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소재 ‘실리콘 음극재’가 뭐길래…배터리 소재의 게임 체인저

김경민 매경이코노미 기자(kmkim@mk.co.kr) 2023. 9. 5.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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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품질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실리콘 음극재 등 배터리 소재 경쟁이 치열해졌다. 사진은 서울의 한 주차장에서 전기차들이 충전하는 모습. (연합뉴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커지면서 전기차 품질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배터리 소재 경쟁도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배터리 핵심 소재 중 하나인 음극재 시장에서는 최근 배터리 밀도를 높이고 충전 시간을 단축시키는 실리콘 음극재가 ‘게임 체인저’로 각광받으면서 기업 간 경쟁도 뜨거워졌다.

실리콘 음극재 개념 들여다보니

흑연 대비 고용량, 고출력 가능

배터리 소재는 크게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질 등 4가지로 나뉜다. 이 중 음극재는 배터리 재료 원가 비중의 14%가량을 차지하는 핵심 소재다. 양극에서 나온 리튬이온을 저장했다 방출하면서 외부 회로를 통해 전류를 흐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음극재는 충전 속도와 수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배터리는 용량이 늘어나면 무게, 크기가 늘어나고 반대로 용량을 줄이면 성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딜레마’다. 전기차 중량을 고려하면 배터리 무게와 크기를 무작정 늘리기 어려운 만큼, 음극재 원료를 바꿔 에너지 밀도를 높이는 방법이 중요해졌다. 에너지 밀도가 높아지면 배터리 내부에서 리튬이온이 오가는 거리가 짧아져 배터리 충전 속도, 출력이 높아진다.

그동안 음극재를 만들 때는 규칙적인 층상 구조로 쌓인 흑연을 주로 사용해왔다. 흑연은 천연흑연과 인조흑연으로 나뉜다. 천연흑연은 리튬이온을 보관할 수 있는, 안정적이면서 저렴한 재료다. 하지만 사용 중 팽창 문제가 생겨 구조적 안정성이 점차 떨어진다는 것이 단점이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인조흑연이다. 인조흑연은 3000도 이상 고온에서 열처리해 만들어진다. 천연흑연보다 구조가 균일해 안정성이 높다는 평가다. 다만 추가로 제조 공정을 거쳐야 해 가격이 비싸다는 것이 단점이다. 인조흑연을 생산하려면 정유공정 부산물인 ‘석유계 피치’나 제철공정 부산물인 콜타르 원료를 가공해 침상 코크스, 즉 철강용 석탄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이를 분쇄한 후 뭉쳐서 가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흑연의 한계가 부각되면서 배터리 업계에서는 고용량 배터리 제조를 위해 차세대 음극재 소재를 잇따라 개발하는 중이다.

최근 각광받는 실리콘 음극재는 흑연 대신 실리콘을 이용해 제조하는 음극재다. 실리콘 음극재는 기존 음극 소재인 흑연에 실리콘산화물(SiOx), 실리콘탄소복합체(SiC), 퓨어실리콘(Pure Silicon) 등 실리콘 소재를 첨가해 만들어진다.

실리콘은 여러모로 장점이 많다. 흑연은 탄소 원자 6개당 리튬이온 1개를 저장하는 데 비해, 실리콘은 탄소 원자 4개당 리튬이온 15개를 저장할 수 있다. 실리콘 음극재의 단위 에너지 용량이 흑연보다 20배 이상 높다는 의미다. 에너지 밀도도 흑연은 1g에 350㎃h인데, 실리콘은 1500~2000㎃h로 4배가 넘는다. 그만큼 실리콘 음극재가 흑연 음극재보다 고용량, 고출력 성능을 보유했다는 뜻이 된다.

실리콘 음극재는 흑연 음극재보다 급속 충전 설계가 쉬워 충전 속도를 높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실리콘 음극재 비중이 10%를 넘으면 보통 30분 이상 걸리는 전기차 충전 시간을 5분가량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전기차 업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글로벌 전기차 업체마다 전기차 주행 거리 확대, 급속 충전에 안간힘을 쓰는 만큼 실리콘 음극재 활용도가 점차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덩달아 글로벌 실리콘 음극재 시장도 점차 커지는 중이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글로벌 실리콘 음극재 시장은 지난해 4억달러(약 5340억원)에서 2032년 287억달러(약 38조3100억원)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기업 잇따라 진출

SK, 포스코, LG화학 잰걸음

국내 기업들도 실리콘 음극재 시장에 속속 뛰어드는 모습이다.

포스코홀딩스는 지난해 7월 실리콘 음극재 전문 기업 테라테크노스를 인수해 차세대 음극재 시장에 뛰어들었다. ‘포스코실리콘솔루션’으로 사명을 바꾼 이 회사는 2017년부터 실리콘 음극재 소재인 SiOx 제조 기술을 개발 중이다. 여세를 몰아 경북 포항에 연산 5000t 규모 실리콘 음극재 공장을 짓고 있다. 2030년 생산량을 연 3만5000t으로 늘린다는 목표다.

글로벌 기업과 합작하는 사례도 나왔다. SK㈜ 자회사 SK머티리얼즈는 실리콘 음극재 기술을 보유한 미국 그룹14테크놀로지와 합작법인 ‘SK머티리얼즈그룹14’를 설립했다. 1조1000억원을 투자해 경북 상주에 연 2000t 규모의 실리콘 음극재 공장을 완공했다.

SKC는 실리콘 음극재 사업을 본격화하기 위해 최근 자회사 ‘얼티머스’를 설립했다. 지난해는 컨소시엄을 통해 영국 실리콘 음극재 기업인 넥세온에 8000만달러(약 950억원)를 투자했다.

넥세온은 실리콘 비중을 10% 이상으로 높인 2세대 실리콘 음극재 기술을 보유한 회사다. 현재 상용화된 실리콘 음극재는 실리콘 탑재 비중이 5% 수준인데 이 비중이 2배가량 높아진다는 의미다. 덕분에 2세대 실리콘은 기존 전기차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를 최대 50%까지 향상시킬 수 있다. 기술력을 인정받은 덕분에 일본 파나소닉과 실리콘 음극재 납품 계약을 맺기도 했다. LG화학은 실리콘 비중을 100%까지 높인 ‘퓨어실리콘 음극재’를 개발 중이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프랑스 실리콘 음극재 회사 엔와이어즈 투자에 나섰다. 엔와이어즈는 연 2.5t 규모 실리콘 음극재 파일럿 생산라인을 갖췄다.

중소·중견기업 중에서는 대주전자재료가 실리콘 음극재를 양산, 공급해왔다. 2019년 세계 최초로 포르쉐 전기차 타이칸에 실리콘 음극재를 적용했다. 연간 실리콘 음극재 생산능력은 3000t 수준인데 최근 공격적인 증설에 나섰다. 경기도 시흥 배터리캠퍼스 증설을 진행 중인 한편, 전북 새만금산업단지에 공장 부지를 확보하고 이르면 연내 착공할 예정이다. 심원용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대주전자재료는 2025년 말 실리콘 음극재를 연간 2만t 생산해 업계 내 독보적인 생산 규모를 구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 완성차 업계도 실리콘 음극재를 적극 활용하는 모습이다.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차세대 배터리인 ‘4680 원통형 배터리’에 실리콘 음극재를 탑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포르쉐는 핵심 모델인 타이칸EV의 실리콘 음극재 배터리를 확대할 계획이다. 김현수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테슬라를 비롯한 글로벌 업체들이 전기차 주행 거리 향상, 충전 시간 단축을 위해 실리콘 음극재 기술에 주목하는 모습”이라며 “에너지 밀도를 높이기 위한 하이니켈 양극재 용량은 한계에 이른 만큼 실리콘 음극재가 향후 차세대 배터리 원료로 각광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업들이 너도나도 실리콘 음극재 시장에 뛰어들지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실리콘 음극재는 배터리 충전 시 흑연보다 5배 이상 팽창, 수축하는 문제로 부서짐 현상이 발생해 아직까지 상용화가 쉽지 않다는 우려다. 전해액과의 분해 반응이 가속화되고, 표면 막이 두껍게 형성되면서 리튬이온 이동을 저해해 수명이 줄어든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실리콘 음극재 장점이 많지만 여전히 구조가 불안하고 부피 팽창 등 부작용이 나타나 관련 기술 연구개발이 진행 중이다. 기존 흑연 음극재를 대체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5호 (2023.09.06~2023.09.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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