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교체하면 '리셋'? 남북관계, 이대로는 안 된다
[정일영 기자]
▲ 남-북 정상 '도보다리' 친교 산책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지난 2018년 4월 27일 오후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회담장인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 부근 '도보다리'까지 산책하고 있다. |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
남북관계가 단절된 지 오래다. 2018년 한반도를 뜨겁게 달궜던 남북관계는 정권이 교체되며 전에 없던 냉각기를 맞이했다. 이제 남북의 대화, 교류와 협력, 한반도 평화를 말하면 '반국가 세력', '대북지원부'라 낙인찍히는 실정이다.
그렇게 정권교체는 언젠가부터 남북관계의 리셋(re-set)를 가져왔다. 우리는 왜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지속 가능한, 안정적인 남북관계를 만들지 못하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정권교체에도 안정적인 남북관계, 대북정책을 지속해 나갈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이 악순환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전쟁이 끝나지 않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한반도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정권을 잡았다고 남북관계를 훼손하는 일을 막고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이어 달기를 할 수 있는 제도와 관행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첫 번째, 정부는 야당과 대화해야 한다
과거를 돌아보자. 이명박 정권 이후 정권이 교체되면 다른 어떤 분야보다 대북정책이 리셋되어 왔다. 지난 정부가 체결한 남북 합의가 무력화되거나, 지난 정부가 강조한 대북사업은 새로운 사업으로 교체되었다. 우리는 보수와 진보를 떠나 대북정책을 추진할 때 야당과 협의하는데 소홀했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이란 이유로 대부분의 남북대화는 비밀리에 진행되었고 야당의 역할은 그 과정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야당과 최소한의 논의도 없는 대북정책은 정권교체와 함께 정책의 지속성이 훼손되는 악순환을 가져왔다. 사실 미국이나 중국, 일본과의 외교보다도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 대북정책이고, 통일정책이다. 그러나 대북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사라진 '정치', 무력화된 민주적 절차로 인해 한반도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으며 이제는 극단적인 정부의 독주가 펼쳐지고 있다.
우리 정부의 공식적인 통일방안은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다. 보수와 진보 정부를 넘어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으로 존중받고 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당시 노태우 정부와 김영삼 정부가 통일방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야당과 대화하고 대안을 모색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야당과의 대화가 정부가 추진하는 대북정책을 훼손하거나 후퇴시킬 것이라 우려한다. 그러나 특정 정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북·통일정책을 안정적으로 지속,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이 일부 후퇴하더라도 야당의 의견을 듣고 최소한 반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고, 그래야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이어달릴 수 있다(관련 기사: 정부의 남북관계 '독점'... 과연 정당할까, https://omn.kr/1zc5n).
두 번째, 시민사회가 대화의 장을 만들자
언젠가부터 대북·통일정책에 관한 시민사회의 목소리도 좌, 우로 나눠진 것처럼 보인다. 보수와 진보 정부의 대북정책이 멀어진 만큼, 시민사회도 좌우로 멀어진 것일까? 정권이 교체되면 새 정부가 자신들과 의견을 같이하는 시민사회단체를 지원하고 정치적 색채가 강한 시민단체들이 정부의 대북·통일정책을 뒷받침하는 모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시민사회 일부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필자는 2021년 만들어진 '통일국민협약'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 시민사회가 정치권이 하지 못하는 좌우의 대화를 주도하고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역량이 있음을 보았다. 당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진보)와 범시민사회단체연합(보수), 흥사단·YMCA(중도), 한국종교인평화회의(7대종단)이 이 작업에 참여해 치열한 토론을 진행하고 그 결과를 '통일국민협약'으로 발표한 바 있다.
이 작업이 마냥 순탄치만은 않았다고 한다. 사업 초기 보수와 진보단체 인사들은 서로를 불신했고 토론 또한 날 선 공방으로 중단되었다. 하지만 토론이 이어지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됐고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양극단의 인사가 아닌 보수와 진보, 중도에서 합리적인 인사가 논의를 주도할 수 있도록 기획함으로써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통일국민협약'이 탄생할 수 있었다(관련 내용: 국민참여 통일플랫폼, https://www.unikorea.go.kr/promise).
남북관계가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가 안정적인 대북·통일정책을 이어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민사회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시민사회가 극단으로 치닫는 정치권의 갈등을 완화하고 지속 가능한 대북·통일정책에 대한 토론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
▲ 통일부 정원 80여 명 감축 7월 28일 정부서울청사 통일부 간판 아래로 직원들이 오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대북지원부' 지적을 받은 통일부가 정원 약 15%를 구조조정하는 조직개편을 추진한다. 문승현 통일부 차관은 28일 통일부 청사에서 취재진과 만나 "80명이 좀 넘는 선에서 인력 재편(축소)이 예상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
ⓒ 연합뉴스 |
연구자로서 필자는 여러 차례 정부가 북한, 통일분야 연구기관장의 인사에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해왔다. 북한, 통일분야 연구는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연구자의 전문성에 기반해 진행돼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소위 캠프 출신이 새로운 책임자로 부임하면 연구기관은 새정부의 정책에 맞는 연구를 진행하게 된다. 이는 보수와 진보를 떠나 관행처럼 반복된 악습이다. 국책연구기관이 정부의 대북·통일정책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겠는가? 문제는 이 과정에서 연구자의 자율성이 제한되고 합리적인 비판이 통제받게 된다는 것이다.
필자는 소위 캠프 출신 인사의 국책기관 임명을 일정 기간 제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연구자가 자신의 정책대안을 제안하며 선거캠프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이 또한 연구자에게 주어진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다만 캠프에 참여하지 않으면 연구기관장이 될 수 없다는 말도 안 되는 방정식이 만들어지는 관행을 없애야 한다.
캠프 출신 인사 또한 북한, 통일분야 연구기관이 합리적인 제안자, 비판자의 역할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스스로 지원하지 않는 용단이 필요하다. 아마도 희생에 가까운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이제 정권이 교체되면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연구원장을 '사직'시키는 촌극은 중단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남북관계를 제도화해야 한다
우리는 오랜 기간 남북관계를 정치에 일임해 왔다. 하지만 돌아보면 정치는 실패했다. 필자 또한 정치가 대화와 타협을 통해 국내와 남북관계에서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길 갈망해 왔지만, 이제는 정치에 모든 것을 기댈 수 없다.
필자는 정치적 불안정성, 대화와 타협의 규범이 미성숙한 남북관계를 제도화하자고 제안한다. 무엇보다도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남북의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남북 합의가 정권교체로 무력화된다면 더 이상의 약속은 아무런 힘을 얻지 못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남북의 약속인 남북합의서를 법제화하자고 주장해 왔다(관련 기사: 남북합의서, 그 참을 수 없는 나약함에 대하여, https://omn.kr/1yqn9).
실상은 국내 법률로 규정된 정부의 책임조차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실정이다. 예를 들어,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은 제13조에서 "정부는 남북관계발전에관한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이를 해당 연도 "정기국회 개회 전까지" "국회에 보고"하도록 하였다.
제3차 남북관계발전기본계획(2018-2022)이 작년에 종결된 상황에서, 정부는 제4차 남북관계발전기본계획을 올해 정기국회가 개회된 9월 1일 이전에 국회에 보고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법률에 규정된 정부의 책무를 저버린 것이다. 물론 매년 정기국회 전에 보고되어야 하는 남북관계발전 시행계획 또한 올해뿐만 아니라, 작년에는 아예 제출되지도 않았다.
법률에 규정되어 있는 의무를 저버린 정부도 문제지만 이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국회가 더 한탄스럽다. 국회는 정부의 대북정책 독주를 견제할 의사가 없는 것인가? 남북관계를 제도화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끊어진 점을 이어 평화의 길을 찾자
지금까지 정권교체에 따라 악순환이 반복돼온 대북·통일정책의 문제점들을 검토하고 그 대안을 분야별로 모색해 봤다. 필자가 제안한 논의들은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것들이 더 많다. 다만 이제라도 남북관계의 발전, 보수와 진보 정부를 넘어 이어달릴 수 있는 대북·통일정책을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까지 논의한 각 분야별 논의들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갖지만 끊어진 점으로 남겨진다면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제 시민사회로부터, 연구자로부터 시작하자. 국회가 제 역할을 하고, 정부가 기존의 관행을 타파하고 새로운 남북관계, 지속 가능한 대북·통일정책을 만들고 이어갈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 평화의 길을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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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정일영씨는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입니다. 관심분야는 북한 사회통제체제, 남북관계 제도화, 한반도 평화체제 등으로, <한반도 오디세이>, <한반도 스케치北>, <북한 사회통제체제의 기원> 등 집필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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