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어 아니고 젠지어! 키워드로 읽는 젠지 리포트
“젠지가 뭐예요?”
스물셋 23팀을 만나 인터뷰하며 빈번하게 들은 말이다. 이 말에 정직하게 답하자면 젠지는 ‘제너레이션 Z’의 준말로, 1995년 이후 출생한 이들을 말한다. 그 특징으로는 자유, 무질서, 레트로… 그리고 우리가 이 기사에서 나열할 23개의 키워드를 살필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젠지들은 자신이 어떤 세대로 불리는지 모른다는 것은 많은 바를 시사한다. 첫째로 세대 무용론. 세대 불문 기성의 ‘라떼’들은 언제나 ‘꼰대’ 짓을 했고, 젊은이들은 언제나 자유와 방종을 좇았다. 1990년대의 X세대와 오렌지족을 생각해보라. 그들은 이제 ‘라떼’로 불리는 중장년층이다. 두 번째, 원하는 정보만 취사 선택해서 디깅해 등잔 밑엔 관심 없는 세대라는 것. 세 번째, 매체에서 하도 MZ로 뭉뚱그리다 보니 단순히 자신이 젠지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쪽일 확률이 가장 높을지도!). 어느 쪽이든 젠지가 어떤 이들인지 알고 싶다면, 23개의 키워드를 살펴보라. 라떼들에게도 또래들에게도 세대를 이해하는 데 좋은 가이드가 돼줄 것이다.
포토프레스
지금의 나를 기록할 것! 자기애와 셀프 브랜딩에 빠진 젠지들의 대표적인 즐길 거리는 ‘포토 프레스’다. 인생네컷, 포토이즘, 하루필름, 포토매틱, 스노우 AI 프로필에 폴라로이드, 스튜디오부터 스마트폰까지 자신을 사진에 담아내느라 삼매경. 한 블록 걸을 때마다 스튜디오가 성업 중이니, 아마도 거울 속 모습보다 갈고 닦아낸 사진 속 내 모습이 더 진짜 나에 가깝게 느껴지는 세대일 것이다. 각양각색 콘셉트, 앵글과 포즈도 계속해서 유행을 타는 중. ‘항공샷’이나 ‘바닥샷’, ‘인싸샷’, ‘손예진샷’을 들어본 적 없다고? 그렇다면
당신을 포함한 주변인은 젠지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카톡 말고 DM
“카톡은 공식적인 느낌이에요. 인스타 DM은 좀 더 친밀한 느낌이죠.” 멀쩡히 있는 카톡을 두고 굳이 DM을 하는 대학생에게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그럼 공지를 나눠야 하는 모임은? 여럿이서 얘기하는 단톡방은? “그러니까 더 공식적인 느낌이라는 거예요. 카톡 쓰면 솔직히… 딱딱하고 올드한 느낌?” 이번 특집의 스물셋 인터뷰이들에게 물어봐도 대답은 같았다. 이제는 인정해야겠다. 카톡 말고 페메, 페메 말고 DM의 시대가 왔다는 걸. 이것은 거의 모든 젠지가 인스타그램 계정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메타는 대체 어디까지 가려는 걸까! 카카오가 긴장해야 할 시간이다.
스케치 코미디
“시켜줘, 명예 인류학자.” 젠지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는 채널 〈사내뷰공업〉의 소개글이다. 운영자는 교과서만 보고 공부해 명문대에 입학한 수험생 김혜진, ‘컴싸’로 아이라인을 그리고 초코송이 머리를 한 2000년대 고등학생 황은정 등 리얼한 가지각색 부캐로 젠지들의 취향을 저격 중. 〈빠더너스〉의 일타 강사 문쌤, 〈피식대학〉의 서준맘, 〈나몰라패밀리 핫쇼〉의 다나카까지 최근 1년간 인기를 끈 개그 콘텐츠는 하이퍼리얼리즘 캐릭터가 등장하는 스케치 코미디였다. 인물을 모사하는 건 정통 개그 소재지만, 요즘의 흥미로운 경향성은 유명 정치인이나 연예인이 아닌 주변에 있을 법한 인물 군상을 재현해낸다는 것. 젠지들에게 웃음을 주는 건 지금 여기의 삶이지, 동떨어진 무언가가 아니다.
숏폼
60초로 승부를 본다. 영화를 요약본으로 보고, 예능을 하이라이트로 즐기며, 각종 플랫폼에서 60초짜리 콘텐츠를 소비한다.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틱톡, 온갖 짧은 것들의 시대다. 유튜브 시청자 뷰 88.2%가 쇼츠에서 발생할 정도로 쇼츠의 영향력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 〈도둑맞은 집중력〉의 작가 요한 하리는 미국의 10대들은 한 가지 일에 65초 이상 집중하지 못한다고 밝힌다. 방대한 콘텐츠의 홍수에서 젠지들은 긴 이야기를 소화시키기보다 짧고 빠른 스파크들로 순간순간의 도파민을 채우길 택한 것이다. 영화 한 편을 온전히 보지 않는 세대의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이젠 60초도 지루해질지 모른다.
굳이데이
시작은 가수 우즈의 한마디였다. “친구들과 한 달에 한 번 굳이 데이를 만들었어요. ‘굳이?’ 소리가 나오는 일을 하나씩 하는 날이죠.” 낭만을 찾으려면 귀찮음을 감수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실시간 트렌드와 리트윗을 타고 빠르게 퍼져 젠지들에게 나도 굳이 낭만적인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투두 리스트’와 굳이데이에 하기 좋은 일을 서로 추천하는 데 이른다. 이를테면 굳이 직접 서점에 가서 책을 사는 것, 굳이 손 편지를 써서 우편함에 넣기, 굳이 지방으로 여행 가서 지역 대표 음식을 먹고 오기와 같은 일들이다. ‘갓생’을 사는 와중에도 낭만까지 사수하는 2023년의 젠지는 그 어느 때보다 부지런하고 바쁜 세대다.
하이볼
‘라떼’의 술상에 ‘소맥’이 있었다면 젠지의 술상엔 하이볼이 있다. 그들의 지금 관심사는 네 캔에 1만원짜리 수입 맥주도, 원소주도 아닌 위스키 기반의 하이볼! 젠지는 왜 위스키를 소비할까? 명품 소비와 함께 하이엔드 문화인 위스키에 대한 열망이 커졌지만, 니트나 온더록스로 마시기엔 너무 비싸고 친숙하지도 않은 맛일 터. 탄산을 섞으면 맛도 젊어지거니와 가격도 합리적이 된다. 젠지들의 스몰 럭셔리인 셈이다. 유통업계는 캔 하이볼을 연이어 내놓으며 하이볼 열풍에 불을 지피는 중. 서울과 도쿄가 주거니 받거니 젠지들의 유행 트렌드에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다시 슬그머니 올라오고 있는 일본 문화 유행도 하이볼 열풍에 한몫한다.
가치 소비
내가 먹고, 쓰고, 입고, 바르는 모든 것이 나를 표현한다. 그것을 가장 잘 아는 세대인 젠지에게 소비는 곧 신념의 표현이다. 요즘 브랜드들이 앞다퉈 ‘착한’ 브랜드임을, 친환경임을, 동물실험을 하지 않았음을, 수익금의 일정 부분을 환경·여성·성소수자·청소년·동물 관련 단체 등에 기부함을 어필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어떤 기업들은 교묘하게 ‘그린워싱’을 하며 착한 척하기도 하는데, 이에 현혹되지 않고 면밀히 짚어내는 것이 요즘 젠지 소비자들의 특징. 이에 “PC 묻었다”느니 비아냥을 보내는 세대 또한 젠지라는 아이러니도 있다. 소비로서 가치관을 표현하는 문화는 어쨌거나 나아갈 것이고, 지구를 구원할지도 모른다!
무지출 챌린지
“아이스크림 사 먹어도 됩니까”, “탕비실에 있는 얼음 드세요”라거나 “반팔 티셔츠 사도 됩니까”, “입던 긴팔 자르세요” 같은 냉혹한 컨펌이 오가는 오픈채팅 카톡방. 일명 ‘거지방’이다. 20대의 명품 소비율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동시에 #무지출챌린지가 성행하는 이 현상에선 명백한 의미 도출이 가능하다. 양극화된 사회의 양극화된 소비 형태. 저가품과 고가품을 동시에 소비하는 ‘앰비슈머’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다만 거지방이 반짝하고 사그라든 이유에서는 좀 더 복잡한 맥락을 읽을 수 있다. “엄마가 집밥 해주셔서 식비 0원”, “부모님 차를 타서 교통비가 0원” 같은 말은 애초에 이것이 배경이 다른 이들끼리의 동상이몽임을, 누군가에겐 놀이고 누군가에겐 생존임을 알게끔 한 것. 그러므로 거지방은 사라졌어도 갓생을 위한 무지출 챌린지는 계속된다. 지금 이 순간도.
탕후루
지금 한국은 먹방 유튜브, 길거리, 인스타그램 등 어딜 봐도 탕후루다. 오픈런을 해야 먹을 수 있는 왕가 탕후루, 탕후루 빙수, 탕후루 타르트, 인절미 탕후루, 오이 탕후루, 팝핑캔디 탕후루, 쫀드기 탕후루, 마시멜로 탕후루 등 이색 탕후루는 물론 탕후루 오마카세까지 등장했다. 딱딱해서 치아가 나갈 수 있다는 주의 사항과 과일에 설탕물 입힌 뻔히 아는 맛이란 사실은 둘째치고, 알록달록하고 반짝반짝 영롱하기까지 하니 사진이든 영상이든 인증엔 손색없겠지? 보여지는 게 때론 맛보다 달콤한, 젠지들의 핫 아이템.
Y2K는 계속된다
유행은 돌고 돈다는 법칙, 젠지에게도 적중했다. 2000년대의 키치한 감성과 향수를 자극하는 레트로 무드, Y2K가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것. 하이틴 영화에 등장할 법한 체크무늬의 투피스, 카고 팬츠 같은 패션 아이템, Y2K 룩에 방점을 찍는 헤드폰, 줄 이어폰, 필름 카메라, 빈티지 디카, 다이어리와 같은 아이템은 여전히 젠지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지금 가장 핫한 Y2K 아이템을 꼽는다면 단연 인형 키 링. 1990년대 학생들의 가방에 하나쯤은 달려 있었던 그 인형 키 링 맞다. 그 인기를 반영하듯 마지셔우드, 에스티유, 에스쁘아 등 많은 브랜드가 모남희, 코지모지 등의 인형 키 링 브랜드와 공격적으로 컬래버 제품을 출시하며 ‘키케팅(키 링+티케팅)’ 열풍을 일으키는 중! 이번 특집에 참여한 패션 디자이너 최진유는 말한다. “겪어보지 못한 과거의 것이 오히려 우리에겐 새로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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