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수산물을 먹으라고 말라고?

2023. 9. 6.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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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8월, 한일병합조약을 앞두고 순종 황제는 원로 대신들을 소집했다.

국민이 무엇보다 궁금해하는 것은 오염수에 노출된 수산물의 안전 여부다.

수산물 오염이 걱정된다면서도 먹지 말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수산물 섭취 전면 금지, 그것이 어렵다면 삼중수소 농축 농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조개류와 갑각류만이라도 섭취 금지, 그것도 어렵다면 해류가 태평양을 한 바퀴 도는 동안은 유예하고 5년 뒤부터 금지하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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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승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1910년 8월, 한일병합조약을 앞두고 순종 황제는 원로 대신들을 소집했다. 조약 승인 여부를 자문하는 자리였다. 대신들은 문서에 서명을 하고 가부를 적었다. 내무대신 김윤식은 네 글자를 써넣었다. ‘불가불가(不可不可)’.

‘불가불가’는 여러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 두 글자씩 ‘불가, 불가’로 끊어 읽으면 ‘안 돼, 안 돼’ 강력한 반대다. 반면 ‘불가불, 가’로 끊어 읽으면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소극적 찬성이다. 달리 해석할 수도 있다. 앞의 ‘불가’를 서술어로, 뒤의 ‘불가’를 목적어로 보면 ‘안 된다고 할 수 없다’ 역시 소극적 찬성이다. ‘불, 가불가’로 끊어 읽으면 가부를 말할 수 없다는 중립적 표현이다. 이 애매한 표현 때문에 김윤식은 기회주의자로 낙인찍혔다.

당시 정부 공식 기록에는 보이지 않는 이야기이니 김윤식이 정말 이렇게 말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일합방 이후 그의 애매한 태도는 논란을 부채질했다. 합방이 성사되자 일제로부터 남작 작위와 은사금을 받더니 3·1운동 직후에는 조선 독립을 요구하는 ‘대일본장서’를 일본에 보냈다가 체포당하고 작위를 박탈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세상을 떠난 뒤에도 논란은 그치지 않았다. 그의 장례를 ‘사회장’으로 치르려는 일각의 시도는 거센 반대에 부딪쳤다. 결국 사회장은 취소됐다. 지금도 ‘불가불가’ 네 글자는 찬반을 뚜렷하게 밝히지 않는 노회한 정객의 교묘한 언사로 기억되고 있다.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방류한 지 열흘이 넘었다. 오염수 방류가 이처럼 큰 이슈가 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먹거리에 관한 문제라서다. 오염수를 방류한 일본과 막지 못한 정부의 책임을 묻는 건 다음 문제다. 국민이 무엇보다 궁금해하는 것은 오염수에 노출된 수산물의 안전 여부다.

정부와 여당은 한결같은 입장이다. 문제없으니 먹어도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연신 횟집 먹방을 선보이고, 여당 의원은 수조에 담긴 물까지 떠마시지 않았는가. 적절한 행위인지는 모르겠으나 일관성만큼은 알아줘야 한다.

이상한 건 야당이다. 수산물 오염이 걱정된다면서도 먹지 말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2차 태평양전쟁’이니 ‘환경테러’니 하는 과격한 구호에 비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태도다. 오염수 방류는 이미 시작했고 쉽게 중단할 것 같지도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오염수는 바다로 쏟아지고 있다. 오염수가 그렇게 위험한 물질이라면 국민 안전을 위해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겠는가. 정부와 여당이 제 역할을 못한다면 야당이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오염수 방류에 따른 국민행동요령’이라도 제시하기 바란다. 수산물 섭취 전면 금지, 그것이 어렵다면 삼중수소 농축 농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조개류와 갑각류만이라도 섭취 금지, 그것도 어렵다면 해류가 태평양을 한 바퀴 도는 동안은 유예하고 5년 뒤부터 금지하든가.

중국은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우리 거대 야당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조치다. 그런데 행동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고한 우리 어민의 피해가 걱정이라서? 그래서 전 국민을 위험에 노출시킬 셈인가. 피할 수 없는 전면적 재앙이라서 자포자기인가? 12척의 배로 바다를 지킨 이순신에 빙의해 오염수로부터 우리 바다를 지키겠다고 공언한 지가 오래지 않다. 어떻게든 발버둥이라도 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야당은 조속히 입장을 표명하기 바란다. ‘불가, 불가’인가, ‘불가불, 가’인가. 수산물을 먹으라는 건가 말라는 건가?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는다면 오염수 방류를 규탄한 저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국민 안전을 명분으로 세월호와 이태원 사태를 부각시킨 의도 역시 의심할 수밖에 없다.

장유승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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