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폐암 연관성 12년만에 첫 인정…599명 추가 구제
가습기살균제 사태가 발생한 지 12년 만에 정부가 처음으로 가습기살균제 성분 물질과 폐암의 연관성을 공식 인정했다.
환경부는 5일 오후 서울역 인근에서 제36차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위원회를 열고 599명에 대해 추가로 구제 급여를 지급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심사 결과 그간 피해를 인정받지 못했던 피해자 136명과 피해는 인정받았으나 피해등급을 결정받지 못했던 이들 357명의 피해 등급을 결정하고 구제 급여를 지급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총 5176명이 구제 급여를 받게 됐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금까지 총 7862명이 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를 요청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위 "PHMG 폐암 발병 원인"
이날 구제급여를 받게 된 599명 중 한 명은 사건 발생 12년 만에 처음으로 가습기살균제의 성분 물질인 PHMG 노출로 폐암이 발병했다는 인정을 받았다. 이는 올해 초에 발표된 고려대 안산병원 가습기살균제보건센터의 연구 결과에 따라, 'PHMG 노출이 폐암을 발병시킬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를 갖게 된 덕분이다.
앞서 고려대 안산병원 가습기살균제보건센터는 지난 2021년 3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PHMG에 의한 폐암 유발 독성연구를 진행했다. 연구 결과 PHMG에 2주 간격으로 5번 노출된 실험동물 270마리 모두에게서 20주 만에 폐 염증과 섬유화가 발생했고, 40주부터는 10마리, 54주에는 18마리에게서 폐 악성종양이 발견됐다. 연구원들은 PHMG 노출량이 많은 집단에서 더 많은 비율의 폐 악성 종양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PHMG가 폐암을 유발하는 요인이 된다고 결론 내렸다.
환경부 "폐암 피해 과학적 근거 마련"
위원회는 폐암 피해의 경우 개별적으로 심사해야 하고 판정 과정이 쉽지 않기 때문에 우선 폐암 환자 중 PHMG로 인한 발병이 분명한 경우는 우선 구제를 하고, 위원 간 이견이 있는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차후 폐암 판정을 위한 의학적 합의를 바탕으로 추가 구제를 추진할 계획이다.
이날 PHMG로 인한 폐암 발병을 인정받은 한 사망자는 위원들 사이에서 이견이 없는 경우였다. PHMG에 장시간 노출됐고, 비흡연자이며 다른 폐암 발병 요인 없이 30대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특별법에 따라 유족에게 보상 절차 진행하기로 했다. 정부는 가습기살균제 사망 피해자 유족에게는 특별유족조의금과 장의비 등을 지급하고 생존 피해자는 요양급여(치료비), 요양생활수당 등을 지원한다.
피해자들 "피해 인정 너무 힘들어…범위 확대해야"
피해자 단체는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박혜정 가습기살균제 환경 노출확인 피해자연합 대표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지금까지 문제가 된 가습기살균제를 쓴 사람 중 1800여명(환경단체 추산)이 사망했다"며 "죽을 때까지 피해를 인정받지 못해 치료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한 분들이 많다, 감회가 새로우면서도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선홍 환경단체 글로벌 에코넷 상임회장은 "정부의 결정은 늦었지만 크게 환영한다"며 "지난 12년 피해자를 괴롭혔던 가장 큰 문제는 정부 심사를 통한 공식 피해 인정의 문이 너무 좁았기 때문이었는데, 이번 폐암 인정으로 피해자들이 다소 위안을 얻을 것"이라고 밝혔다.
피해자들은 다만, 가습기살균제 사용자 중에 수많은 폐암 환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과관계 입증이 너무 늦었고, PHMG가 아닌 MIT 등 다른 가습기살균제 성분도 폐암 발병의 원인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운학 공익감시 민권회의 대표는 "이제 폐섬유화·폐렴·기관지염·천식에 이어 폐암이 가습기살균제 피해 인정 질병에 속하게 됐다"며 "5개 질병으로 한정하지 말고, 전신질환으로 그 범위를 대폭 확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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