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제가 법정에 서야 합니까?" 참사 유가족의 원통한 재판 [낮은 자를 위한 지혜, 유현석공익소송기금]
"법은 가진 자의 무기가 아니라 낮은 자를 위한 지혜가 되어야 한다." 평생을 실천하는 신앙인으로서, 의로운 인권변호사로서, 약자들의 벗으로서 한결같은 삶을 살다 2004년 선종하신 고 유현석 변호사님의 생전 말씀입니다. 유 변호사님은 70년대 남민전 사건, 80년대 광주항쟁, 90년대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등 굵직굵직한 변론으로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천에 분투하셨습니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2009년 5월 유 변호사님의 5주기에 맞춰 유족이 고인의 뜻을 기리고자 출연한 기부금을 바탕으로 '유현석공익소송기금'을 출범시키고, 공익소송사건을 선정하여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 연재를 통해 기금의 지원을 받아 진행된 소송이 우리 사회에 남긴 변화를 되짚고자 합니다. <기자말>
[이원호]
2016년 11월 21일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원에서 원통한 재판이 열렸다. 검찰이 기소한 죄목은 공직선거법 위반이었고, 피고인은 2009년 용산 재개발지역에서 철거민 다섯 명과 경찰특공대원 한 명이 사망한 용산참사의 유가족들이었다.
피고인이 된 용산참사 유가족
▲ 2016년 용산참사 책임자 김석기 규탄 기자회견 |
ⓒ 용산참사7주기 추모위원회 |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피켓을 들고 시민들에게 김석기의 용산참사 관련 행적을 알리는 유인물을 나눠준 행위에 대해 검찰은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며 유가족과 활동가들을 기소해 징역 1년에서 벌금 300만 원 등을 구형했고, 법원은 벌금형의 유죄를 판결했다. 당시 공직선거법은 누구든지 선거일 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한 △현수막 등의 게시(제90조 제1항 제1호) △피켓 등 표시물의 착용(같은 항 제2호) △인쇄물의 배부(제93조 제1항) 등을 금지하고 있었다.
유가족이 법정에 서고 유죄판결을 받는 상황은 너무 서러웠다. 생애 처음 법정에 선 용산참사 유가족은 원통함에 호통치듯 판사를 향해 "왜 제가 이 법정에 서야 합니까? 내 남편을 죽인 김석기는 처벌하지 않고, 왜 피해자인 유가족이 재판받아야 합니까?"라고 말하며 흐느꼈다. 살인적인 개발에 저항하는 철거민들의 목소리를 단 하루 만에 살인적인 과잉 진압으로 학살한 책임자 김석기 등을 단 한 번도 법정에 세우지 못했는데, 그 피해자 유가족들이 김석기로 인해 법정에 서서 유죄판결을 받은 원통한 현장이었다.
국회의원이 된 김석기
김석기는 2009년 1월 20일 용산참사 발생 당시 경찰 지휘 책임자였다. 철거민들이 농성을 시작한 날, 현장을 찾은 김석기 청장은 "백주 대낮에 시내 한복판에서 어찌 이런 일이 있나, 이런 것을 방치하면 안 된다"라며 조기 진압을 주문하고, 현장에 배치된 경찰특공대장을 격려했다.
사망 사건이라는 참사가 발생하여 과잉 진압 책임을 추궁당하자, 진압 당시 집무실의 "무전기를 꺼 놨다"며 발뺌하고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돌려 사회적인 지탄을 받고 사퇴했다. 그러더니 이명박 정권에서 오사카 총영사로 임명됐고, 임명 8개월 만에 중도 사퇴하고 돌아와 2012년 경주에서 19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당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나와 낙선했으며 이후 박근혜 정권에서 한국공항공사 사장에 취임했다가 역시 중도 사퇴하고 20대 총선에 출마해,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공천을 받아 금배지를 달았다.
당시 국회의원에 출마하며 김석기 후보는 "용산 진압은 정당했고, 법과 원칙을 지켜 국가와 국민을 지켰다"라고 말했다. 국민 여섯 명이 사망하는 참사를 낳았는데도 정당했다고 하는 그의 말이 소름 끼쳤다. 그에 말에 따르면, 대테러 전담 부대인 경찰특공대를 동원한 강경 진압은 철거민들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해 죽임으로써 국민을 지킨 행위가 되었다. 그에게 개발에 저항하는 철거민들은 국민이 아니었다.
여섯 명의 국민이 죽은 참사의 책임이 있는 그는 금배지를 달자 더욱 거침이 없었다. 2016년 국정감사에서는 백남기 농민을 죽음으로 내몬 물대포 진압에 대해 "우리나라 해역에 들어와 불법 어업에 종사하는 중국 어선을 상대로 단속하는 과정에서 행사하는 정당한 공권력 행사와 비슷하다"는 망언을 퍼붓기도 했다. 경찰들에게 권력에 저항하는 민중들에 대한 살인 면허라도 부여하겠다는 듯 경찰폭력을 정당화하고 강경 진압을 주문했다.
▲ 용산참사 유가족과 생존 철거민들이 2018년 9월 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의 권고안에 따른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석기 전 경찰청장의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
ⓒ 유성호 |
김석기가 출마한 선거 시기뿐만 아니라 유가족들은 참사 당일부터 줄곧 김석기 등 책임자 처벌을 촉구해 왔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절규했던 유가족들의 외침에 대해, 공직선거법은 선거 시기라는 이유로 침묵할 것을 강요했다. 이에 유가족들은 '침묵의 선거'를 강요하는 공직선거법에 대해 2017년 2월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천주교인권위원회 유현석공익소송기금의 지원으로 청구한 헌법소원은 선거 시기 특정 후보나 정당을 지지·반대하는 문서 배부와 현수막·피켓 게시, 확성장치 사용 등을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조항들이 헌법 제21조 제1항의 언론·출판과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취지였다.
유가족들은 김석기가 예비후보로 등록한 이후에야 출마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해당 공직선거법 조항들은 선거일 전 180일부터 인쇄물의 배부 등을 금지하고 있어, 선거일 전 120일부터인 국회의원 예비후보 등록 시점에서는 인쇄물의 배부 등이 이미 금지되어 있었다. 후보자에 대한 의견 표명의 욕구가 높아지는 선거 시기에 오히려 의견 표명을 금지하는 공직선거법에 의해 표현의 자유는 '향유할 가치가 별반 없는 시기에만 누릴 수 있는 자유'라는 모순에 처했던 것이다.
해당 공직선거법 조항들이 선거의 공정성을 해하는 결과의 방지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선거의 공정성은 후보자에 관한 여러 견해를 내놓고 그에 관한 토론과 논증이 벌어지는 등 후보자에 대한 정보의 자유로운 교환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표현의 내용이나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표현 '수단'을 전면 금지해 의사 표현행위 그 자체만으로 처벌하는 공직선거법은, 표현의 자유를 원천 봉쇄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 청구의 이유였다. 표현의 자유를 희생하여 '침묵의 선거'를 치르고 그러한 '침묵'이 공정한 것이라고 강요하는 공직선거법은, 정작 민주주의의 장이 되어야 할 선거제도에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아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위헌적 내용을 담고 있었다.
2022년 7월 21일 헌법재판소는 일부 위헌, 일부 헌법 불합치, 일부 합헌을 선고했다. 헌재는 선거기간에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는 집회나 모임을 금지한 조항을 위헌으로, 현수막, 벽보 등 시설물을 설치, 게시하는 행위를 금지한 조항과 선전물 배포 등을 금지한 조항은 헌법에 어긋난다며 헌법 불합치로 판단했다. 헌법불합치조항은 2023년 7월 31일을 시한으로 개정할 때까지만 적용을 명했다.
▲ '용산참사' 당시 진압 책임자였던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2016년 3월 2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20대 총선 공천자대회에서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공동선대위원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 전 청장은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고 20대 총선에서 경북 경주에 출마했다. |
ⓒ 남소연 |
그러나 지난 7월 말로 개정시한이었던 헌법 불합치 조항은 거대 양당이 합의하지 못해 기일 내 개정되지 못해 실효되었고, 지난 8월 24일 국회는 실효된 조항의 일부 요건만 수정해 사실상 위헌적 조항을 부활시키는 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국회는 해당 조항 적용 시작일을 선거일 전 180일에서 120일로 축소하는 정도에 그쳤다. 개정된 선거법은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를 무력화시켰고, 여전히 위헌적인 침묵의 선거를 강요하고 있다.
이제 내년 1월 20일이면 용산참사 15주기가 된다. 그리고 그때쯤이면 또다시 김석기의 22대 국회의원 선거 예비후보 등록소식이 들려올 것이다. 달라진 것 없이 매년 돌아오는 기일을 보내기도 힘든데, 15주기를 또다시 끔찍하게 보내야 할 유가족들의 심정을 헤아리기 어렵다. 여전히 부당한 공직선거법은 15주기를 참담하게 맞이하는 유가족들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있다.
용산참사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유가족들의 외침이, 선거 시기라고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너무도 명백하다. 참사의 책임자들을 단죄하지 못해, 반복되는 국가폭력과 참사를 목도해야 하는 지금의 현실이 그 이유를 명백히 밝혀주고 있다. 이 비극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피해자가 아닌 책임자를 법정에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한 피해자들의 정당한 외침을, 원통한 피해자들이 말할 권리를, 부당한 선거법의 틀로 가두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낮은 자를 위한 지혜, 유현석공익소송기금' 연재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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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이원호 활동가(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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