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 없다'며 돌아선 교육부, 나는 그 이유를 알겠다
[신정섭 기자]
결국, '공교육 멈춤'에 따른 징계는 없던 일이 됐다.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4일 밤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법적으로 따져봐야 할 사항은 있겠지만, 크게 봐서 추모하고 교권을 회복하자는 한마음이기 때문에 추모하신 교사들에 대한 징계는 없을 것"이라며 사실상 징계 방침을 거둬들였다.
▲ 4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열린 고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식에 참석한 이주호 교육부총리가 헌화하고 있다. |
ⓒ 공동취재사진 |
지난달 25일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제7차 시도부교육감 회의에서 "9월 4일 학교 재량휴업 및 교사들의 연가 사용 등은 '우회파업'이고 불법 집단행동이다.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었다. 그런데 이러한 엄포에도 불구하고 이달 2일 7차 추모집회에 참가자 수가 줄어들기는커녕 수십 만 명이 결집하자 교육부의 태세가 바뀌었다.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4일 오후 서초구 서이초에서 열린 고인의 49재 추모식에 참석해 "이번 일을 계기로 반드시 교권을 회복하고 공교육을 바로 세우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 현장의 신속한 안정화를 위해서 오늘 추모에 참가한 교사들에 대해서는 최대한 선처하는 방향도 검토하도록 하겠다"고 한층 누그러진 입장을 밝혔다.
교육부가 '엄정대응'에서 '징계 불가'로 돌아선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첫째, 표적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아 현실적으로 징계가 쉽지 않은 조건이었다. 둘째, 학부모를 중심으로 한 추모 교사 지지·엄호의 벽이 워낙 높아 돌파하기 어려웠다. 셋째, 징계를 밀어붙였을 때 내년 총선 및 윤석열 정권의 국정 운영에 상당한 부담으로 적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① 전교조는 표적이 되지 못했다
강민국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이 지난 3일, 교원노조를 겨냥해 "신성한 선생님을 스스로 노동자로 격하시킨 단체"라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정당의 수석대변인이 '노동 천시'와 '노조 혐오'라는 시대착오적 인식에 빠져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강 수석대변인은 서이초 교사의 49재를 맞아 열리는 '공교육 멈춤의 날' 집회와 관련한 당 차원의 입장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교육자는 성직자만큼 신성한 직업"이라며 "어느 순간부터 특정 단체로 인해서 교육의 현장과 교실이 정치투쟁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신성한 선생님을 스스로 노동자로 격하시킨 단체가 충분한 책임이 있지 않나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의 이런 발언은 맥락상 전교조를 겨냥한 것으로 보기에 충분했다.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추락의 '진앙'이라고 주장했던 여당은 어떻게 해서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아래 전교조)를 하나의 표적으로 몰고가려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표적이 분산되었다. 7차에 걸친 추모집회를 주도한 건 전교조가 아니라, 초등교사 커뮤니티와 '49재 추모집회 운영팀'이라는 자발적 결사체였기 때문이다.
강민국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의 철 지난 이념 공세와 노조 혐오 발언은 먹혀들지 않았다. 외려 "여전히 노동을 힘들고 천박한 것으로 바라보는 저열한 인식을 드러낸 것(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교사들의 몸부림에 귀 기울이기보다 전체 노동자를 무시하고 깎아내렸다(권성집 교사노조연맹 사무처장)"는 평가를 받았다. 교사가 노동자로 일하면서 겪는 고충을 해결해 달라는 요구에 "너희는 노동자가 아냐"라는 여당 수석대변인의 '헛발질'은 장작불에 기름을 부은 꼴이었다.
▲ ‘공교육 멈춤의 날 -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집회’가 4일 오후 여의도 국회앞에서 교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 권우성 |
전국적으로 보수적 색채가 짙은 곳 중의 하나인 대전의 여론을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교육부의 엄정대응 방침을 금과옥조로 받아들인 대전시교육청은, 일부 학교가 가정통신문을 발송해 9월 4일에 '체험학습 신청'이 가능하다고 안내하자 1일 오후 해당 학교장들에게 일일이 전화해 가정통신문을 다시 보내고 정상 등교를 안내하도록 지시했다. 지시에 따르지 않을 경우 징계하겠다고 겁박했다.
이러한 대전교육청의 무리수는 여론의 악화를 불러왔다. 전교조 조합원이 아닌 한 교사는 4일 "오늘 아이를 학교에 안 보냈다. 아이의 담임 선생님도 연가를 내신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추모에 동참하기는커녕 체험학습마저 못 내게 막은 대전교육청에 화가 난 학부모들이 엄청 많다"고 귀띔해 주었다. 맘카페를 중심으로 추모교사를 지지하고 엄호하는 움직임이 컸다고 덧붙였다.
4일 오후 4시 30분, 대전시교육청 바로 옆 공원에서 고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집회가 열렸다. 전교조 대전지부, 대전실천교육교사모임(준), 대전좋은교사운동이 공동으로 주최한 행사였는데, (대전에서는 결코 적은 규모가 아닌) 700여 명의 교사와 시민이 함께 했다. 학생들의 모습도 눈에 많이 띄었고, 학부모로 보이는 시민의 참여도 적지 않았다.
한편, 대전시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청사 내 주차장 공간에서 열린 대전교총 주최 추모집회에는 상대적으로 참여자가 많지 않았다. 징계 위험이 없는 일과 후에 열린 '안전한 집회'였음에도 100명을 넘지 못했다. 최소한 이번 사안만큼은 여론이 교육부나 교육청의 손을 들어주기보다, 징계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추모의 들불이 되고자 한 '검은 점들' 쪽으로 흐른 것 같았다.
③ 징계는 국정 운영에 상당한 부담
교육부가 하루만에 징계 방침을 철회한 배경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한 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지난 주말 현장 교사들이 외친 목소리를 깊이 새겨 교권 확립과 교육 현장 정상화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교조 등 교원노조가 주도하지 않았고 교육부가 파면·해임까지도 가능하다며 으름장을 놓았음에도 7차 추모집회에 수십 만 인파가 모여들었다. 교육부가 두 차례 공문을 보내 엄정대응 엄포를 놓았으나, 정작 겁을 먹은 것은 교사들이 아닌 교육부였다. 대통령과 정부, 여당도 깜짝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고 판단된다.
▲ 서이초 교사 49재를 맞은 4일 오후 서초구 서이초에서 교사와 시민들이 교실과 가까운 곳에 마련된 추모장소에서 헌화하는 가운데, 학교 벽면에 추모글이 적힌 메모지가 빼곡하게 붙어 있다. |
ⓒ 권우성 |
이제 남은 건 '추모 이후'가 아닐까. 집회에 참석한 교사와 시민들은 '진상규명이 추모다!', '교육권 보호 법안을 의결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야는 빠르면 이달 말, 관련 법령의 개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나 대신 먼저 '꽃'이 졌다고, 들불이 되어 번지는 '검은 점'들의 외침이 현실을 바꿔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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