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탈출 성공한 황인범, 운 따르지 않는 클럽 커리어

이준목 2023. 9. 5.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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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세르비아 리그로 이적한 황인범, '행복 축구' 할 수 있을까

[이준목 기자]

대한민국 국가대표 미드필더 황인범이 마침내 '그리스 감옥'을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최악의 상황만 면한 '차선' 정도에 만족해야 했다는 사실은 아쉬움을 준다. 그동안 증명한 실력과 성과에 비하면 유독 운이 따르지않는 클럽 커리어다.

세르비아 리그의 FK 츠르베나 즈베즈다는 지난 9월 5일(한국시간) 공식 채널을 통하여 황인범의 영입을 발표했다. 계약 기간은 4년이며 이적료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유럽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550만 유로(약 79억원)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세르비아 언론들은 황인범의 이적료가 구단 역사상 최고금액이며 이를 3년에 나눠 올림피아코스에 납부하는 조건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황인범은 이제는 전 소속팀이 된 그리스 리그 올림피아코스와 최근까지 이적 문제를 두고 분쟁을 겪어왔다. 2022-23시즌 올림피아코스에 입단한 황인범은 총 40경기에 출전하여 5골 4도움을 기록하며 주축 선수로 맹활약했다. 지난 6월에는 팀 내 스타 플레이어인 세드릭 바캄부와 알렉산드로스 파스찰라키스 등을 모두 제치고 팬들이 선정한 '올림피아코스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2022-2023시즌 종료 후 황인범 측은 올림피아코스에 이적을 요청하면서 갈등을 빚었다. 황인범을 대체불가한 선수로 분류했던 올림피아코스는 황인범의 요구에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구단과 현지 언론들은 일제히 황인범의 이적 요청이 부적절하다며 선수를 비난하고 언론전을 펼쳤고, 이에 자극받은 올림피아코스 팬들은 SNS 등을 통해 황인범에게 테러에 가까운 악플을 쏟아내기도 했다.

황인범 측은 애초에 지난해 올림피아코스와 맺은 계약이 1+2년이었고, 1년이 지나면 약 300만 유로의 바이아웃 조항이 발생하며 팀을 떠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올림피아코스는 3년 계약을 주장하며 황인범은 계약기간은 아직 2년이 더 남아있다고 반박했다. 좁혀지지 않은 양측의 입장차이는 결국 법적 공방까지 예고하며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황인범은 이미 올림피아코스의 프리시즌과 유럽축구연맹 유로파리그 3차 예선 명단에서 모두 제외됐다. 올림피아코스는 황인범의 이적료를 최소한 1000만 유로(약 145억원) 이상으로 책정하며 쉽게 놓아주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구단과의 분쟁이 길어지고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장 큰 피해는 선수가 입는다. 

결국 양측은 한발씩 물러나 차선책을 모색했다. 황인범의 실력을 눈여겨본 여러 유럽 구단들중 즈베즈다가 가장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올림피아코스는 당초 요구했던 이적료에 비하면 절반 수준밖에 안되지만, 그래도 황인범이 주장한 바이아웃보다는 높은 금액으로 실리를 챙겼다. 하마터면 국제미아가 될뻔했던 황인범은 이적분쟁이 장기화되는 것을 피하고 유럽 커리어를 다시 이어갈 수 있게 되어 그나마 한숨을 돌렸다.

황인범의 새로운 소속팀이 된 츠르베나 즈베즈다는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를 연고로 한 하고 있으며, 라이벌인 FK 파르티잔과 세르비아 리그를 양분하여 를 양분하고 있는 동유럽의 명문구단이다.

즈베즈다는 전신인 세르비아유고슬라비아 시절부터 1부리그 우승만 역대 최다인 총 34회(세르비아 리그 9회)나 차지했다. 1991년에는 유럽챔피언스리그의 전신인 유러피언컵과 도요타컵(현 클럽월드컵)을 잇달아 제패하기도 했다. 현재도 2017-18시즌부터 지난 2022-23시즌까지 수페르리가 6연패를 독식하며 꾸준히 유럽클럽대항전 무대를 밟고 있는 팀이다. 즈베즈다가 속한 세르비아 수페르리가의 UEFA 클럽랭킹은 13위로, 올림피아코스가 속한 그리스 리그의 19위보다 높다.

하지만 국내 축구팬들은 황인범의 그리스 탈출 소식을 반가워하면서도 한편으로 이번에도 유럽 상위 리그로 가지 못한데 아쉽다는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2015년 K리그 대전 시티즌(현 대전하나시티즌)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한 황인범은, 2019년 미국 메이저리그사커 밴쿠버 화이트캡스를 통하여 해외로 처음 진출한 이후 미국→러시아→한국→그리스→세르비아로 이어지는 이색적인 클럽 커리어를 보내고 있다.

보통 한국에서 유럽으로 진출하는 선수들이 유소년 시절부터 해외 유스팀과 계약을 맺거나, 혹은 유럽의 중소리그를 거쳐 차근차근 빅리그까지 단계별로 올라가는 루트와 비교하여, 황인범의 커리어는 유난히 복잡하고 다사다난하다. 황인범이 국가대표팀에서 핵심전력으로 꼽힐만한 출중한 기량이 검증된 선수이고, 현재 한창 전성기에 접어든 나이임을 감안하면 진작에 빅리그의 문을 두드렸어야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실 돌아보면 황인범은 자신의 의지로 가고싶은 소속팀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던 기회가 별로 없었다. 첫 해외진출이었던 미국행은 전 소속구단과 에이전트가 유럽행을 우선순위로 원하던 선수의 의사를 무시한 채 금전적으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메이저리그 구단으로의 이적을 추진했다는 사실이 보도되며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2020년 마침내 황인범의 첫 유럽팀이었던 러시아 리그 루빈 카잔에서는 에이스로 맹활약하며 빅리그 입성도 눈앞으로 다가온 듯 했으나, 이번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뜻밖의 변수가 발생했다. 러시아 축구협회와 러시아 리그가 FIFA와 UEFA에서 사실상 퇴출되면서 루빈 카잔과 계약기간이 남아있던 황인범의 처지가 곤란해졌다.

결국 황인범은 FIFA의 특별조항을 이용하여 카잔과의 계약을 임시중단하며 러시아 리그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 경기감각을 유지하기 위하여 K리그 FC서울로 단기 임대를 거쳤다가 다시 그리스 올림피아코스로 이적하는 순탄하지 않은 길을 거쳐야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복잡하게 꼬여버린 신분과 계약조건은, 황인범이 올림피아코스를 벗어나는데 발목을 잡았다.

심지어 황인범은 최근까지도 이탈리아 세리에A와 독일 분데스리가 등 여러 빅리그 구단들의 관심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올림피아코스가 요구하는 무리한 이적료를 맞춰줄 수 있을만한 구단이 나오지 않았다.

황인범이 즈베즈다에서 계약을 모두 마친다고 했을 때 어느덧 30대가 된다. 물론 즈베즈다도 동유럽의 명문구단이라고 하지만, 황인범의 최전성기 구간을 유럽의 중소리그를 떠돌면서 흘러보낸다는 것은 못내 아쉬운 게 사실이다.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은 새 소속팀 즈베즈다가 올시즌 유럽 챔피언스리그 본선 무대를 밟는다는 사실이다. 즈베즈다는 올시즌 챔피언스리그 G조에서 디펜딩챔피언 맨체스터 시티(잉글랜드)를 비롯하여 라이프치히(독일), 영 보이스(스위스)와 한 조에 배정되어 어려운 행보가 예상되고 있다. 황인범은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이강인(PSG), 오현규-권혁규-양현준(이상 셀틱) 등과 함께 챔스를 누비는 또 한명의 한국인 선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또한 황인범의 이적은 클린스만호 출범 이후 첫 승과 내년 아시안컵 우승을 노리는 국가대표팀에게도 반가운 소식이다. 중원의 주축인 황인범이 빨리 제 컨디션을 찾아가 대표팀의 전력도 정상궤도에 접어들 수 있다. 뛰어난 기량에 비하여 유난히 소속팀 운이 따라주지 않았던 황인범이 세르비아에서는 더 이상의 불운없이 '행복축구'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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