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독일 경제와 민주주의가 의미하는 것
[박민중 기자]
유럽은 물론 세계 경제에서 경제대국으로 불리던 독일이 심상치 않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경제 전망을 발표하면서 2023년도 독일의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 경제에 어울리지 않는 지표다. 2022년도 4분기 -0.4%, 2023년도 1분기 -0.1%를 기록한 독일의 경제는 지난 2분기에 가까스로 0%를 기록했으나, 누적된 마이너스 성장의 흐름은 결국 2023년도 독일의 경제전망치를 -0.3%를 기록하게 만들었다.
이는 세계 경제 주요국 가운데 유일하게 역성장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 충격이 배가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독일의 연립정부는 지난 8월 29일 향후 4년에 걸쳐 한화 약 46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감세정책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독일 경제의 위기는 단순히 경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독일 민주주의의 위기를 야기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독일의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독일 국민들 사이에서 위기 속에서 '대안'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 최근 독일의 정당 지지도(voting intention)를 보여주는 도표 |
ⓒ DW NEWS |
위 그래프는 지난 2일 독일의 국영방송사인 DW NEWS가 발표한 여론 조사 결과다. 이는 독일 시민들이 투표장에 가면 어떤 정당을 지지할 것인지를 묻는 정당 지지도 조사인데, 놀랍게도 독일의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현재 독일의 연립정부는 사회민주당(SPD), 녹색당(Greens), 그리고 자유민주당(FDP)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현재 독일 정부를 구성하는 어떠한 정당보다도, 심지어 총리를 배출한 사민당(16%)보다도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22%)이 독일 시민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은 놀라운 일일 뿐만 아니라 민족주의의 한계를 뛰어넘어 탄생한 유럽연합의 관점에서는 큰 위기가 아닐 수 없다.
독일의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은 지난 2010년 유럽에서 유로존 위기가 한창일 때 독일의 메르켈 정부가 그리스에 제공하는 구제금융에 반대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는 불과 10여 년 전의 이야기다. 이후 이 극우정당은 2010년대 중반 시리아 내전 이후 유럽 내에서 난민위기가 대두되었을 때, 메르켈 총리의 대표적인 난민 수용정책에 반대하면서 독일 내에서 영향력을 키웠다. 이처럼 이 극우정당은 출범 이후 줄곧 민족주의(Nationalism) 기치를 내세워 독일 시민들을 설득하고 있다.
지난 201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약 11%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선전을 보였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당시 메르켈은 기존 양대정당인 기민당과 사민당이 약 45%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녹색당이 20%를 넘으면서 큰 위기로 생각하지 않는 듯 보였다. 하지만 불과 4년 여가 흐른 지금 이 극우정당은 독일 국민들로부터 녹색당은 물론 사민당을 훌쩍 뛰어넘는 지지를 받고 있다.
도대체 왜?
▲ 최근 독일 시민들이 자국의 경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여론조사 |
ⓒ Infratest dimap / ARD-DeutschlandTrend |
▲ 2021-2022 독일의 지역별 천연가스 수입을 나타내는 자료 |
ⓒ Journalism for the energy transition |
유럽연합에서 가장 중요한 회원국인 독일이 유럽연합과 우크라이나의 관계를 고려할 때, 러시아의 침략을 비판하면서 뒤로는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하며 러시아로부터 값싼 천연가스를 계속해서 수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외부에서 발생한 전쟁으로 인해 독일은 에너지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고, 이는 물가인상 등 독일 경제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정치와 경제의 상호의존성
러시아의 우크라니아 침공이라는 대외적 변수가 독일의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이는 다시 독일 정당정치에서 극우 정당의 출현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태를 보며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이는 국제정치에서 국가 간 경제적 상호의존(economic interdependence)이 얼마나 얽히고설켜 있는지를 분명하게 말해준다.
1989년 소련의 붕괴 이전의 냉전 시기와 달리 이제는 진영을 떠나 모든 국가들이 경제적으로 매우 밀접하게 교역을 하고 있다. 요컨대, 냉전 시기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유주의 진영 국가인 대한민국의 제1의 교역국가는 다름 아닌 공산주의 진영 국가인 중국이다. 냉전 시기라면 이를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이는 엄연한 사실이자 현실인 것이다.
21세기 탈냉전의 현실에서 공산주의와 자유주의라는 냉전 시기의 사고에 갇혀 국제사회의 경제적 상호의존성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간과한다면 그 국가는 내부적으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으며, 외부적으로는 자멸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이번 독일의 사안을 통해 촘촘한 그물망으로 엮인 세계 경제의 상호의존성 하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독일의 경제가 타격을 받고, 그 타격으로 인해 혼란을 틈타 극우정당이 급부상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독일은 튼튼한 경제 구조와 건강한 시민 사회 하에 헝가리와 같이 극우정당에서 총리가 배출되고, 유럽연합이 표방하는 민주주의, 인권, 법치와 같은 규범들에 반하는 정책을 내세울 것으로 보진 않는다.
그러나 이 같은 일련의 사태를 보며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은 21세기 탈냉전의 국제정치 구조 하에서 촘촘하게 엮인 경제적 상호의존의 중요성이다. 이는 특정 국가와 사회가 시민들의 삶을 담보하는 경제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시시 때때로 변화하는 그 외교의 흐름 속에서 자국의 이익을 어떻게 극대화할 것인지 냉전적 진영사고를 뛰어넘어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충분조건이 아닌 필수조건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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