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의 시인이 사랑한 단어] 나희덕, ‘배후’
시는 얼마만큼 현실적일까. 시는 대중이 오해하는 바처럼 낭만적인 영역을 도맡고 있을까. 시는 어떤 식으로 현실에 대한 응전력을 갖출 수 있을까. 시는 ‘나’의 목소리일까, ‘우리’의 목소리일까.
시는 이 세계의 현실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며 저항의 목소리를 내면 낼수록, 읽는 이에겐 더 다정하게 전달된다. 이 아이러니가 곧 시의 특성이다. 시가 애초에 낭만적이기 때문에 다정하게 들리는 것이 아니다. 이 시대의 징후를 노래하는 시인의 간절함은 숙고된 언어로 표출되므로 저절로 다정함이 획득되는 것이다.
누구보다 다정하고 단호하게 인류의 현실을 다루어온 나희덕 시인은, 시대가 바뀌고 인류의 쟁점이 바뀔 때마다 부지런히 그 한가운데로 헤엄쳐 들어갔다. 우리가 발 딛는 암담한 현실을 시인은 시의 배후로 보았다. 시인에겐 언제나 ‘새로운 배후가 생겼다.’(시집 『파일명 서정시』) 시대의 쟁점과 열망이 신체화하는 시인의 사명을 두고 시인은 이렇게 표현한다. ‘어느 날 귓바퀴를 타고 들어와/ 잠복 중인 발소리// 새로운 배후가 생긴 뒤로/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귀가 운다/ 피 흘린다.’ 귓속으로 들어와 버린 배후의 발자국 소리에 귀를 내어놓는 시인. 배후가 외부가 아니라 내부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 현실에 응전력을 갖는 방식 중, 시의 방식은 이렇게나 적극적이고 열렬하다.
시인은 서정적 주체의 권능이 서서히 사라진 21세기에서 새로운 우리의 출현을 지켜본다. 그의 시론집 『문명의 바깥으로』의 마지막 문장은 이러하다. “나는 우연성이 빚어내는 혼돈의 세계에서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단일한 ‘나’로 존재하는 것을 포기하거나 반납함으로써 새로운 ‘우리’에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시는 이런 식으로 나의 목소리가 아니라 우리의 목소리가 된다. 모두가 익히 알던 방식이 아니었을 뿐, 시는 언제나 공동체의 목소리였을 것이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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