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영화관①]주말티켓 1만5000원…한국영화 손익분기점 '깔딱고개' 넘기

이종길 2023. 9. 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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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최악의 불황 견뎌…멀티플렉스 3사 입장권 값 인상
최대한 개봉 '와이드 릴리즈' 여전…개봉일 부진하면 흥행 참패로
유명 감독·배우 OTT 눈돌려…고객 성향 분석으로 위기 탈출 노려

편집자주 - 7·8월은 극장가 최대 성수기다. 직장인 휴가와 초·중·고·대학생 방학이 맞물려 흥행에 유리하다. 배급사는 대중성이 담보된 영화를 앞다퉈 공개한다. 경쟁이 뜨거워도 수요가 충분하다고 판단한다. 결과적으로 올해는 오판이다. 두 달간 영화관을 찾은 관람객이 2884만4662명에 불과하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위축한 지난해(3124만8077명)보다 적다. 매출도 2833억7968만8967원으로, 393억7332만8205원 낮다. 잇따른 외면에는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쳤다. 예전만 못한 콘텐츠 힘, 인상된 입장권 가격,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 확대, 서비스 품질 저하…. 다양한 문제가 확인되는 만큼 근시안적 집단 이기심을 타파할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된다. 바로 공존동생의 확립이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멀티플렉스 3사(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는 한 달 관람객이 1300만 명을 넘어야 적자를 면한다. 코로나19 확산 전에는 달성이 수월했다. 2018년과 2019년 7·8월 관람객 수는 각각 5003만4944명과 4670만2586명. 올해는 2884만4662명이다. 지난 3년간 누적된 부채를 해결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영화까지 가뭄은 아니었다. 톰 크루즈 주연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을 시작으로 류승완 감독 '밀수', 김성훈 감독 '비공식작전', 김용화 감독 '더 문', 이병헌 주연 '콘크리트 유토피아',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 '오펜하이머', 정우성 감독 '보호자', 유해진 주연 '달짝지근해: 7510' 등 기대작들이 차례로 개봉했다. 이른바 '대박'을 터뜨린 영화는 없었다. 특히 한국 영화는 한두 작품이 겨우 손익분기점에 도달했다.

패인으로는 단연 인상된 입장권이 꼽힌다. 멀티플렉스는 펜데믹 기간 영업 손실을 이유로 1000원씩 세 차례 인상했다. 2D 기준 가격은 주중 1만4000원, 주말 1만5000원이다. 문턱이 높아지면서 관람객 유치는 한층 어려워졌다. 조진호 CGV 국내사업본부장은 지난달 30일 열린 '2023 CGV 영화산업 미디어포럼'에서 "관람객의 영화 선택이 까다로워지고, 눈높이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가격을 내릴 생각은 없었다. "소비자가 원하는 입장권 가격은 1000원이나 2000원을 내리는 수준이 아니다. 1만 원 정도를 원한다. 2016년 이전 가격이라 현실과 괴리가 있다"고 항변했다. 역대 가장 많은 관람객을 기록한 해는 2019년(2억2667만8777명)이다. 당시 입장권 가격은 2D 기준으로 주중 1만1000원, 주말 1만2000원이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CGV는 현실과 이상의 간격을 고객 성향을 분석한 맞춤형 전략으로 대응하고자 한다. 가장 주목하는 변화는 '소확잼(소소하지만 확실한 재미)'과 역주행. 전자는 평균 관람 시점이 이전보다 늦어진 경향에서 확인된다. 자체 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 동안 '평균 관람 시점'은 15.1일이다. 2019년 10.8일보다 4.3일 늘었다. 개봉 뒤 보름이 지나서 특정 영화는 보러 간다는 뜻이다.

새로운 경향은 10대와 20대에서 두드러졌다. 평균 관람 시점 증가일이 각각 6.3일과 4.7일로, 전체 평균인 4.3일을 상회했다. 이는 역주행과도 긴밀하게 연결된다. 관람객 710만 명 이상을 모은 '엘리멘탈'이 대표적 예다. 개봉 3~4주차에 1~2주차보다 많은 유입률을 보였다. CGV 측은 "역대 가장 흥행한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2(1374만7792명)'는 1주차 관람객이 42.5%를 차지했다. 그 뒤 유입은 계속 감소했다"면서 "'엘리멘탈'은 다르다. 4주 차에 16.9%로 최고점을 찍고 서서히 감소했다. 흥행 패턴이 과거와 달라졌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7·8월에는 블록버스터에 보편적인 '와이드 릴리즈(최대한 많은 스크린에서 대규모로 개봉하는 방식)'가 그대로 적용됐다. 예컨대 '밀수'는 개봉일(7월 26일)에 상영점유율이 48.5%에 달했다. 1주일 이상 40%대를 유지하다 '더 문(24.6%)'과 '비공식작전(24.3%)'이 개봉한 8월 2일에 21.7%로 떨어졌다. 이튿날 '밀수'는 다시 가장 많은 점유율(24.6%)을 점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개봉일(8월 9일) 전까지 줄곧 30%대를 기록했다.

'더 문'과 '비공식작전'이 상대적으로 기회를 덜 받은 이유는 단명하다. 개봉일에 동원한 관람객(8만9289명·12만1999명)이 '밀수(19만3441명)'보다 적었다. 두 영화는 1주일 뒤 점유율이 각각 5.9%와 12.4%로 곤두박질쳤고, 흥행 참패를 맛봤다. 복수 배급 관계자들은 "박스오피스에서 이른바 몰아주기식 스크린 배정은 영화 만듦새, 관람객 선호도 이상으로 영향을 미친다"며 "다양성 영화는 말할 나위도 없다"고 입을 모았다. 올해 최다 관람객 수를 기록한 '범죄도시 3'는 한때 스크린 점유율이 40.6%에 달했다. 무려 2주 동안 30% 이상을 유지해 1068만2622명을 동원했다. 상영관 배정이나 스크린 배분에 별다른 차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사실 배급사는 하루 만에 승패가 갈리는 현실을 알고도 경쟁에 뛰어든다. 이달도 다르지 않다. 송강호 주연 '거미집', 강동원 주연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강제규 감독 '1947 보스톤'이 27일에 일제히 개봉한다. 복수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추석 대목을 노리나 펜데믹 이전 규모의 흥행을 유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개봉일에 관람객 동원 성적이 저조한 영화는 반등할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영화관은 물론 한국 영화에 이로울 게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한국 영화는 올 초부터 심각한 불황에 시달린다. 투자사들이 지난 3년 동안 큰 손해를 입고 하나둘 철수했다. CJ ENM, 롯데컬처웍스, 쇼박스 등 메이저 투자사도 20~30%의 투자 비율을 더 늘릴 형편이 못 된다. 팬데믹 기간 제작된 영화들이 개봉하고 나면 씨가 마를 위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지도 높은 감독, 배우 등도 OTT로 등을 돌린다. 세대교체마저 더뎌 2025년 즈음 긴 가뭄을 맞을 수 있다.

새로운 창작자를 길러내는 요람은 다름 아닌 영화관이다. 다양성 영화에 충분한 기회를 제공해야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현실은 정반대다. 올해 한국 다양성 영화 가운데 가장 선전한 '다음 소희(11만7070명)'는 고작 1만891회 상영됐다. '범죄도시 3'의 30분의 1, '밀수'의 15분의 1 수준이다. 이마저도 관람객이 찾기 어려운 이른 오전이나 한밤에 상영돼 관심을 받지 못했다.

복수 관계자들은 "주 관람객층인 20·30대가 공감할 만한 내용을 담았는데도 개봉 첫 주에 마땅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외면당했다"며 "재능 있는 감독의 앞길을 막아서는 일이 반복된다면 한국 영화는 물론 영화관의 미래 또한 기약하기 힘들어진다"고 입을 모았다. 앙꼬 없는 찐빵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였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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