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중도층은 버리겠다는 여야 정치 카르텔
대한민국이 뒤숭숭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8·15 경축사 이래 “공산전체주의 추종세력, 반국가세력이 반일 감정을 선동한다”며 연일 전쟁 선포 발언을 쏟아낸다. 제1야당 대표는 “검사 독재 정권에 대한 국민 항쟁”을 선언한 뒤 무기한 단식으로 맞서고 있다. 야당 대표의 단식 농성은 진정성을 의심하는 지적도 많지만, 진정성이 있어도 문제다. 168석 다수당 대표의 국회 본청 앞 단식 자체가 정치의 실종을 의미할뿐더러 7개월 남짓 남은 내년 4·10 총선까지 극한 대결을 계속할 것이란 예고다.
국민은 뜬금없고 어안이 벙벙하다. 대선이 끝난 지 545일인데 윤석열·이재명의 전쟁을 보고 또 보는 셈이어서다. 대통령은 2021년 6월 29일 대선 출마 선언문에서 ‘공정과 상식’을 이야기하며 ‘이념’은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전임 정부 ‘철 지난 이념 세력’과 철저히 선을 긋던 대통령이 돌연 우파 버전 이념 전쟁을 주도한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막겠다던 1당 대표의 난데없는 국회 단식은 또 어떤가. 본인 체포동의안은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염수 방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결론을 뒤집는 과학적 증거 없이는 안 된다. “이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그의 해명도 목적을 의심하게 한다.
대통령과 다수당 대표의 극한 대결은 일회성 정치 뉴스로 소비되지 않는다. 국정에 중요한 문제들을 모두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된다. 여야는 소속 국회의원들과 당원·지지층을 일렬종대로 줄 세우는 데 활용한다. 여야 지도부가 이미 ‘기회주의 세력 척결’을 내세워 강성 지지층을 동원하거나 총선 공천을 무기로 내부 입단속에 나선 게 대표적이다.
그래서 이번 극한 대결이 여야의 총선 전략이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지난주 한국갤럽과 전국지표조사(NBS)에서 무당파·중도층은 32%다. 그런데 국민 3분의 1인 중도층을 버리고 집토끼만 결집해 선거를 치르겠다는 거다. 가능한 방법은 있다. 중도층 국민의 선택지를 없애거나 사표(死票)로 만들면 1·2당은 과반을 누가 차지하든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일회용 위성정당 꼼수로 군소정당에 돌아갈 의석을 빼앗았던 여야가 이번엔 철 지난 지역주의 극복을 내세워 ‘권역별 비례제’로 제3지대 정당의 국회 진입을 아예 차단하겠다고 담합한 게 증거다. 권역별 정당득표율로 잘게 쪼개 의석을 배분하면 국민의힘·민주당 같은 지역주의 기반 정당이 아니고선 비례대표 입성이 불가능하다. 이런 꼼수, 정치 카르텔 척결 없이 대한민국에서 중도층 국민이 정치적 대변자를 갖기는 요원해 보인다.
정효식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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