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의 마음 읽기] 초등생 동시에서 확인한 반려
말과 글에는 각각의 빛깔과 향기가 있다. 그래서 은연중에 누군가로부터 듣게 되는 말이나 누군가의 글을 볼 때 특별한 느낌이 들게 된다. 가령 언젠가 나는 “이리 와서 앉아봐. 내 말 좀 들어봐”라고 누군가가 말했을 때 뭔가 이 말이 매우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글로부터도 신선한 느낌을 예민하게 받게 되는데, 초등학생이 쓴 동시로부터 그러한 인상을 종종 얻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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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도 돌보는 게 진정한 반려
원한과 복수는 약한 자의 감정
선악은 함께 짓고 함께 받는 것
」
얼마 전 부산 혜원정사에서 개최한 백일장 심사에 다녀왔다. 혜원정사의 백일장은 올해로 26회째를 맞았다. 혜원정사 주지 원허 스님은 코로나가 대유행일 때에도 백일장을 공모 형식으로 바꿔 치를 정도로 백일장에 대한 애정이 많으신 분이다. 1997년부터 초중고생 대상의 백일장을 열어왔으니 절에서 개최하는 백일장 가운데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글쓰기와 관련해 두 가지를 주문했다. 하나는 곧바로 문장을 짓지 말고 집을 지을 때 우리가 먼저 설계를 하고, 또 집 짓는 데에 필요한 재료를 준비하듯이 마음속으로 내가 쓸 문장의 집을 한 번 미리 떠올려보라고 말했고, 또 하나는 어떤 생각을 갖게 되었을 때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친절하게 설명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두 시간 남짓이었다. 두 시간이 지난 후에 학생들이 쓴 작품이 모였고, 나는 초중고 학생들이 쓴 시들을 읽으며 심사를 했다. 시제(詩題)는 ‘반려’와 ‘쉼’이었다. 올해에도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좋은 시편이 많았다.
‘반려’를 제목으로 해서 한 학생은 다음과 같은 짧은 시를 지었다. ‘반려도 생명이 있다./ 반려도 생각이 있다./ 반려도 친구가 있다./ 반려도 사람처럼 대해주어야 한다./ 반려는 장난감이 아니다.’ 초등학생이 어쩌면 이렇게 큰 생각을 단단하게 지닐 수 있을까 싶어 대견했다. 반려의 대상이 강아지인지 고양이인지 햄스터인지 어항 속 물고기인지 구체적으로 쓰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누군가와 짝이 되는 동무가 되려면 그 누군가를 온몸과 전심(全心)으로 나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담겨 있었다.
‘강아지’라고 제목을 붙인 한 초등학생의 작품은 이러했다. ‘강아지를 안으면/ 기분이 좋다/ 강아지도 기분이 좋아서 꼬리를 살랑살랑/ 나도 좋아서 헤헤/ 내 강아지는 오토바이 한 대 지나가면 뭉! 뭉!/ 나와 강아지는 단짝.’ 아이와 강아지 사이에 오가는 썩 좋은 기분을 ‘살랑살랑’과 ‘헤헤’라는 시어를 통해 드러내었는데, 특히 강아지가 짓는 소리를 ‘뭉! 뭉!’이라고 쓴 대목에서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강아지가 짓는 소리가 ‘멍! 멍!’으로만 단일하게 들리는 것은 결코 아닐 테다.
한 학생이 쓴 동시를 한 편만 더 소개하자면, 이 학생은 제목을 ‘강아지’라고 달았는데 이렇게 시를 지었다. ‘강아지 털이/ 복슬 복슬/ 포근 포근/(…)/ 강아지 장난감은 삑! 삑!/ 강아지를 키우면/ 다양한 것을 느낄 수 있어/ 강아지를 포근하게 안아주면/ 강아지는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사람도 강아지를 키우면/ 행복과 사랑을 느낄 수 있어/ 강아지도 불안감을 느껴/ 잘 보살펴줘야 돼/(…)/ 마루야 사랑해!’
이 학생의 반려견 이름은 ‘마루’인 듯했다. 강아지를 노래하되 강아지가 갖고 노는 장남감 소리까지 세세하게 예로 들고 있어서 너무나 기발했고, 강아지를 반려로 해서 살아갈 때는 강아지가 느낄 수 있는 불안감까지도 돌봐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나 의젓했다. 아이들의 맑고, 밝고, 재치가 있는 글을 읽는 시간 내내 참으로 행복했다.
반려는 함께 산다는 뜻이니 이 말 속에는 수직적인 관계가 들어 있지 않다. 공존의 의미만이 담겨있다. 내가 요즘 아끼는 말 가운데 ‘공업(共業)’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그 의미는 공동으로 선악(善惡)의 업(業)을 지으면 그에 따라 공동으로 고락(苦樂)의 결과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에는 개인이 혼자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얽혀서 주고받으며 함께 이웃해서, 서로에게 반려가 되어 산다는 맥락이 강조되어 있다.
지난주 토요일에 정목 스님의 강연회가 제주에서 있었다. 스님의 강연을 들으며 메모를 했는데, 이런 말씀이 있었다. “원한을 갖지 않아야 해요. 언젠가 복수하겠다는 생각이나 ‘네가 나를 망신을 줬어? 두고 봐, 반드시 갚아줄게’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건 약자의 감정이에요. 허약한 사람의 감정이지 주인의 감정이 아니에요. 그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과 그가 행복하도록 돕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이 주인의 생각이에요.” 스님의 말씀은 공생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최근 며칠은 반려와 공업이라는 말의 뜻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던 날이었다.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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