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경의 에듀 서치] 누적된 분노 쏟아져… 교사들 정신 건강부터 챙길 때
교사들이 세상을 등지는 초유 사태
‘공교육 멈춤의 날’ 징계 오락가락
교육부 미숙한 대응이 분노 키워
‘교권 회복’ 사회적 지지 얻었지만
교사들 우울감 더 쌓였을까 우려
서울 서이초등학교에서 2년차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후 선생님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31일 서울 양천구의 한 초등교사가, 하루 뒤 전북 군산에서 역시 초등교사가 세상을 등졌습니다. 지난 3일 경기도 용인의 한 고교에선 정년을 불과 1년 앞둔 60대 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공교육 멈춤의 날’이라고 이름 붙인 4일에도 제주에서 중학교 교장으로 일하다 사흘 전 제주교육청으로 자리를 옮긴 교사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교단에 갓 오른 새내기 교사부터 평생을 교육에 헌신했던 베테랑 교사까지, 두 달 사이 교사 5명이 삶을 내려놨습니다. 예삿일이 아닙니다.
정부 대응은 미숙했습니다. 현장 교사들의 분노가 얼마나 거센지 제대로 가늠조차 못했습니다. 교육부가 지난달 27일 배포한 ‘9·4. 불법 집단행동,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볼까요. 자료 뒷부분 Q&A 대목을 보면 ‘위법한 임시휴업, 집단연가·병가, 집회 참석 등의 경우 어떠한 제재가 있는지?’라고 스스로 묻고 ‘임시휴업 결정 학교장은 국가공무원법 등에 따라 최대 파면·해임 가능하고, 형법 123조 직권남용으로 형사고발’ ‘직권남용은 5년 이하 징역, 10년 이하 자격 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이라고 답했습니다. 연가나 병가를 낸 교사에 대해서도 파면·해임, 형사고발할 거라고 으름장을 놨습니다.
그리고 지난 2일 국회 앞에 전국에서 20만명의 교사가 모였습니다.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은 꼴입니다. 이날 현장에서는 교육부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는 교사을 만나는 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격한 표현도 나왔습니다. 서이초 교사 사망 뒤 교사들의 분노가 향하는 지점은 여러 개였습니다. 악성 민원을 일삼는 학부모들, 현장에서 교사를 보호해주지 않는 학교장들, 학생 인권만 강조한 진보 성향 교육감들, 그간 교사들의 목소리를 외면해온 정치권과 정부까지 화살이 향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2일 집회 분위기는 그 분노가 교육부로 집중되는 모습이었습니다. 지난달 27일 이후 내놓은 ‘엄벌 메시지’는 결국 아둔한 판단이었던 것이죠. 교사들 분노의 크기를 가늠했다면 나오지 않을 메시지였을 겁니다. 아마도 ‘이쯤에서 어르고 달래면 되겠다’는 식으로 안일하게 판단했을 수 있습니다. 2일 집회의 ‘검은 추도 물결’을 본 정부와 여당도 상당히 놀란 모습입니다. 정부는 결국 징계 방침을 거둬들이는 모습입니다. 교육부는 4일 밤 “추모에 참가한 교사 징계 검토는 않겠다. 교사를 징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사실상 백기를 들었습니다.
야당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정권을 잡고 있을 때부터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현재까지 선생님들의 절규를 외면한 건 마찬가지였죠. 교사들의 분노는 오랜 기간 쌓여 왔습니다. 응축됐던 것이 지금에서야 터져나온 거죠. 교사에게 학생 생활지도와 관련한 권한을 부여하는 초중등교육법과 그 시행령, 교원의 학생생활지도 고시가 마련된 건 현 정부 들어서입니다. 진보 진영에서 행정부와 국회, 교육청을 장악하고 있을 때 교권과 관련해 이뤄진 게 뭐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최근 기사에 ‘수업 방해 학생은 이제 교실 밖으로 내보낼 수 있다’는 기사를 본 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 있습니다. 그는 “그럼 그동안 수업 방해하면 어떻게 해왔어?”라고 묻더군요. 이런 상황에서 미래교육이 어쩌고 해온 겁니다. 비리 혐의를 받는 정치인에게 방탄막을 제공하고 여권의 스타 장관과 입씨름할 에너지 100분의 1만 쏟았어도 이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을 겁니다.
정부 역시 인공지능(AI) 교실이든 고교학점제든, 초등 늘봄학교든 결국 현장 교사들이 받쳐주지 못하면 ‘사상누각’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을 확실히 인식한 계기였을 겁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AI 등 첨단기술을 활용한 학생 맞춤형 교실을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부총리는 취임 이후 줄곧 ‘하이터치·하이테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이터치는 교사의 영역, 하이테크는 AI를 비롯한 첨단 에듀테크입니다.
단순 지식 전달 업무는 AI에게 넘기고, 교사는 아이들의 진로와 적성, 학습 전반을 도와주는 멘토 역할을 한다는 구상입니다. 교사와 AI가 협력하면 그간 교육계가 염원해온 학생 1대 1 맞춤형 교육을 이룰 수 있다는 겁니다. 이 부총리는 하이테크보다 하이터치가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해왔습니다. 교사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AI는 큰 의미가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이번 사태로 하이터치 쪽이 심각하게 무너져 있는 현실이 드러났습니다.
교원 단체들도 차분해질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이미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뒀습니다. 단순히 정부와 국회가 입법에 속도를 내는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학부모들로부터 광범위한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냈다는 점이 훨씬 중요합니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학부모들의 모습에 상당히 놀랐다”고 했습니다. 민원창구 일원화, 교사에게 상담 거부권 부여, 학부모 특별교육 의무화 등은 볼멘소리가 나올 법한데 조용했다는 말입니다.
‘공교육 멈춤의 날’ 행사를 응원하는 학부모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몰지각한 일부 학부모들을 통제하지 않으면 교사 열정이 꺾이고, 교실과 학교가 왜곡되므로 결국 자신의 자녀에게도 악영향을 준다는 걸 절감한 계기가 된 듯합니다. 두 달 동안 이어진 우울한 분위기, 심리적 타격이 축적되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가 없지 않습니다. 굳이 ‘베르테르 효과’를 언급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정부도, 교원 단체들도 차분하게 선생님들의 정신건강부터 챙겨봐야 할 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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