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동철 칼럼] 감세의 그늘
2.8%로 2005년 이후 최저인데
적자 규모·비율은 오히려 늘어
경기 둔화로 세수 여건 악화된
탓 크지만 잇단 감세 정책에
따른 세수 감소도 긴축의 원인
재정 순기능보다 건전성 강화에
방점 두겠다면 이에 배치되는
감세 정책부터 재검토해야
정부가 지난달 29일 내년도 예산안을 발표했다. 총규모가 656조9000억원으로 올해 예산(638조7000억원)보다 18조2000억원 많지만 전년 대비 증가율은 2.8% 수준이다. 올해 예산 증가율(5.1%)에 훨씬 못미치고, 재정통계가 정비된 2005년 이후 가장 낮다. 올해 물가상승률(3% 중반 예상)보다 낮고 내년 명목성장률 전망치(4.9%)보다도 낮은 긴축 예산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런 예산안에 대해 “건전 재정을 지켜내기 위한 정부의 고심 어린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건전 재정이란 말이 무색하다.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 적자 규모가 44조원으로 올해 예산안(13조원)의 3배다.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고용보험 등 사회보장성 기금이 제외돼 실질적인 나라살림의 건전성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 적자도 92조원으로 올해(58조원)보다 대폭 늘었다. 이에 따라 올해 2.6%였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이 3.9%로 치솟는다. 정부가 법제화를 추진하는 재정준칙의 관리 목표치(적자 3% 이내)를 넘어선다.
재정당국이 내년도 예산안을 긴축 기조로 편성한 가장 큰 이유는 세수 여건이 좋지 않기 때문일 게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기 회복 지연, 수출 부진, 부동산 경기 위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세수 기반이 허약해져 있다. 올해 1~7월 국세 수입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3조4000억원 줄었다. 후반기에 지난해 수준으로 걷힌다 해도 올해 세수는 세입 예산(400조5000억원)보다 50조원가량 줄어들 전망이다. 재정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이 내년에도 그다지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내년도 국세 수입을 올해보다 33조1000억원(8.3%) 적은 367조4000억원으로 잡은 이유다. 세목별로 감소 규모는 법인세 27조3320억원, 양도소득세가 7조3000억원, 상속증여세가 2조5000억원, 종합부동산세 1조6000억원 등이다.
세수 여건 악화엔 미·중 경제 갈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대외 요인에 따른 경기 부진이 크게 작용했을 테지만 정부의 감세 정책이 자초한 측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지난해 법인세, 상속세 및 증여세, 종합부동산세 등을 줄여주는 감세를 밀어붙였다. 지난 3월에는 반도체 배터리 등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투자 세액공제율을 15~25%로 확대했다. 지난 7월에는 주택담보대출 이자상환액 소득공제 확대, 결혼 자금 증여 공제 1억5000만원으로 확대, 가업승계 증여세 추가적 부담 완화, 일몰 도래 비과세·감면 연장 등의 감세안을 추가 발표했다. 대기업·중견기업, 다주택자, 고소득자, 자산가들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들이라 ‘부자 감세’란 지적이 빗발쳤지만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감세는 안정적 세수 확보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국가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해 세제 개편으로 올해부터 5년간 총 64조4081억원의 세수가 줄어들 전망이다. 재정연구단체인 나라살림연구소는 반도체 등 세액공제 혜택, 올해 세법 개정안까지 반영하면 세수 감소 규모가 89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부는 법인세 인하나 투자 세액공제 확대가 기업의 투자를 늘려 고용을 창출하고 중장기적으로 세수 기반을 확대할 것이라 주장하지만 이런 낙수효과가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게 경제학자들의 중론이다. 고소득 자산가에 대한 감세는 낙수효과를 논할 필요도 없는, 그저 부자 감세일 뿐이다.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는 정부가 감세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긴축 예산은 정부의 재정 운용 폭을 좁힌다. 경기 활력의 마중물이 되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소득불평등을 완화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재정의 순기능이 위축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국세 수입이 줄어드는 상황이라면 지출도 그에 맞춰 보수적으로 짜야 하는 게 일반적으로 타당하나 긴축 예산의 배경에 감세가 자리잡고 있다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정부는 2027년까지 총지출 연평균 증가율을 3.6%로 제시했다. 국가채무(국채 발행)에 의존하는 확장 재정은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빚에 의존하는 확장 재정도 문제지만 경기 둔화 국면에서 긴축만 강조하는 것도 문제다. 건전재정에 방점을 두겠다면 이에 배치되는 감세 정책 기조부터 전면 재검토하는 게 순리 아닐까.
라동철 논설위원 rd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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