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영혼을 추구할 때 삶은 온전해진다
위한 숫자 계산이 아닌 고뇌
연민 등 영적 가치가 담겨야
올해 들어 한 달에 한 차례 서울 강남의 문화공간 풍월당에서 함께 러시아 문학을 읽는다. 도스토옙스키의 치열한 고뇌와 톨스토이의 정결한 경건엔 커다란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2×2=4’라는 과학적·합리적 원리가 지배하는 근대적 세계가 우리 삶에 거의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예수와 마찬가지로 두 작가는 물질 풍요에 매이지 않는 삶의 양식을 탐구했다. “사람은 빵으로만 살지 않는다.” 인간에겐 육체의 즐거움을 넘어서는 더 근원적 만족감이 필요하다. 영혼의 고양이다.
알레한드로 나바 미국 애리조나대 교수의 ‘영혼을 찾아서’(이유출판)에 따르면 아름다움, 사랑, 연민, 명상, 경의 같은 영적 가치가 돈, 권력, 쾌락 같은 시장의 가치로 대체되는 시대엔 삶의 가장 소중한 자원들은 가치를 잃는다. 불행히도 과학의 힘에 매혹되고 물질에 얽매인 현대인은 영혼의 신비한 밀도를 잃은 채 우울과 공허에 시달리고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이들을 ‘지하인’이라고 불렀다. 과학적 사고로는 이들을 구원할 수 없다.
경이의 원천인 영혼은 과학적 지식의 대상일 수 없다. 영혼의 움직임은 ‘2×2=4’로 계산되지 않는다. 따라서 영혼은 항상 이성 바깥에 놓여 있다. 비이성적이란 뜻은 아니다. 이성으로 충분히 탐구한 후에도 그 신비가 남아 있다는 말이다. 이성이 멈추면 우리는 영혼에 아예 접근할 수 없다. 그러나 이성이 좇으면 영혼은 늘 그보다 한발 앞서 달려간다.
따라서 삶은 숫자 계산으로 가득한 회계장부를 닮으면 안 된다. 숫자로 이뤄진 장부는 인간 삶의 고통, 정신적 고뇌, 타자에 대한 연민이 거의 기록돼 있지 않다. 지성의 승리보다 더 심오한 지각과 이해를 담을 때에만 삶은 온전해진다. 영성 없는 삶은 진부할 뿐이다. 세속적 성공이 유일하고 지배적인 동기가 되면 삶의 신비는 배척되고 그 자리엔 빤히 예측할 수 있는 평탄하고 영혼 없는 삶이 들어서는 까닭이다.
영혼의 심오함을 인정할 때 우리 존재는 고갈되지 않는다. 아무리 깊게 파고들어도 여전히 신비한 비밀이 우리 삶에서 솟아나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앎의 울타리 너머에 있다. 나바는 말한다. “영혼 없는 지성은 허파 없이 노래하는 목소리, 즉 정념이나 고통, 깊이를 알지 못하는 목소리일 뿐이다.” 인간은 늙거나 병들어 탐구를 멈추는 게 아니라 탐구를 멈출 때 늙거나 병든다. 무지와 미숙을 인정하고, 지혜와 성숙을 추구할 때 우리 삶은 매력이 넘친다.
제임스 조이스가 ‘율리시스’에서 말했듯 삶은 두 줄로 이뤄져 있다. “일부는 추하고 외설스럽고 짐승 같으며, 일부는 순수하고 신성하고 영적이다.” 우리는 이 두 가닥 실을 힘겹게 꼬아가면서 삶의 줄거리를 짜나간다. 이성으로만 쓰인 삶은 단조롭고 밋밋하며 무감하고, 감성으로만 쓰인 삶은 거칠고 조악하며 위태롭다. 위대한 작가들은 우리 삶의 비열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더러움 속에서 고결함을, 상스러움 속에서 기품을, 천박함 속에서 고귀함을 찾아낼 줄 안다. 문학은 우리에게 제아무리 타락한 세계에서도 이러한 추구가 가능함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영혼을 뜻하는 영어 단어 스피릿(spirit)은 본래 숨결을 의미한다. 히브리인들은 신이 숨결처럼 우리에게 다가온다고 믿었다. 예이츠의 시구를 빌리면 우리 마음은 ‘악취 나는 고물상’일지 모르지만, 여전히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 신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문학 작품의 주인공들처럼 갈등과 혼란, 고통과 불행을 견디면서 꼬이고 뒤틀린 삶 속에서 기어이 영적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다. 문학에서 이를 배우지 못하는 삶, 그러니까 문학을 읽지 않는 삶은 나침반 없이 어두운 바다를 떠도는 난파선과 같다. 과학기술의 힘이 삶의 모든 영역을 압도하는 시대에 우리가 자주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일 테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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