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역별 비례대표제가 개혁? 최소한 '개악'은 막아야

김찬휘 2023. 9. 5.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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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병립형 회귀와 권역별 비례대표제, 과연 '비례성과 대표성' 담보할 수 있나

[김찬휘 기자]

  지난 2022년 6월 1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에 강원 춘천시 호반체육관에서 개표참관인이 투표함을 살피고 있다.
ⓒ 연합뉴스
 
1. 비례성, 대표성을 갖춘 선거제도의 필요성

대의민주주의(representative democracy)의 요체는 대표(representative)를 뽑는 절차, 즉 선거 과정의 민주주의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그 절차가 불공정하다면 그 대의제의 정당성은 부정되어야 합니다. 한국의 현 선거제도가 불공정하다는 것은 21대 국회에 올라온 수십여 개의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의 '제안이유'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현 양당정치 체제의 독과점 기득권 구조를 해체하고 공생 기득권을 축소하여 한국 정치의 혁신이 필요한 상황임... 유권자의 민의를 제대로 수용하고 다양한 정당이 등장할 수 있도록..." (이상민 안)

"국회 구성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거대 양당 공천 기득권을 갖지 못한 신진세력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음." (전재수 안)

여야합의로 구성된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도 3월 22일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선에 관한 결의안"을 제안하면서, 그 '제안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지난 제21대 국회의원선거는 정치적ㆍ사회적 합의 없이 추진된 「공직선거법」 개정의 폐해를 위성정당 창당이라는 부작용을 통해 여실히 보여주었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취지와 어긋나게 득표율과 의석점유율 간 비례성이 더 낮아지고, 정치 양극화와 극한적 대립도 심화되는 문제점이 노정되었음."

"이에 정치적ㆍ사회적 합의를 통해 국민이 수용할 수 있고 비례성과 대표성을 담보할 수 있는 선거제도"를 만들기 위해 "국회의 총의를 모으고자" 한다고 정개특위는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 국회는 우리나라 정치사에 남을 유의미한 일들을 진행했습니다. 

우선 4월에 19년 만에 국회 전원위원회 회의를 열어 수십 명의 국회의원들이 선거제도 개편 방안에 대해 난상토론했습니다. 전원위원회에서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하자 정개특위는 5월에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선거제도 개편에 관한 공론조사를 실시하여, 시민참여단 500명이 이에 참여했습니다.  

공직선거법 개정 논의를 국회 정개특위라는 좁은 틀을 벗어나 국회 전원위원회와 국민 공론조사로까지 확장해 가던 국회가 갑자기 7월, 거대 양당의 원내부대표와 정개특위 간사만이 참여하는 '2+2 협의체'를 꾸리더니 논의를 밀실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밀실 논의의 실체는 8월 31일 언론을 통해서 흘러나왔습니다. <중앙일보>의 '[단독] 위성정당 꼼수 사라지나…준연동형 비례제 폐지 가닥' 보도에 따르면, "그간 물밑 협상을 벌여온 여야는 '병립형 선거제'로의 회귀가 불가피하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다만 21대 총선 이전의 '병립형 선거제'로 돌아가면 정당 간 비례성이 낮아지게 된다는 지적에, 현실적인 절충안으로 '권역별 비례제'에 의견을 모은 상태"라는 겁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비례대표제를 3~6개의 권역으로 나눠 뽑는 방안입니다. 

위성정당을 방지하고 지역주의를 극복한다는 명분으로 진행되는 병립형 회귀와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과연 정개특위가 주장한 "비례성과 대표성을 담보"할 수 있을까요?

2. 병립형 회귀와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의미
 
 2024정치개혁공동행동과 정의당 · 진보당 · 노동당 · 녹색당이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병립형 회귀 반대 및 선거제 개혁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남소연
 
2020년 총선에서 정의당, 국민의당, 열린민주당은 도합 21.9%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세 정당의 의석수는 4%에 불과했습니다. 연동형이 아니고 '준'연동형인데다가, 1당과 2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어 뺏어갔기 때문입니다. 세 정당은 위성정당이 없었다면 26석의 비례의석을 받았어야 했는데, 위성정당 때문에 비례 11석밖에 못 얻었습니다. 47석이 모두 준연동형이 된 지금이라면 34석을 얻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준연동형을 병립형으로 바꾸어 2020년 총선에 적용하면, 세 정당의 비례의석수는 10석이 됩니다. 신박하지 않습니까? 두 거대정당 입장에선 위성정당보다 더 효과가 좋습니다. 그래서 두 거대정당은 병립형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거라고 봅니다.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고도 위성정당 만든 효과보다 더 좋으니, 체면도 실리도 함께 챙길 수 있습니다. 21대 국회에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공직선거법은 모두 병립형으로의 회귀를 담고 있고,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서영교 안과 김종민 안 등은 병립형으로 회귀하는 안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낸 공직선거법 안들은 대개 전국단위 비례대표제를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바꾸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민주당 의원 169명 전원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민주당 의원의 70%가 소선거구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 혹은 석패율제를 선호했고 나머지 30%만 중대선거구제를 선호했다"(2023.3.16. 정청래)고 합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되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요? 계산을 쉽게 하기 위해 비례 총의석이 48석이라 해 봅시다. 병립형으로 바뀌었는데 전국단위 비례대표제라면 4% 득표 정당에 2석(1.92석)이 배정됩니다. 그런데 3개 권역으로 나누고 각 권역에 16석을 배정하면, 권역별 득표율을 적용해 의석을 배분하므로 특정 권역에서 6.25% 미만을 얻으면 1석도 못 얻을 수 있습니다. 진입장벽이 높아집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무조건 '악'인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전국단위를 권역단위로 바꾸기 위해서는 중요한 전제 두 개가 필요합니다. 첫째, 비례대표제 의석수를 획기적으로 늘려야 합니다. 안 그래도 비례대표 의석수가 적은데 그것을 권역별로 또 쪼개버리면, 위에서 보았듯이 득표율 장벽만 높아지게 됩니다. 

둘째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려면 전국단위 3% 봉쇄조항은 없애야 합니다. 지금의 전국단위 비례대표제에서는 전국 득표율 3%만 넘으면 의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발의된 공직선거법 개정안들은 권역별로 바꾸면서도 전국단위 3% 봉쇄조항을 유지하게 설계한 결과, 전국 3%를 넘고 동시에 권역에서는 그보다 높은 장벽을 두 번 넘어야 의석이 생기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두 장벽 중에 한 장벽이라도 못 넘으면 원외로 쫓겨납니다. 결국 그 의석은 거대 양당이 전부 거두어들이게 됩니다.  

9월 1일 국회의장은 이 두 전제를 전혀 보장하지 않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가리켜 "지역균형비례제"라 칭송하면서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지역주의를 극복할 디딤돌을 놓게" 되었으며 "지역소멸시대를 지역균형발전시대로 돌려놓을 든든한 힘이 생긴 것"이라 극찬했습니다. 영호남을 섞어서 권역을 만들어, 영남 출신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이 생기고 호남 출신 국민의힘 비례대표 의원이 생기는 것이 대체 '지역주의 극복'과 무슨 관계가 있나요? 권역의 진입장벽을 높여, 두 거대 정당이 비례의석을 독식하는 결과가 생길 뿐입니다.

올해 5월에 실시한 선거제도 공론화 500인 회의에서는, 단 몇 시간의 설명과 토론을 거쳤을 뿐인데도 숙의 후 전국단위 비례대표제에 대한 지지가 20%포인트 증가하여 58%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국민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말로는 "비례성"과 "대표성"을 외치면서 실제 행동에서는 그와 정반대로 행동하는 거대 양당은 국민의 숙의토론 결과도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거제도 공론화 비례대표 선출 범위
ⓒ 김찬휘
 
개혁과 진보를 바라는 시민들에게 호소합니다. 병립형 회귀를 막아야 합니다. 동시에 지금 상태의 권역별 비례대표제도 막아야 합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민주당 지지자분들께 요청합니다. 민주당 의석이 많아지면 좋은 것 아니냐고 생각하신다면, 180석을 얻었던 민주당의 초라한 개혁 성적표를 살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민주당 의석이 늘어나야 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 밖의 건강한 개혁진보세력의 힘이 늘어나야 민주당 내의 보수적 의원들을 견제하고 민주당 내 소수 개혁 의원들이 힘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정치다양성'을 높이고, 비례성을 늘리는 것이 개혁을 이뤄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3. 9월 1일 더불어민주당 의원 총회의 의미

'2+2 협의체'의 밀실논의를 진행하던 거대 양당은 급기야 9월 1일 각각 의원총회를 열고 병립형 회귀와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대한 논의를 모으려고 시도했습니다. 

사태의 심각함을 느낀 2024정치개혁공동행동은 8월 31일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 진보당 등과 함께 국회 앞 계단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이 기획을 규탄했습니다. 일부 의원들은 준연동형 비례제 폐지를 반대하는 서명 운동을 개시했습니다. 의원총회가 열리는 9월 1일 아침 국회 3층에는 정의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녹색당의 '병립형 회귀 반대'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반영된 것인지,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준연동형 폐지에 대한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3개 권역비례대표제에 대한 합의만이 진행되었습니다. 발언을 한 의원들의 다수는 "권역별 비례는 준연동제와 같이 운영이 돼야 하고" "비례의석수도 현재보다 늘어나야만 실질적으로 비례성 다양성이 확보될 수 있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겉보기에 더불어민주당 의원 총회의 논의 내용은 '준연동형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보입니다.

권역별로 하되 병립형이 아니라 준연동형으로 하면, 지금과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3개 권역이고 각 권역의 의원수가 지역구+비례=100석씩이라고 가정하면, 전국 3% 득표(=전국 봉쇄조항)를 하고 권역에서 2%를 넘은 정당은 안정적인 1석이 생기게 됩니다.

예컨대 어떤 정당이 전국 3%를 넘었고 3개 권역의 득표율이 각각 4%, 3%, 2%가 된다면, 비례의석은 각 권역에서 100 × 0.04 × 0.5 = 2석, 100 × 0.03 × 0.5 = 1.5석, 100 × 0.02 × 0.5 = 1석이 됩니다. 그럼 4.5석이 되어, 나머지 여하에 따라서 5석 혹은 4석이 됩니다(물론 '위성정당'이 등장하면 이 의석이 다 물거품이 됩니다. 또한 전국 득표율 3% 미만 정당이라면, 어떤 권역에서 특별히 높은 득표율을 얻었다 하더라도 비례의석은 0입니다).

그런데 병립형 밀약이 이루어진다면 계산법이 전혀 달라집니다. 준연동형은 권역별 의석 전체에 대해 정당 득표율을 곱해서 반으로 나누지만, 병립형은 권역별 비례의석에만 정당 득표율을 곱하게 됩니다. 47석이 15, 16, 16로 나누어진다고 생각해 보죠. 3개 권역에서 각각 4%, 3%, 2%를 얻은 위의 정당의 경우, 병립형이라면 15 × 0.04 = 0.6석, 16 × 0.03 = 0.48석, 16 × 0.02 = 0.32석이 됩니다. 나머지 여하에 따라 1~2석이 생길 수도 있지만, 최악의 경우 0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달랑 47석의 비례대표 의석을 가지고 '병립형 + 3개 권역별 콤보'를 구성하게 되면 두 거대 정당의 의석비율은 2020년 총선의 94.33%를 넘어 98%가 될지도 모릅니다.

국회의장과 거대 양당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대단한 개혁인 것처럼 말합니다. 하지만 준연동형 유지 상태에서의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개혁도 아니고 퇴행도 아닙니다. 그런데 위성정당 방지 규정을 만들지 않거나, 권역별로 바꾼 다음, 이어서 병립형을 추진한다면 이것은 극악한 퇴행이 됩니다. 따라서 선거제도를 최소한 개악하지 않으려면 다음 두 가지를 기필코 사수해야 한다고 봅니다. 

첫째, 준연동형이라면 위성정당 방지 규정을 반드시 두어야 합니다. 3개 권역별로 바뀌고 준연동형이 유지된다면, 거대 양당은 정당법의 '이중당적 금지' 조항을 완화하여 지역정당의 이중당적은 허용되도록 통과시킨 다음 '권역별 위성정당'을 만들 가능성이 높아요. 전국적 위성정당은 두 정당 모두 부담스러우니까, 권역별로 지역정당형 위성정당을 만드는 것이죠. 지역 토호들이 '영호남화합당', '수도권당' 등의 이름으로 권역별 비례 명부에 이름을 올려, 소수정당의 의석을 뺏어가지 않을지 우려됩니다.

둘째, 병립형 회귀 결사반대를 외쳐야 합니다. 병립형 반대가 거세자, 권역별만 먼저 통과시켜 놓고 그 뒤에 은근슬쩍 병립형으로 회귀하려고 시도한다면, 국민들은 그런 야합을 두 번 저지른 두 정당을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4. 마치며 

후쿠시마 핵오염수 문제가 한국 정치의 주요 이슈로 부각되어 있습니다. 핵발전이 계속되는 이상 핵폐기물은 불가피하고, 또한 크고 작은 핵발전소 사고도 불가피합니다. 미국의 스리마일, 소련의 체르노빌, 일본의 후쿠시마 등, 핵발전 최선진국을 자처하는 나라들에서 모두 핵발전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결국 핵오염수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탈핵'입니다.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제도를 가지고 있는 독일은 2023년 핵발전을 종료했습니다. 100% 소선거구제 선거제도를 가지고 있는 영국은 2022년 7월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승인하고, 2050년까지 핵발전 비율을 지금의 15%에서 25%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윤석열 정부도 2030년까지 핵발전을 30%까지 끌어올릴 목표로 핵발전에 대한 정부투자를 늘리고 있는데, 한국의 선거제도는 84.3%가 소선구제입니다. 

비례대표제와 소선거구제의 차이가 핵발전의 차이를 가져온다고 말하면 강변이라고 생각할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독일 녹색당은 14.8%의 득표율로 118석을 얻었습니다만, 영국 녹색당은 11.8%의 정당 지지율(유럽의회 선거 기준)을 가지고 있는데 의회 의석이 고작 1석입니다. 650석이 전부 1등만 뽑는 소선거구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양당정치 체제의 독과점 기득권 구조"가 지배하고 "유권자의 민의"가 무시되며 "국회 구성의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는, 따라서 탈핵의 목소리를 표현할 정치세력을 배제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핵발전이 늘어나는 것은 필연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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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찬휘씨는 녹색당 대표이자 선거제도개혁연대 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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