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북클럽 3기] 역사가 이렇게 증언하는데 대통령을 어쩌나
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 3기입니다. <편집자말>
[장순심 기자]
일본은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인한 조선인들의 학살에 대해서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일본이 발표한 올해 외교청서에서 '다케시마는 역사적 사실에 비춰봐도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한 일본 고유의 영토'라며 대한민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미국 국방부는 우리의 '동해'를 '일본해가 공식 표기가 맞다'라고 발표했다. 우리의 역사는 아직도 외세에 의해 흔들린다.
이러한 일본의 역사 왜곡과 만행에 대해 우리 대통령의 태도는 우려스럽다. 나아가 그들의 편이 아닌가 싶은 입장 표명도 종종 나온다. "100년 전 역사 때문에 그들(일본)이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거나, 강제동원 해법으로 우리 기업이 동원되는 '제삼자 변제'를 공식 발표하거나.
상황이 이러하니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물어야 하는지, 구체적이고 명시적인 규정은 없는 것인지 답답증을 느끼는 중이다.
국민의 한 표 한 표가 모여 부여한 최고 통치자의 권한은 범위와 정도가 분명하다고 믿고 싶다. 그러나 '국가를 수호하고 국민을 보호한다'는 대통령 선서는 이 정권에서는 그야말로 박제된 문장이고 공허한 구호가 되었으며 그 무게는 한없이 가벼운 것 같다.
대통령의 말이 곧 국가이고 국정의 방향이 되는 만큼, 책임과 의무에 관한 세세한 규정과 그것을 성실히 수행하지 않았다고 판단될 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 또한 절실히 필요한 지점이다.
일제강점기와 관련한 정부의 역사 인식, 건국에 대한 논란, 일제의 지속적인 역사 왜곡과 부정 등의 만행, 파란만장한 독립운동의 역사에 대해서도 나의 생각과 대통령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여러 여론조사를 토대로 보면, 국민의 약 60%는 대통령의 국정의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한다. 다수결로 선출된 대통령이 국민의 다수가 원하는 방향에 반하는 의사결정을 내릴 때,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고민이 많은 상황에서 윤정모 작가의 책을 만났다.
▲ 그곳에 엄마가 있었어, 윤정모(지은이) |
ⓒ 다산책방 |
윤정모 작가의 소설 <그곳에 엄마가 있었어>는 '태평양 전쟁 말기 학병과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의 고통과 저항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서사화한다(이명원 문학평론가)'. 엄연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부정과 은폐, 거짓으로 포장된 화해와 그것을 집요하게 강요하는 황당한 현실에서 소설은 역사를 관통하는 진실을 바탕으로 한다.
작품 속 주인공은 소설가다. 주인공을 소설가로 제시한 것도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작품의 창작이며 감정에 매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장치라고 봤다. 소설가인 주인공이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겪었던 엄청난 정신적 고통에 대해 전체적인 시각에서 진실을 드러내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담긴 설정은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내가 겪었던 일을 빠짐없이 다 얘기하겠지만 듣는 사람은 내 아들이 아닌 소설가여야 한다. 소설가는 이 얘기를 객관적으로 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겠니?... 사람에겐 육신과 정신의 주인이 각각인 경우가 있다고, 노예가 바로 그런 경우라고. 하지만 육신의 주인이 다른 사람일지라도 정신만 확고하고, 그 정신이 순결하다면 그 사람은 순결한 사람이라고. 우리는 그 말 하나에 의지하면서 그 지옥을 견뎌냈다."(169~170쪽)
주인공은 아버지로부터 자기 존재를 거부당했다. 소설가인 그는 5년 만에 작품을 발표한다. 그의 소설 '그 남자를 죽였다'에서, 그는 자신의 피해의식과 심리와 정서를 이중적으로 표현하며 아버지를 살해하는 것을 판타지적으로 묘사한다. 즉 아버지로부터 출생과 존재 자체를 부정당한 자신의 경험을 소설에 투영한 것이다.
소설평이 실린 신문을 읽은 그날, 그는 자신의 인생사전에는 없던 '아버지'의 부고 전보를 받는다. 자신이 소설에서 죽인 아버지가 정말로 죽은 것이다. 아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아버지와 그를 아버지라고 확신할 수 없는 아들의 만남은 단 네 번이었다.
나는 지금 전쟁터로 끌려간다. 남태평양 어느 곳에서 죽거나 운이 조으면 살아남을 것이다. 만약 전사한다면 저승 심판관에게 이 기록장을 고발용으로 제출할 것이다.(p.54)
주인공 문하는 과거 그는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한 의문과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망상을 거쳐 죽음의 공포로 이어지는 신경쇠약 증상을 앓았었다. 3년을 버티던 어느 날 '나는 신경쇠약을 앓았다. 그것은 질병이 아니었다. 나를 진단하고 성찰하게 하는 스승과도 같았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프루스트의 고백을 접하며 극적으로 자신의 병세를 축복으로 받아들이고 극복할 수 있게 된다.
아들에게 심각한 정신적 상처를 입힌 아버지 배광수 또한 전쟁터에서 온갖 참상을 겪은 사람이었다. 간신히 집으로 돌아온 그는 정신적 지주였던 형의 죽음으로 인해 '정신에 금이 간 남자'로 남은 생을 살다 죽음을 맞았다. 부모의 상처는 고스란히 자식에게로 전염되고 모질게 노력해야 간신히 극복할 수 있다.
아버지가 남긴 일기장을 읽으며 문하는 부모의 과거를 추적한다. 1943년 10월부터 1945년 6월 초순까지의 일기를 통해 문하는 지독한 전쟁의 실체와 그 중심에 있던 아버지 배광수, 그리고 자신을 태어나게 한 존재의 근원에 다가서게 된다.
실제 인물들 반영된 주인공들
책을 읽고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나라의 운명이 다하면 국민들의 운명도 나라를 따라 맥없이 스러지는 현실이 착잡했다. 특히 의미도 모르고 '정신대'에 끌려가거나 자원한 여성들의 삶은 죽음보다 처참했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들은 모두 강제로 끌려갔거나 공장에 취직해 돈을 벌 수 있다는 거짓 선전에 속았고 그곳에서 그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소설은 6만 7만 명의 정신대와 그보다 더 많은 수의 학도병들의 인간성이 말살되는 현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작가는 소설의 주요 인물들이 실제 인물들의 반영이었다고 말한다.
작품 후반부에 실린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은, 끊임없이 조작하고 감추려는 일본 정부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언이며 대응 방법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 이는 위안부 문제를 다룬 소설에서의 허구적 성격에 강한 신뢰성을 부여하며 역사적 판단의 근거를 제공해 준다.
정신대 피해자들은 1990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NGO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 출범하기 이전까지, 우리의 역사에서 지워졌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가장 참혹한 현장에 방치되었던 피해자였으며 가장 용감한 전사로 거듭나게 된다. 그리하여 국내 여론과 국제 여론을 만들었고 세계에 그 참상을 알린 인권운동가들이었다.
역사적 사실은 엄연한데, 더 화가 나는 것은 우리 정부의 태도다. 지난 과거일 뿐이고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며 '판결금'의 수령을 강요한다. 어떠한 사죄와 보상도 없이 정신대 피해자 할머니들의 대부분이 세상을 떠났다. 죽은 배광수의 말대로, 저승 심판관의 판단에 맡겨야 하는 것일까. 한 분이라도 살아계실 때 그들을 단죄할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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