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견 경태' 후원 6억 '꿀꺽' 택배기사, 항소심도 5년 구형

검찰 "피해자 1만명 넘어, 죄질 불량"
택배기사 A씨 "여친 범행 몰랐다" 호소

유기견을 앞세워 '경태 아부지'라는 이름으로 후원금을 받고 잠적했던 전직 택배기사의 항소심에서 검찰이 원심과 같은 징역 5년을 구형했다.

5일 오전 서울동부지법 1-3형사항소부(재판장 소병석)는 사기, 기부금품법 위반 혐의를 받은 택배기사 출신 A(34)씨에 대한 항소심 공판기일을 열었다.

이날 검찰은 항소심에서 범행에 사용된 대포 계좌 거래 내역을 추가 증거로 제출하며 재판부에 징역 5년형을 요청했다. A씨는 “매일 택배 일을 하느라고 도박에 관여할 수 없었고, 후원금을 쓰지도 않았다는 점을 탄원서를 통해 주장한 바 있다”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앞서 A씨는 공범으로 지목된 여자친구 B(39)씨가 자신 몰래 기부금을 모집하고, 도박에 탕진한 것이라며 일부 혐의를 부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은 “여자친구와 함께 동거하고, 도피를 준비하던 기간에 일어났던 범행인 만큼 이러한 상황에서 여자친구의 범행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논리에 반한다”며 “선의로 강아지 ‘경태’를 돕고자 했던 피해자가 1만여명이 넘어 죄질이 매우 불량한 만큼 전부 유죄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1월 열린 1심에서 검찰은 A씨와 B씨에게 각각 징역 5년, 징역 7년을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각각 징역 2년, 7년을 선고했다. 이에 A씨와 B씨는 양형 부당을 이유로 항소했고 검찰도 항소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B씨가 실질적으로 SNS를 관리하고 후원금을 관리한 '주범'이라고 판단했다.

A씨와 B씨는 2020년 유기견 출신 ‘경태’를 택배 차량에 태우고 다니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서 ‘경태아부지’라는 이름으로 유명세를 얻었다. 이후 유기견 ‘태희’를 추가로 입양하며 인지도를 쌓았다.

이들은 지난해 3월 말부터 4월 초 사이 ‘경태’와 ‘태희’의 병원 치료비가 필요하다며 SNS를 통해 신고하지 않고 모금을 진행해 총 1만2808명에게 약 6억1000만원을 챙기고 잠적한 혐의로 기소됐다. SNS를 통해 ‘사고가 나서 택배 차량이 고장 났다’, ‘일을 할 수 없는데 강아지들이 아프다’며 호소해서 후원금을 받은 후 계정을 닫고 잠적했다.

이후 A씨의 사연이 거짓말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경태는 유기견이 아닌 A씨의 여자친구인 B씨가 2013년부터 길러온 반려견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많은 이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후원금을 인터넷 도박, 생활비 등으로 탕진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와 B씨는 경찰의 조사 요구에도 불응하고 도피 생활을 이어가다가 결국 6개월 만에 검거됐다.

한편 ‘경태’는 이들의 대구 자택에서 발견됐으며, B씨의 가족에게 인계된 것으로 알려졌다. A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는 오는 14일 이뤄질 예정이다.

김현정 기자 kimhj2023@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