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24도인데 실내는 34도... '계란 후라이'가 되는 사람의 몸
한여름 가장 뜨거운 일터는 어디일까? 용광로가 타오르는 제철소를 떠올리겠지만 가장 많은 사람이 쓰러지는 곳은 바로 건설 현장이다. 둘의 차이는 폭염을 어떻게 관리하느냐, 즉 실내기온을 어떻게 측정하고 휴식시간을 주느냐, 쉼터가 제공되는가 하는 지점이다. 뜨겁던 태양이 물러가고 선선해지는 요즘, 한철 내내 폭염에 시달리던 누군가는 안도의 한숨을 쉴 것이다. 하지만 바로 지금이 폭염 대책을 논의할 때다. 그래야 늘어나는 폭염 죽음을 막을 수 있다. <편집자말>
[조혜지, 이종호 기자]
"높은 온도에 노출되면 체온을 떨어뜨려야 한다. 40도가 넘으면 (몸 속) 단백질에 변성이 온다. 계란 후라이를 생각하면 된다. 펄펄 끓지 않아도 (흰자에) 변성이 오지 않나. 인체를 구성하는 물질 대부분은 단백질인데, 여기에는 신진대사를 관장하는 효소가 들어있다. 온도가 올라가면 이것들이 작용을 못한다. 생리 작용 자체가 멈추는 것이다.
여기에 습도가 높으면 땀 배출이 또 안 된다. 그럼 체온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제 몸 속 단백질에 변성이 오는 것이다. 단계에 따라 근육세포가 파괴되는데 그때 흘러나온 물질이 신장을 파괴해 신장 질환도 일으킨다. 이렇게 중추 신경 체온 조절에 장애가 일어나는 게 열사병이다. 열사병은 치사율이 최대 80%다." - 류현철 일환경건강센터 이사장
▲ 온열질환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 |
ⓒ 이종호 |
가장 최근 통계 자료인 2023년 5월 20일부터 8월 27일까지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 운영결과를 보면, 폭염으로 쓰러진 사람은 이미 2500여 명을 넘어 2699명으로 집계됐다. 발생 장소는 실내외 모두 '작업장', 즉 일터가 대다수였다. 특히 단순 노무 종사자가 528명으로 가장 많았다.
자세히 보면 총 2699명 중 실외 발생자는 2118명으로 이중 작업장과 논밭 등 일터에서 쓰러진 사람이 1257명이었다. 실내 발생자는 551명이었는데 이중 비닐하우스를 포함한 작업장 발생 사례는 233명(42%)이었다.
[10년전] "더위먹었냐?" 동료가 그늘막 쳐줬지만... 슬라브 복사열이 부른 죽음
"더위 먹었냐?"
▲ 폭염 대책 법제화를 촉구하는 건설노조원들이 지난 8월 2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원한 폭염법 촉구’ 얼음물 붓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 권우성 |
사망 전날, A씨는 1m가 채 안 되는 구조물 안에서 쭈그려 앉아 철근을 결속하는 작업을 별다른 휴게시간 없이 4시간을 수행했다. 사망 당일, 최고기온은 32.5도. 6월에 이른 더위가 찾아왔지만 공사장에는 철근공들을 뙤약볕으로부터 막아줄 그늘막 한점 없었다.
의식을 잃기 전 고인이 물을 건네던 동료에게 부탁한 것은 '그늘막을 만들어 달라'. 그의 마지막 말은 '119를 불러달라'였다. 오전 11시 40분께 의식을 잃은 고인은 1시간여 뒤인 낮 12시 45분 숨을 거뒀다.
사인은 '급성 심장사'였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사망과 업무 사이 상당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유족 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거부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근로복지공단의 판단을 180도 뒤집었다. 법원은 "무더위 등의 열악한 작업 환경과 재해 전일 강도 높은 업무 수행 등으로 단기간 가중된 피로와 스트레스가 심장질환을 자연 진행 속도 이상으로 급격히 악화 시켰다"고 봤다.
법원이 특히 유심히 본 것은 '스라브(슬래브)'의 온도였다. 건설물의 천장 또는 바닥을 받치는 이 구조물은 철근으로 촘촘히 엮여 있어 한여름 땡볕에선 복사열로 뜨겁게 달궈질 수밖에 없다. 재판부는 사망 당일 현장의 기온보다, 한여름 달아오른 '스라브'로 높아졌을 고인의 실제 몸 온도를 판단했다. 재판부는 "스라브는 햇빛에 더욱 쉽게 달아올랐을 것인 바, 체감 온도는 관측 온도 이상으로 높았을 것"이라고 봤다.
[10년후] 30년 타설공 "작업중지 말 꺼내는 순간 일 끊긴다"
"옆에서 사람들 픽픽 쓰러져도 작업해야 합니다. 스라브 올라가면 (체감온도는) 40도가 넘어요. 그런데도 작업중지 이야기 꺼내는 순간, 현장 퇴출은 물론 '좀 참고 하지...' 배척 당합니다. 덥다는 핑계로 일 안한다는 둥... 구전으로 소문이 퍼지면 일자리가 끊깁니다. (중략) 작업을 피한 한 사람만 경질되는 게 아니라, 팀 전체가 경질 됩니다. 참고 일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요. 그렇게 버티다가 현장에서 쓰러집니다. 의료진들이 손댈 수 없는 상황이 나와야 치료하고 작업을 중지하는 게 현실입니다."
한 30년 경력의 콘크리트 타설노동자는 지난 8월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산업안전보건법과 그에 따른 고용노동부의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가 현실을 벗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올 여름 건설 현장 노동자 32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폭염이어도 별도 중단 없이 일하고 있다"는 응답이 81.7%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동일 조사 결과 58.5%의 응답 비율과 견주어보면 더 악화된 수치다.
실내 노동도 다르지 않다. 역시 폭염 대책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한 물류센터 노동조합 관계자는 "지난 번 태풍이 와서 바깥 온도는 24도 25도로 떨어졌지만, 현장 안 온도는 34도였다"고 했다. 실내 노동인데도 온도 관리가 되고 있지 않다는 토로였다.
"점점 더워지고 있다는 게 확실히 느껴진다. 예전에도 일하다가도 기절하듯 선반 위에서 잠든 적도 있다. 포도당을 먹을대로 먹어도 탈수 증상이 온다. 사람이 일할 온도가 아니라는 게 갈수록 느껴진다."
▲ 서울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콘크리트 기초 작업을 하고 있다(자료사진). |
ⓒ 유성호 |
<고용노동부 온열질환 가이드>
- 실외 작업장 : 폭염 특보 시 규칙적으로 휴식시간 부여, 무더위 시간대(오후 2시~오후 5시) 휴식 부여해 옥외작업 최소화.
- 실내 작업장 : 작업자가 일하는 장소에 온습도계 비치 및 확인.
<산업안전보건기준 규칙 566조>
"폭염에 노출되는 옥내·외 장소에서 작업해 열사병 등의 질병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적절한 휴식 등 건강 장해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한다."
관측기온와 체감온도의 괴리는 사업자가 폭염 시기 작업장 관리에 둔감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은 아직도 기상청이 발표하는 최고기온을 기준으로 하는 폭염경보만을 적용해 작업중지 등을 결정하고 있다.
정부도 실태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지난해 11월 발간한 '폭염한파 건강장해 예방조치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는 폭염에 취약한 7개 업종 사업장을 선별, 실제 온도를 측정해 건설, 작물생산, 택배·창고업 등의 작업장 온도 측정치가 기상청 대기 측정치보다 높았다고 분석했다.
측정 방법은 WBGT(습구흑구온도지수, 온열지수로 표기). 기온과 습도뿐 아니라, 태양열로 달궈진 복사열까지 측정한 노동자의 '열스트레스' 측정 지수다. 지금까지 온열지수는 산업안전보건 규칙 상 이른 바 '고열작업'에만 의무로 측정되는 감시 방법으로, 실제 이글거리는 '불'이 있는 화로(爐) 즉 용광로나 전기로 등이 있는 곳이 해당한다.
▲ 2023년 서울 최고 기온과 온열질환 환자수 |
ⓒ 이종호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윤석열 해수부도 오염수 문제제기... 국힘, 이건 '외교 자해' 아닌가
- "'국민 핑계' 뒤에 숨은 정치인들, 좀 들어라"
- 9월 4일, 학생들이 검은 옷을 입고 등교했습니다
- 녹색연합에 들이닥친 공권력, 잘 짜여진 각본 같다
- 8개월 만에 지하철시위 재개한 전장연, 오늘도 못 탔다
- 호텔 레스토랑 알바 시절, 나는 왜 팁을 거절했을까
- 격파도 스포츠였어... "잡생각 없애는 데 최고의 운동이죠"
- 의사들도 깜짝 놀란 '교사 마음건강' 실태... "심한 우울, 일반성인 4배"
- 윤미향의 반박 "조총련 주최? 100여개 단체 중 하나일 뿐... 코미디 같다"
- 강은희 대구교육감 "아동학대 관련 법 개정 반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