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언의 시시각각] 기괴한 단식투쟁
“자네 생각이 결국 자살인가?”(도미니크 모런 신부)
“자살 같겠지만, 제게는 타살이에요.”(바비 샌즈)
“혹시 거룩한 희생을 꿈꾸나?”
“제가 그걸 바랄까요?”
“자네와 투사들은 생명을 존중하지 않아. 죽고 나면 삶을 알 기회가 없어.”
“신이 제게 벌을 내릴까요?”
“자살뿐 아니라 무모함에 대한 벌도 내리겠지.”
“목숨과 자유 둘 다 중요해요. 저는 제 삶을 존중하고 자유를 갈망해요. 신념을 끝까지 지키며 흔들리지 않을 거예요. 제가 옳다고 믿는 것에 목숨을 걸 겁니다.”
“그래서 나를 불렀나? 자신에 대한 의심 때문에?”
■
「 죽음 무릅쓴 단식 말려야 하고
‘결사’를 가장한 단식도 막아야
어느 쪽이든 인간 존엄성 훼손
」
영화 ‘헝거’(2008) 중반부에 등장하는 영국 북아일랜드 IRA(아일랜드공화국군) 대원 바비 샌즈와 신부(가톨릭) 도미니크 모런의 대사다. 사실을 토대로 삼은 이 영화는 칸 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받았다. 교도소 면회실에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대화하는 장면이 24분간 이어진다. 단식 결심을 밝히는 샌즈와 생명의 존엄성을 얘기하는 모런 신부 사이에 비장함이 흐른다.
샌즈는 1981년 3월 북아일랜드 메이즈 교도소에서 단식에 돌입했다. 북아일랜드 독립(영국으로부터)을 주장하는 무장조직 일원이었던 그는 방화와 무기 소지로 14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IRA 수형자들은 수인복과 노역을 거부했다. 전쟁 포로에 준하는 지위를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영국 정부는 거절했다. 샌즈를 시작으로 23명이 연쇄 단식투쟁을 벌였다. 물과 소금만 먹었다. 27세의 샌즈는 66일 만에 숨졌다. 그에게는 수감 직전에 결혼한 부인과 네 살배기 자식이 있었다.
샌즈 뒤로 9명이 같은 교도소에서 단식으로 사망했다. 단식 기간은 46일부터 73일까지였다. 교황청이 영국 정부에 서한을 보냈고, 세계 주요 언론이 보도했다. 마거릿 대처의 영국 정부는 다섯 요구사항 중 세 가지(수형자끼리 교류, 주 1회 면회 및 편지·소포 수신, 교도소 내 시위로 인한 형기 연장 취소)를 허용했다. 단식은 7개월 만에 끝났다. 복장·노역 규정은 바뀌지 않았다. 영화 ‘헝거’는 이를 승리의 역사로 미화하지도, 실패한 싸움으로 폄훼하지도 않는다. 관찰자 시각으로 전하는 장면들이 삶과 죽음, 신념과 인간의 한계를 생각하게 한다. 숨 막히게 진지하고 엄숙하다.
단식투쟁이 주목받는 것은 죽음을 무릅쓰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을 본능에 제일 반하는 방법으로 포기하는 방식 때문이다. 죽음을 불사하지 않는 단식투쟁은 단식투쟁이 아니다. 관심 끌기 이벤트이거나 자해 협박이다.
단식투쟁에 진정성이 있으면(죽음을 각오한 것이라면) 모런 신부처럼 말려야 한다. 사람이 죽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 모르는 사람이건, 아는 사람이건 마찬가지다. 죽음을 방조하는 것은 종교·도덕적으로는 물론 법적으로도 죄가 된다. 단식투쟁에 진정성이 없어도(죽음을 불사한 게 아닐 경우) 역시 그만하게 해야 한다. 자기 목숨이나 건강을 담보로 벌이는 ‘셀프 인질극’은 생명 경시를 부추기는 행위다.
이재명 대표가 지난달 31일 단식투쟁을 시작했다. 오늘이 7일째다. 5일째에 함세웅 신부를 비롯한 정의구현사제단이 그를 만났다. 함 신부가 “(이 대표가) 시련을 잘 견딜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기도했다”고 말했다고 민주당 당직자가 밝혔다. 그날 이해찬 민주당 상임고문도 이 대표를 찾아갔다. 그는 “(이 대표가) 큰 결단을 해서 경각심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단식을 말렸다는 얘기는 없다.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결심이 아니라고 봐서일까? 이 대표 단식을 중계하는 유튜브 채널의 채팅 창에는 ‘힘내세요’ ‘파이팅’ 등의 메시지가 쏟아진다. 말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기괴한 현실이다. 진짜로 목숨을 건 것이든 아니든 멈춰야 한다. 인간 존엄성이 훼손되고 있다.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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