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맞수]동양철학·실용주의로 똘똘 뭉친 김영섭 KT 대표

김보경 2023. 9. 5. 16:5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혁신·화합·고객 강조…겉치레 거부
'역량서열' 중시…디지털 혁신 선도

편집자주 - 한국 통신 시장을 3분하고 있는 통신3사 최고경영자(CEO)는 세계 1등 정보기술 강국 코리아를 향해 같이 달리는 동료이자 서로 뺏고 뺏기는 시장 쟁탈전을 벌이는 경쟁자, 적이다. KT가 새 대표이사를 정하지 못해 한동안 3사 CEO들은 제대로 협력도 경쟁도 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김영섭 KT 신임대표의 등장으로 상황이 변했다. 통신 기업을 넘어서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글로벌 빅테크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것이 3사의 공통과제다. 누가 더 좋은 성적으로 과제를 풀 것인가, 다시 치열한 경쟁의 신호탄이 올랐다. 동료이자 맞수인 3사 CEO를 심층 분석해봤다. 이번 회차는 김영섭 KT 대표 편이다.

김영섭 KT 신임 대표(사진)는 39년 동안 LG맨으로 일하면서 불필요한 형식적 업무나 겉치레를 거부해왔다. 오직 고객만을 바라보고 본질을 중요시하는 그의 실용주의적 경영 철학이 KT에도 깃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그는 KT 대표 취임을 앞두고 업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자신의 색깔을 드러냈다. 특정 임직원 몇 명과 인수위원회 별도의 조직을 꾸리면 된다는 제안이 있었지만, 이 대표가 거절했다는 후문이다. 별도 조직을 꾸려 업무를 파악하기보다는 현업부서의 부서장들을 일대일 방식으로 면담해 질의응답 시간을 갖고 꼼꼼하게 업무를 파악한 것이다. 다만 "모든 보고서를 한장으로 간략하게 만들라"고 주문해 임원들의 진땀을 빼게 했다.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선 상황을 요약해 한장짜리 보고서에 집어넣기 힘들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에 진중한 태도로 매진하는 그의 성격은 유년 시절부터 형성됐다. 동양철학과 한학 등 인문학에 관심이 많아 독학으로 공부했다고 전해진다. 이 덕분에 이른 나이에 웬만한 한자에 통달했다. 2008년 서울대 최고지도자 인문학 과정을 수료했고 2013년에는 성균관대 유학대학원에서 유교경전한국사상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동양철학 사상이 깃들어있는 그의 실용주의적 태도는 LG CNS 대표로 임명된 2015년 12월 임직원들에게 보낸 사내 메일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당시 '해현경장(解弦更張)'과 '사요무실(事要務實)'이라는 사자성어로 경영 키워드를 전했다. 해현경장은 거문고의 줄을 바꾸어 맨다는 뜻으로 느슨해진 것을 다시 잡아당겨 팽팽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사요무실은 일을 함에 있어 실질에 힘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느슨해진 마음을 다잡고 긴장의 끈을 다시 한번 조여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불필요한 형식을 과감히 버리고 실질적인 일에 더욱 집중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자"는 말이었다. 그는 직원들에게 한시를 들려주거나, 사자성어로 자신의 생각을 전하길 좋아한다. '동주공제(同舟共濟) 이신선지(以身先之)'를 강조한 때도 있었다. 한마음 한뜻으로 협업하고 스스로 혁신해야 한다는 의미다.

김 대표는 1959년 4월 경상북도 문경에서 태어나 경북사대부고,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 LG상사의 전신인 럭키금성상사에 입사해 LG구조조정본부 재무개선팀 상무 등을 지냈다. 2015년 LG CNS 대표로 복귀하면서 인사 혁신과 조직 개편으로 기술 역량 중심의 회사로 거듭나는 디지털 혁신을 꾀했다.

인사 평가, 연봉 지급 기준도 기술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 2016년 직원들을 대상으로 기술역량 평가 제도를 도입했다. 전문가가 출제한 시험 문제를 토대로 기술인증시험을 보고 종합적으로 평가해 레벨을 매기며 연공서열보다는 '역량서열'을 중시하는 LG그룹의 디지털 혁신을 선도했다.

김 대표는 지난달 30일 KT 대표 취임식에서도 KT가 1등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 되려면 "(임직원 모두가)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가 돼야 한다"며 "고수답게 화합하고 고수다운 방식으로 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김 대표는 역량과 실력을 쌓고 혁신·화합하는 문화를 만들어 고객으로부터 인정받고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기업으로 거듭나자고 독려했다.

그는 이어 "평생 머릿속에 두고 있는 것이 '고객'이었다"며 "고객에 대한 생각을 기반에 단단히 두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개개인이 뛰어난 역량을 갖춰 혁신하고 성장하는 기업이 되는 것은 결국 고객을 향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날 취임식을 KT그룹 임직원 5만8000여명이 사내 방송을 통해 시청했다. 김 대표는 온라인을 통해 질문을 받고 답변도 했다.

김 대표는 재무통이자 구조조정 전문가다. 김 대표가 취임하면 조직 개편과 함께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화합을 중시하는 신중한 성격의 그가 섣불리 개혁을 명목으로 '칼질'을 하진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김 대표는 오는 7일 첫 대외 무대 행보로 서울 중구에서 열리는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 주관 '모바일360 아시아태평양' 행사에서 기조연설을 한다. 지속 가능한 디지털 전략과 미래 비전을 주제로 발표할 예정이어서 향후 김 대표가 이끄는 KT호가 어디로 향할지 들을 수 있는 기회다.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