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괴리 '수학여행 버스' 사태 때문에 벌어진 일
[이준수 기자]
공직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통하는 안 좋은 룰이 있다면, '중간만 해라'일 것이다. 너무 튀지 말 것, 지나치게 잘해서 앞서 가지 말 것. 조직의 성장을 가로막는 악습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이번 '통학버스 사태'를 겪으며 현실적으로 완전히 어긋난 조언은 아니라면서 자조했다.
▲ 통학버스(자료사진). |
ⓒ 바른지역언론연대 |
잠깐 설명을 하자면, 2023년 7월까지는 현장체험학습을 떠날 때 인근 전세버스 회사에 연락해 일반인들이 단체 예약을 하듯 버스를 빌렸다. 등산동호회에서 단체로 빌리는 버스와 다를 바 없다. 그런데 "현장체험학습에 이용되는 전세버스도 어린이 통학버스에 해당된다"라는 법제처의 유권해석으로 인해 갑자기 예약한 전세버스를 사용할 수 없게 됐다.
물론 29일 지금이야 국무회의에서 '현장 여건이 마련될 때까지 계도 기간을 갖겠다'고 해서 해프닝 비슷하게 마무리됐지만, 당시에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부랴부랴 학교에서 열린 비상대책회의
사실상 수학여행은 숙소와 교통편만 예약이 완료돼도 사전 작업 중 절반은 끝난 셈이다. 그런데 수학여행을 코 앞에 두고 모든 일정을 뒤엎어야 하니 학교에서는 비상 대책 회의가 열렸다.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세 가지입니다. 통학버스 규격에 맞는 버스를 빌리기,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방식으로 계획 다시 수립하기, 수학여행 취소하기."
내 귀에는 그냥 '대중교통 수학여행으로 계획 다시 짜기'로 들렸다. 수학여행을 돌연 취소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고, 규격에 맞는 버스를 빌리는 것도 사막에서 바늘 찾기와 같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2박 3일 수학여행은 1년 현장체험 행사 중 예산도 가장 많이 투입되고, 프로젝트 학습 구상 등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아 준비 과정이 만만찮다. 그런데 대중교통 버전으로 다시 계획을 짜야 했다. 식당 선정부터 조별 활동까지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 학교는 양양 시골에 있어 5, 6학년이 함께 수학여행을 떠난다. 나는 6학년 선생님과 머리를 맞대고 버스 문제를 상의했다. 통학버스 사용에 예외 조항은 없는지 찾아보고, 강릉에서 서울 가는 KTX 편을 찾아보기도 했다. 하릴없이 시간이 흘렀다. 내부에서 고민해봐야 소용없으므로, 버스 회사에 연락을 넣었다. 혹시 통학버스 도입을 추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은 채.
"노란 버스 타라고 그러지요? 불가능합니다. 버스가 학생들만 태우는 것도 아니고 도색 한 번에 얼마인지 아시나요?"
수화기 너머 전세버스 회사 사장님은 침통한 목소리였다. 수학여행 손님 한 번 받자고 버스를 도색하고 학생용 안전띠를 새로 설치할 수는 없다고 했다. 운수업의 영업 구조를 전혀 모르는 내가 들어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일단은 성가시게 해 드려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조금만 더 시간을 갖고 취소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누가 봐도 말이 안 되잖아"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좀 있어 봐요. 누가 봐도 말이 안 되잖아."
나는 안절부절 못 하고 있는데 경력 30년이 넘은 대선배님은 우선 기다려보라고 조언했다. 후배를 위해 해주신 덕담이라 "예, 고맙습니다" 하고 넘겼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반평생 교실밥을 먹으며 체득한 선배의 지혜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함께 일을 진행하는 6학년 선생님과 나는 수학여행 비상 대책 모드에 들어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수학여행을 전제하고 계획을 전면 조정했다. 대중교통으로 수학여행 일정을 짜면 장소를 서울특별시로 한정해야 했다. 전세 버스가 가능한 계획에서는 용인과 과천, 수원까지 들르기로 했으나 지하철이나 시외버스로 그 촘촘한 코스를 무사히 소화하기란 매우 까다로워 보였다.
코스가 바뀌니 숙소도 새로 잡았다. 이미 저렴하고 괜찮은 숙소는 만실 마감이었고, 그나마 안전하고 깔끔한 곳은 비쌌다. 울며 겨자 먹기로 좀 비싸더라도 서울역에서 너무 멀지 않고, 지하철 이동이 편한 호텔을 잡았다. 수학여행 단체 손님을 급하게 받아주는 곳은 결코 흔하지 않았다.
버스 문제는 아무 진전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대중교통 수학여행도 나름 의미는 있으나 전세버스와는 고생의 강도가 다르다. 결국 교장선생님까지 버스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강원도 영동지역의 버스 회사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갑자기 노란색 전세버스가 짠! 하고 등장할 리가 있나.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동해시에서 오는 버스인데 보내줄 수 있대요. 돈이 조금 더 들지만 날짜 확정만 해주면 잡아주겠다네요."
2박 3일 운행 요금으로 300만 원에 달하는 조건이었만, 교장선생님은 어떻게든 문제를 해주셨다. 비싸도 합법적인 버스였다. 나는 기존 전세 버스 계약을 해지하기 위해 전화기를 들었다. 통화 중 유치한 변명을 곁들였다.
"사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학교는 위에서 규정대로 하라고 하면 따라야 하는 면이 있어서요."
"네 어쩔 수 없지요. 그렇게 하세요."
나는 허공에 대고 머리를 연신 숙였다. 그렇게 우리 학교는 저렴하게 계약한 리무진 우등 전세 버스를 취소하고, 30만 원 이상 웃돈을 얹어 40인승 통학버스를 새로 계약했다. 그리고 이틀 뒤인 8월 25일, 교육부에서 무심하게 공문이 내려왔다.
▲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장상윤 차관과 대화하고 있다. |
ⓒ 남소연 |
국무조정실·경찰청 등 관계부처 회의를 통해 경찰청이 현장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 도출될 때까지 단속 대신 계도·홍보를 하겠다.
한 마디로 일단은 단속하지 않을 테니 기존 계획 바꾸지 말고 진행하라는 의미였다. 나는 다행이라는 심정보다는, 허무함이 먼저 들었다. 그간의 마음고생과 감정 소모, 행정력 낭비가 떠올랐다. 대선배 교사의 말이 정답이었던 것이다. 한 발 물러서서 기다리기.
건강한 상식 면에서 납득할 수 없고, 실행에 옮기기 어려운 결정은 바뀌기 마련이다. '통학버스 사태'도 느긋하게 사태의 추이를 지켜봤더라면 무난하게 지나갔을 일이었다.
중간만 가자. 너무 느리게도 너무 빠르게도 가지 말라는 필드의 생존 규칙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통했다. 이것이 비단 버스만의 문제일까. 2020~2022 코로나 시즌에도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 변화에 따라 학교에 적용되는 방역 규칙은 아주 세세하게 바뀌었다.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규정이 내려올 때마다 100% 완벽하게 지키려다 탈이 나는 경우를 아주 많이 봐 왔다.
공무원의 보수성과 무사안일 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 오래 머무를수록 규정과 규칙이라는 것이 얼마나 사회 여론, 현장의 분위기에 따라 쉽게 변하는 것인지 체감하고 있다. 실컷 일을 해 놓으면 끝에가서 바뀌는 경우도 다반사다.
교육부나 기타 정부 기관에서 처음부터 실천 가능한, 학교 여건에 맞는 내용으로 공문을 내려 보내주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전국의 현장체험학습 버스를 노란 통학버스로 바꾸라'는 황당한 내용의 일방적인 전달이다. 그래도 우리 반 아이들에게는 전후 사정을 쏙 빼놓고, 아주 예쁘고 안전한 버스를 타고 수학여행을 다녀오게 됐노라 자랑할 것이다. 기쁜 심정을 가득 안고, 환하게 웃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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