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 용어]구원인가 파괴인가, '맨해튼 프로젝트'

조인경 2023. 9. 5.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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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펜하이머'의 인기와 함께 그 배경이 된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계획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의 역사적 의미와 이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39년 미국은 원자폭탄 개발을 목적으로 핵과학자, 물리학자, 엔지니어 등으로 구성한 맨해튼 프로젝트팀을 꾸렸다.

그는 미국 뉴멕시코주 로스앨러모스에 지어진 거대한 연구 단지에서 노벨상 수상자 등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을 이끌고 원자폭탄 개발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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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펜하이머'의 인기와 함께 그 배경이 된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계획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의 역사적 의미와 이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39년 미국은 원자폭탄 개발을 목적으로 핵과학자, 물리학자, 엔지니어 등으로 구성한 맨해튼 프로젝트팀을 꾸렸다. 나치 독일이 먼저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자 전쟁의 주도권을 놓칠 수 없었던 미국이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 재가 하에 발 빠르게 대응에 나선 것이다.

1942년부터 1946년까지 진행된 맨해튼 프로젝트의 총책임자는 미 육군 소장 레슬리 그로브스였다. 즉 이 프로젝트는 과학 실험이 아닌 실전에 사용할 대량살상무기 제작이 목표인 군사작전이었던 셈이다. 연구개발 책임자로 발탁된 이가 바로 로버트 오펜하이머. 그는 미국 뉴멕시코주 로스앨러모스에 지어진 거대한 연구 단지에서 노벨상 수상자 등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을 이끌고 원자폭탄 개발에 착수했다. 미국 과학자들은 물론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몸을 피한 유럽의 과학자, 동맹국인 영국과 캐나다를 대표하는 과학자들도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했다.

프로젝트에 투입된 예산만 20억달러, 현재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330억달러(약 40조원) 규모로 알려졌다. 과학자와 엔지니어뿐 아니라 군인, 노동자 등 가장 많을 때는 무려 13만명의 인력이 투입됐다. 하지만 일반 국민이나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은 채 철저히 보안을 유지하며 진행된 비밀 프로젝트였다.

1945년 7월16일 로스앨러모스에서 남쪽으로 340㎞ 떨어진 알라모고도에서 마침내 인류 최초의 핵실험 '트리니티 실험'이 성공했다. 당시 과학들은 5000t의 TNT(트라이나이트로톨루엔·trinitrotoluene)와 맞먹는 폭발을 기대했지만, 실제 폭발의 위력은 2만t의 TNT에 해당할 정도였다. 한 달 뒤인 8월6일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리틀보이'와 8월9일 나가사키에 투하된 '팻맨'으로 일본은 항복했고, 제2차 세계대전도 종식됐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내 원자폭탄의 엄청난 파괴력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기 시작했다. 원자폭탄 투하 순간 히로시마에서 7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이후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화상과 방사능 질병으로 서서히 죽어갔다. 나치 독일이 원자폭탄을 만들기 전에 먼저 원자폭탄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무장돼 있었던 맨해튼 프로젝트 과학자들은 전쟁 후 핵에너지를 평화적인 목적에만 사용하도록 하기 위해 애를 썼다. 오펜하이머 역시 많은 일본인들이 피폭으로 고통받는 참상을 목도한 후 수소폭탄 개발과 군비 확장에 반대했고, 이 과정에서 '소련 스파이'라는 의혹에 휘말리기도 했다.

미국이 과연 당시 원자폭탄을 사용해야만 했느냐에 대해서는 오늘날까지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찬성론자들은 핵폭탄 투하가 전쟁을 일찍 종식시켜 수십만 미국인의 귀중한 생명을 구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당시 독일이 이미 핵 개발을 포기했는데도 미국 정부가 마치 그들이 곧 핵폭탄을 가질 것처럼 공포감을 조성했고, 일본이 항복을 준비하고 있다는 첩보가 확인된 상황에서도 과학자들에게는 비밀로 하는 등 정치적 당위성을 앞세워 수십만의 무고한 인명을 희생시켰다는 비판도 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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