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전지 고점론…하락 베팅 상품 속속 등장
올여름 국내 증시를 뜨겁게 달군 2차전지 테마주 열풍이 서서히 식어가는 모양새다. 8월 들어 관련 종목의 거래량, 거래 대금 등 수치가 확연히 줄어들며 주가도 7월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초전도체, 맥신 등 증시 주도주가 빠르게 바뀌며 2차전지에 대한 주목도 역시 다소 떨어진 상황이다.
2차전지 고점론이 서서히 고개를 드는 가운데, 2차전지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금융상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만큼 시장에서 수요가 있다는 뜻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공매도를 조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나타낸다. 여전히 2차전지 주가 전망을 놓고 의견이 팽팽히 갈리는 상황에서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상품에 투자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개별 업종 인버스 ETF는 국내 최초
지난 7월 국내 주식 시장에는 2차전지 광풍이 불었다. 2차전지 주요 종목을 추종하는 한국거래소 KRX 2차전지 K-뉴딜지수는 7월 한 달간 약 16% 상승했다. 에코프로, 에코프로비엠, 포스코퓨처엠 등 화제의 중심에 올랐던 종목으로 구성된 지수다. 그러나 8월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8월 1일부터 29일까지 KRX 2차전지 K-뉴딜지수는 약 9% 하락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와 코스닥지수가 각각 3%, 2%씩 빠진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무엇보다 구성 종목 거래량과 거래 대금이 확연히 줄었다. 이 기간 구성 종목 거래량은 1162만주에서 479만주로 59% 감소했다. 거래 대금도 5조6065억원에서 2조830억원으로 63% 줄었다. 해당 10개 종목 총 시가총액도 373조7947억원에서 344조4309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2차전지 열풍이 식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2차전지 종목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금융상품이 줄줄이 등장하며 2차전지 고점론에 불을 지핀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8월 17일 주식워런트증권(ELW) 365종목을 신규 상장했다. 지수형 ELW 85종목과 종목형 ELW 280종목이다. 종목형 ELW에는 에코프로비엠, 포스코퓨처엠, 엘앤에프 등 2차전지 종목도 상당수 포함됐다.
ELW는 개별 종목이나 주가지수를 만기일에 미리 정한 가격으로 매수(콜)하거나 매도(풋)할 수 있는 권리를 거래하는 상품이다. 그중 풋옵션 ELW는 만기일에 정해진 가격으로 주식을 팔 수 있는 권리다. 예를 들어 현 주가가 1만원인 주식을 1년 만기로 8000원에 팔 수 있는 풋옵션 ELW를 1000원에 샀다면, 1년 뒤 해당 주식 주가가 5000원으로 내려갈 때 권리를 행사해 8000원에 팔 수 있다. 이 경우 투자자는 주가 차익(3000원)에 ELW 매수비용(1000원)을 뺀 2000원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 풋옵션 ELW는 만기 전까지 해당 주가가 행사 가격 밑으로 떨어지지 않으면 투자자가 손실을 볼 수 있다. 즉, 주가 하락을 내다보고 투자하는 상품이다.
2차전지 종목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상장지수펀드(ETF) 상장도 임박했다. KB자산운용은 9월 중순 ‘KBSTAR 2차전지TOP10 인버스 iSelect’ ETF를 상장할 예정이다. 인버스 ETF는 기초지수 하락 시 일일 변동률을 마이너스(-) 1배수로 추종하는 상품이다. 예를 들어 추종하는 지수가 1% 하락할 때 인버스 ETF는 1%의 수익률을 올리게 된다. 반대로 지수가 1% 상승하면 마이너스 1% 수익률을 기록한다.
KB자산운용이 선보일 상품은 아이셀렉트(iSelect) 2차전지 TOP10 인버스지수를 기초지수로 한다. iSelect 2차전지 지수 구성 종목 중 유동 시가총액 상위 10개 종목에 역방향으로 투자하는 상품이다. 8월 29일 기준 지수에서 비중이 높은 10개 종목은 에코프로, 에코프로비엠, 포스코퓨처엠,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삼성SDI, 엘앤에프, 고려아연, 코스모신소재, SK아이이테크놀로지 등이다. 즉, 이들 주가가 떨어질수록 수익률이 높아진다.
국내에서 시장 대표 지수가 아닌 개별 업종을 추종하는 인버스 ETF가 등장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2차전지 관련주 하락에 투자하려는 투자자는 이들의 비중이 높은 코스닥150지수 인버스 ETF에만 투자할 수 있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상품은 시장에서 수요가 있기 때문에 개발된다”며 “2차전지 관련 상품 시장이 충분히 확대된 만큼 위험 회피 수단이나 단기 트레이딩 상품도 나올 시점이 됐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어 “2차전지주 비중이 높은 코스닥 인버스 ETF에 최근 개인 투자자 매수세가 몰린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덧붙였다.
증권가는 과열 우려 여전
일각에서는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상품이 해당 종목 공매도를 부추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공매도 역시 주가 하락 시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 기법이라는 점에서다. 공매도는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투자자가 주식을 빌려 매도한 뒤, 해당 주식 가격이 떨어지면 다시 매수해서 갚는 방식이다.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만 공매도가 가능하기 때문에 주가 상승을 기대하는 개인 투자자들과 팽팽한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풋옵션 ELW나 인버스 ETF 등 개인이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이 늘어난다면, 2차전지 종목들이 공매도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같은 이유로 개인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해당 상품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개인 투자자들로 구성된 일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해당 운용사가 상품을 철회하도록 집단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는 2차전지 종목의 주가 상승을 기대하는 개인 투자자가 여전히 많다는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
다만 증권가는 2차전지 종목에 대한 과열 우려를 지속적으로 드러낸다. 주가 측면에서 올해 급격히 불어난 기업가치가 부담스러운 수준이라는 판단이다.
각 증권사들은 2차전지 종목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의 보고서를 한동안 발간하지 않았지만, 최근 일부 종목에 대한 투자의견을 하향 조정한 보고서가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8월 3일 실적을 발표한 에코프로비엠에 대한 투자의견이 줄줄이 하향 조정됐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8월 들어 메리츠증권, NH투자증권, IBK투자증권이 에코프로비엠 투자의견을 기존 ‘매수’에서 ‘중립’으로 낮춰 잡았다. 국내에서 ‘중립’ 의견은 사실상 ‘매도’ 신호로 여겨진다.
지난 8월 29일 하이투자증권은 ‘중립’ 투자의견을 유지하며 에코프로비엠 주가 상승에 부정적인 전망을 담은 보고서를 발간했다. 정원석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에코프로비엠 주가는 최근 수급 요인에 영향을 크게 받으며 과도하게 높아진 상태”라며 “특별한 기초체력(펀더멘털) 변화가 감지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주가 급등세는 분명 정상적인 움직임은 아니라고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현재 주가수익비율(PER)은 이미 2027년 예상 실적 기준의 26배 수준”이라며 “추가 주가 조정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당분간 상승 여력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국내 양극재 업체들의 3분기 실적에 대한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럽과 북미 지역의 전기차 수요 부진으로 양극재 발주 증가율이 둔화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유럽에서는 전기차 보조금이 축소된 데다, 충전 비용이 상승하며 수요가 감소했다. 북미 지역에서는 주요 구매층이 얼리어답터에서 일반 대중으로 확산되는 단계에서 일시적인 수요 부진 현상이 나타난다.
전창현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3분기 양극재 판매량은 2분기 대비 10% 내외로 증가해 기존 기대치를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며 “수출 가격도 지난 5월부터 8월 사이 약 15% 하락한 만큼 3분기 수익성 개선폭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5호 (2023.09.06~2023.09.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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