀쿨섹좌' 이 남자 근황 | 중앙일보
- 한반도에 '이것' 퍼다 올린다…서울 역대급 '9월 더위' 주범은 | 중앙일보
- 알바 구하러 나갔다가 성폭행당한 소녀…끝내 삶 포기했다 | 중앙일보
- "나 아빠 딸이잖아" 애원하는 친딸 추행…죽음 내몬 50대 황당 변명 | 중앙일보
- 발로 차고 끌고 가는 남편 할퀴어 폭행죄…헌재가 판 뒤집었다 | 중앙일보
- "자리 왜 안 바꿔줘" 고교생, 여교사 5분간 폭행…의식 잃었다 | 중앙일보
- 제자·동료 교수 성추행…전 국립대 교수 항소했다 3년 더 구형, 왜 | 중앙일보
- "'꽃스님'과 차담" 소문난 화엄사 사찰 체험…4시간 만에 마감 | 중앙일보
- 사장 몰래 2700만원어치 주문 취소…치킨집 직원 CCTV '충격'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