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클럽, 올드머니, 마라 엽떡? 코스모의 젠지 취향 가이드

2023. 9. 5.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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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이후 태어난 출생자들을 통칭하는 ‘제너레이션 Z’의 약자, 젠지. 그들의 모순, 자유와 윤리, 욕망과 두려움을 생생한 언어로 들여다본다. 23개의 키워드로 읽는 젠지 리포트.

너 T야?

이젠 MBTI가 신흥종교처럼 여겨질 지경이다. 이 밑도 끝도 없는 열풍은 한때 밀레니얼 세대를 휩쓸었던 혈액형, 별자리, 사주팔자의 유행을 넘어서더니, 이젠 ‘B형 남자’가 아니라 ‘T형 인간’에 대한 밈까지 쏟아지는 중. 얼핏 시비를 거는 것 같은(어쩌면 그게 맞는) 이 문장은 자신에게 공감해주지 못하는 사람에게 던지는 밈이다. ‘공능제(공감 능력 제로)’라는 줄임말이 있을 정도로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큰 의제가 된 요즘 젠지들에게 이성형 T냐, 감성형 F냐는 꽤나 중요한 논제다. 물론 당신이 T든 F든,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쓰기에도 만능이다.

올드머니 룩

넉넉하고 질 좋은 옷감, 몸을 휘감는 듯한 핏, 로고를 드러내지 않으며, 안감을 보기 전까진 어떤 브랜드인지 알 수 없는 조용한 럭셔리, 올드머니 룩. 재벌가 ‘머독’의 이야기를 다룬 HBO 시리즈 〈석세션〉 속 패션과 올드머니 룩으로 등장한 버추얼 모델 펠리로부터 이 유행은 시작됐다. 〈석세션〉 방영 후 ‘올드머니’의 구글 검색량은 874% 증가했고 현재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는 60만 개에 달해, 명망 있는 가문 자제들처럼 입은 젠지들의 룩이 연이어 포스팅되는 중이다. 번쩍번쩍한 로고 플레이로 뒤범벅된 인플루언서와 셀렙의 ‘뉴 머니’에 대한 반발심이 불러온 ‘올드머니’에 대한 열망. 그러니까 ‘졸부’ 말고 ‘찐부자’에 대한 욕망! 양극화 시대에 부자 내에서도 또다시 계급을 나누는 적나라한 욕망이란, 올드머니 ‘룩’을 입는다고 해소될 문제는 아닐 것. 물론 이건 젠지만의 문제는 아니다.

갓생

누가 젠지를 뺀질거리고 일하기 싫어하는 세대라고 했던가.

한 번뿐인 인생, 탕진하고 먹고 놀자는 ‘욜로’의 시대를 지나 ‘갓생’의 시대를 주도하는 것이 바로 젠지다. ‘god’에 ‘生’을 합친 말로, 매일 자신이 목표한 것을 계획하고 성취하는 삶을 뜻하는 갓생의 중심엔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과 #미라클모닝(이른 아침 기상해 자기 계발 시간을 갖는 루틴)이 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2023 MZ세대 운동 트렌드’ 조사에서 Z세대 중 91.2%가 최근 6개월 동안 주기적으로 운동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뿐일까?

소모임 앱을 통해 독서, 글 쓰기, 등산 등의 취미 생활을 야무지게 즐기기까지 한다. 젠지의 하루는 24시간이 모자라다.

프로이직러

이제 대기업 사원증과 평생직장은 젠지에게 성공의 증표도, 좇고 싶은 꿈도 아니다. 그들은 ‘어떤 회사’를 다니는지보다 ‘어떤 일’을 하는지, 다시 말해 ‘그 일이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인지, 내게 어떤 발전과 성장을 가져다주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회사 밖에서도 나만의 것을 만들어가는 ‘셀프 브랜딩’에 공을 들인다. 지난해 취업 사이트 ‘사람인’의 조사에서 입사 후 1년 이내 조기 퇴사자 발생 비율이 84.7%였을 정도로 퇴사는 그들에게 두려운 일도, 부정적인 일도 아닌 것! 열정페이에도 ‘존버’하며 회사의 소모품으로 남는 것은 더 이상 요즘 애들이 아니다. 회사 안팎에서 오롯이 ‘나’로 바로 존재하기 위해 젠지들은 프로이직러, N잡러로 변신하고 있다.

찍먹

탕수육 논쟁이 여기서 왜 나오냐고? ‘부먹’이란 대치어보다는 탕수육을 소스에 찍는 형상을 먼저 떠올려야 한다. 그 모습에서 착안해 ‘발만 살짝 담가 테스트 기간을 가진다’는 뜻으로 확장된 표현이기 때문. 평소 안 입던 스타일의 옷을 사보는 것, 생전 안 가던 클럽을 가보는 것, 팬이 아닌 아이돌의 직캠을 보는 것, 이런 모든 시도를 ‘찍먹해본다’고 한다. SNS에서 자신의 ‘최애’를 영업하기 위해 ‘찍먹해보라’며 서로 권유하는 문화가 널리 퍼졌고, 과거 팬덤 문화에서 지탄하던 ‘잡팬’, ‘겸덕’도 이젠 흔한 개념으로 변했다. 하나에 지나치게 감정을 소모하기보단 내게 즐거움을 주는 수준만큼만 이것저것 ‘찍먹’하는 것. ‘디깅’과는 다른 또 하나의 젠지 문화다.

엽떡 마라떡볶이

마라맛 최종 보스가 등장했다. 엽떡에서 마라떡볶이를 출시한 것이다. 젠지를 휩쓸고 간 ‘마라’ 열풍이 라면, 곱창, 족발, 과자, 심지어 아이스크림까지 습격하며 1절에 2절, 3절에 ‘뇌절’하고 있는 지금, 밀레니얼 세대들이 10대일 적부터 매운맛의 본새를 보여준 엽기떡볶이마저 마라에 달려든 것. 엽떡 마라떡볶이는 출시 7일 만에 초도 물량이 완판되며 전국 품절 사태를 일으켰고, 8월이 돼서야 재판매를 시작했다. 그럼에도 재료 소진을 피하려면 배달 앱을 켜고 매장 오픈 시간을 기다려 주문을 넣어야 한단다. 각종 티케팅과 오픈런에는 도가 튼 젠지들을 뚫고 엽떡 마라떡볶이를 맛볼 수 있는 가장 수월한 방법은 인기가 시들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겠다. 새로운 마라맛이 등장한다면 의외로 오래 걸리지 않을지도!

블록코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핑크로 점철된 ‘바비코어’와 발레 복장에서 영감받은 사랑스러운 무드의 ‘발레코어’ 한편엔 운동복, 유니폼을 일상복처럼 스타일링하는 ‘블록코어’가 젠지의 ‘힙’을 대변한다. 축구, 골프, 테니스, 등산, 캠핑 등 각종 스포츠와 액티비티를 즐기는 젠지의 라이프스타일이 패션에까지 영역을 넓힌 것. 이강인의 PSG 이적 소식과 함께 품절 대란을 일으킨 축구 유니폼부터 트랙 재킷, 트랙 팬츠와 같은 전형적인 스포티한 아이템을 데님, 롱부츠, 버그아이 선글라스, 키치한 미니 백 등과 믹스매치해 ‘나’만의 스타일을 겁 없이, 그리고 과감하게 변주해낸다. 남들의 시선은 상관없다는 듯이!

추구미

말 그대로 자신이 추구하는 미(美),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이미지’를 뜻한다. 추구미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닮고 싶은 셀렙의 외모, 깡마른 아이돌의 몸매처럼 외적인 이상향에 국한됐다면, 지금의 추구미는 외형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분위기, 특정 상황, 행동, 라이프스타일, 심지어 살고 싶거나 가보고 싶은 공간 등으로 확장해 뭐든 내가 되고 싶거나 하고 싶은 것을 지칭하는 말이 됐다. 특집에 참여한 댄서 예본 역시 “내가 원하는 이미지를 정하고 그걸 자신의 정체성으로 만들어가는 게 젠지”라고 말한다. 어떤 것보다 #mood가 중요한 젠지들의 무드 보드이자 젠지의 로망을 읽을 수 있는 키워드다.

푸바오

커다랗고 귀여운 판다 한 마리에 한국형 팬덤 문화가 결합했다. 푸바오 찍덕(‘대포’카메라로 좋아하는 셀렙을 찍어 높은 퀄리티의 이미지를 공유하는 팬)까지 등장해 매일매일 푸바오의 사진과 영상이 플랫폼마다 넘쳐나고, 에버랜드는 푸바오의 실물을 영접하기 위한 팬들로 그야말로 문전성시. 실존 인물이든 2D든 동물이든 무생물이든 무엇이든 꽂히면 ‘디깅’하며 ‘덕질’하는 젠지 문화가 착 달라붙은 케이스다. 게다가 열애 및 각종 논란으로 탈덕할 여지도 없으니, 이거야말로 출구 꽉 닫힌 덕질!

로컬 힙스터

‘로컬’은 ‘핫플’의 정점에 있는 키워드다. 기성세대의 공간이자 외국인이 관광차 방문하는 명소 정도에 머물렀던 각 지역의 전통 시장은 K-푸드와 K-컬처가 글로벌 트렌드로 성장하면서 국내에서도 다시금 조명을 받았고, 여기에 ‘레트로’ 트렌드까지 합세해 젠지에게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이 됐다. 덕분에 오래된 노포는 ‘핫플’이 됐고, 감각적이고 힙한 와인 바나 경동극장을 개조해 만든 ‘스타벅스 경동1960’과 같은 공간은 인생 샷의 성지로 통한다. 올드&뉴 그 잡채, 전통 시장의 매력에 눈뜨지 못했다고? 늦지 않았다. 지금 바로 ’찍먹’해보시라.

알고리즘

쏟아지는 정보와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나만의 것 찾기. 어려워 보이지만 AI 큐레이션 기능은 이미 가동 중이다. 유튜브의 메인 화면에서, 인스타그램 탐색 탭에서, 넷플릭스와 티빙의 추천 작품 목록에서, 구글의 맞춤형 광고에서 이미 유저의 취향은 예측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난 것이 바로 지금의 젠지 세대. 스물셋 특집의 인터뷰이, 모델 엄서윤은 “어릴 때부터 방대한 정보의 홍수에 ‘절여져’ 살았기에 여러 미디어에 친숙하다. 옵션이 많은 세상에서 큐레이션 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우리 세대”라고 말한다. 또한 패션 디자이너 최진유는 “유튜브나 OTT 알고리즘으로 보는 것만 보니 영역이 점점 좁아지는 느낌이라 일부러 다른 분야를 찾아본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큐레이션의 손바닥 안에 있지만 그렇다는 사실 또한 확실히 인식하는 것. 이것이 젠지의 특성이자 자기 인식이다.

집은 없어도 취향은 있어

“집은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 영화 〈소공녀〉에서 집 없이 전전하지만 위스키와 시가라는 취미만큼은 지키는 ‘미소’의 대사다. 부동산 가격이 최고점을 찍은 후 좀처럼 빠지지 않는 지금, 이 세대는 집이 없는 세대가 될 것이다. 이것은 저주가 아니라 현실이다. 다만 집은 없어도 취향은 누구보다 확실한 세대가 바로 젠지다. 위스키를 마시고, 때로는 ‘호캉스’와 ‘오마카세’를 즐기고, 이따금은 명품도 사지만, 스타벅스에 가는 대신 텀블러에 탕비실의 믹스커피를 담아 마시며 무지출 챌린지를 하고, 친환경 제품을 쓰고, 일주일에 한 끼니 정도는 채식을 하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가치 소비를 하며. 젠지 사이에서 취미를 중심으로 한 소모임 앱과 독서 모임, 자신의 취향을 타인과 나누는 살롱 문화가 꾸준히 인기를 끄는 것도 그에 대한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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