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원의 시선] KCC가 전주를 떠나는 이유
‘킹’이란 별명으로 유명한 미국 프로농구(NBA) 스타 르브론 제임스는 농구 실력도 뛰어나지만 사업 수완도 발군이다. 2003년 NBA에 데뷔한 이후 12억 달러(약 1조6000억원)가 넘는 돈을 벌어들인 억만장자가 됐다. 사업으로 번 돈이 연봉 수입의 배를 넘는다.
그가 투자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미래 가치와 지속 가능성이다. 지난해 미국 농구 담당기자인 브라이언 윈드호르스트가 펴낸 『주식회사 르브론 제임스』를 보면 그가 억만장자가 된 비결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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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농구단 연고지 이전 논란
미국서도 흔한 ‘둥지’ 옮기기
비난보다 인프라 확충 힘써야
」
제임스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미국대표팀으로 출전했을 때 특정 회사(비츠바이드레) 헤드폰을 온종일 쓰고 다녔다. 대표팀 동료들에게도 헤드폰을 나눠줬는데 이유는 자신이 지분을 갖고 있는 이 회사 제품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제임스는 6년 뒤 애플이 이 회사를 30억 달러에 인수할 때 큰 수익을 챙길 수 있었다.
사업가 제임스의 시선은 이제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로 향한다. 제임스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은퇴하면) 라스베이거스를 연고로 하는 농구팀을 만들고 싶다”고 말하고 다닌다. 억만장자인 농구 레전드가 다음 NBA 구단의 연고지로 라스베이거스를 지목한 것이다.
그가 사막 도시를 농구 구단의 연고지로 찍은 이유는 자명하다. 라스베이거스의 미래 가치와 지속 가능성에 높은 점수를 준 것이다. 또 한 가지, 라스베이거스의 탄탄한 인프라와 이 지역 관계자들의 친화적인 태도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7월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농구 축제 ‘NBA 콘(CON)’이 열렸다. 농구 스타가 등장하는 토크쇼에 이어 농구 패션쇼와 농구 콘서트가 성황리에 열렸다. 주최 측은 농구의 전설 카림 압둘 자바를 비롯해 NBA 로고의 모델인 제리 웨스트, 올해 데뷔한 프랑스 출신 빅터 웸반야마 등을 초청해 분위기를 띄웠다.
때맞춰 라스베이거스의 한복판에는 거대한 농구공 모양의 공연장 ‘더 스피어(sphere)’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는 29일 정식 개장 예정인 더 스피어의 관중 수용 규모는 1만8000명. 웬만한 콘서트나 스포츠 이벤트를 열기에 부족함이 없다. 특히 건물 외벽에 달린 LED 스크린을 통해 건물 외관을 농구공처럼 꾸몄다. 이 도시가 NBA와 농구라는 종목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만든 듯한 모습이다. 라스베이거스는 이제 탄탄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도박의 본거지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해 스포츠 도시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를 사랑하는 건 NBA뿐만이 아니다. 메이저리그(MLB)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도 2027년 오클랜드를 떠나 라스베이거스로 연고지를 옮길 계획이다. 오클랜드 구단이 59년 만에 연고지를 옮기기로 한 결정적 이유는 홈구장인 오클랜드 콜리세움이 너무 낡았기 때문이다. 구단 측은 오클랜드시와 새 구장 건설을 논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과감하게 연고지 이전을 결정했다. 그러자 발끈한 오클랜드시는 애슬레틱스 구단을 비난하고 나섰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 아닌가. 프로농구 KCC의 연고지 이전을 둘러싼 공방과 판박이에 가깝다. 지난 22년간 전주를 연고지로 활약했던 KCC가 최근 부산으로 둥지를 옮기기로 결정한 뒤 논란이 불거졌다. 특히 전주시와 지역 시민단체들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KCC를 비난하고 있다. 전주시 측은 KCC가 연고지를 부산으로 옮기기로 작정한 뒤 체육관 건립 지연을 명분으로 삼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KCC 측은 이미 7~8년 전부터 체육관 신축을 전주시에 요청했지만, 그때마다 푸대접을 당했다고 맞받아쳤다.
NBA나 MLB 등에서 구단의 사정으로 연고지를 옮기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구단은 인프라가 뛰어나고 대접을 잘해주는 스포츠 친화적인 도시에 둥지를 틀고 싶어하는 게 당연하다. “22년간 정든 연고지를 하루아침에 떠날 수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이는 전주 관계자들의 서운한 마음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더 좋은 환경을 위해 떠나는 KCC 구단의 결정을 무조건 비난할 순 없다. 프로농구 인기가 아무리 시들하다지만, 스포츠 구단의 가치와 비전을 인식하고 새로운 체육관 건립을 서둘렀더라면 연고지 이전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전주와 라스베이거스를 단순 비교하는 건 무리다. 그러나 스포츠 구단 유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서는 라스베이거스 당국의 친화적 자세 만큼은 배울 만하다. 해당 구단의 제품 불매 운동을 벌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을 게 아니라 최소한 10년 앞을 내다보고 인프라 확충에 힘써야 한다.
정제원 스포츠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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