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손된 시신 인양... 구조대원이니까 하는 거쥬"

오창경 2023. 9. 5.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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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부여 소방서 구조구급센터장 황은익씨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창경 기자]

지난 여름, 그칠 줄 모르는 비로 흙탕물이 넘실거리던 백마강에 한 남자가 있었다. 강물에 떠내려가는 소들을 붙잡고 침수된 마을에 고립된 주민들을 구조하는 현장 속에 한 남자가 뛰어다니고 있었다.

서너 번쯤 안면이 있던 그는 마주칠 때마다 다른 장소에서 전혀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동네 식당에서 지인들과 식사하며 가벼운 농담을 던지고 있던 그의 첫인상은 진지함이라고는 없는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남자'였다.

두 번째 우연히 마주친 그는 흰색 유내폼을 단정하게 입은 국궁 선수의 모습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백마강에서 익수자를 구조하고, 떠내려가는 소를 끌어내는 구조대를 지휘하는, 캐릭터가 너무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그와의 세 번째 조우 이후, 그를 찍어 두었다. 정식으로 만남을 요청해 그의 소방 인생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얼마 후, 부여에는 백마강 다리에서 누군가 뛰어내렸다는 소문이 떠다니고 있었다. 소문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CCTV 관제센터에서 우리한테 신고가 들어 왔어유. 백마교 위에 설치된 카메라가 지켜보고 있고, 난간에 다가가면 경고 방송도 허는디 해마다 뛰어내리는 사람들이 줄어들지는 않네유.... 일주일 만에 찾기는 했슈."

부여 소방서 구조구급센터장 황은익(57) 씨였다.

"올해 수난 구조 현장이 유난히 많았죠?"
"비가 원판 많이 왔잖유. 소는 220마리를 살리고 수해로 고립된 사람들은 23명 구조했네유."
 
▲ 부여 소방서 119 구조구급 센터장 황은익  부여 소방서 119 안전센터 차고에서 인터뷰 중인 황은익 센터장
ⓒ 오창경
 
그와 진지한 만남(?)을 요청해 만난 장소는 부여 119소방안전센터 차고 한켠에 있는 소파였다. 그 차고 안에 화재진압용 특수차량은 물론 수난 구조용 모터보트도 정박해 있었다.

올해로 소방 인생 34년째인 그는 화재진압 대원으로 15년을 근무하다가 구조구급요원으로 보직을 바꿔서 19년을 지내고 있다. 그가 구조구급으로 보직을 변경하게 된 계기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1995년)였다.

그 사고를 보면서 소방관은 화재 현장뿐만 아니라 위험하고 위급한 상황에도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소방관에게 화재진압은 기본이다. 안전과 생명에 대한 의식이 높아진 현대 사회에서는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구조구급 전문가와 장비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 백마강에서 익수자를 찾고 있는 황은익 센터장 지난 여름 백마강으로 투신한 사람을 찾기 위해 일주일간 부여소방서 119 구조팀이 논산, 공주, 부여 소방서 119구조 대원들이 출동했다.
ⓒ 오창경
 
우리나라 소방의 역사 속에 구조구급대의 필요성이 최초로 대두된 때는 1986년 아시안 게임이었다. 국제적인 대규모 행사를 치르는 국가에서 안전 확보는 물론 구조구급 체계를 살펴보는 것은 외국인들이 여행할 나라를 선정하는 기본 항목이다.

유투브 채널 국민안전 TV에 의하면 우리나라 한해 119 신고 1위는 화재 출동이 아니라고 한다. 소방 출동은 화재, 구급, 구조로 구분하는데 1위 출동은 긴급 구조로 한해 평균 3백만 건이 넘는다고 한다.

황은익 센터장은 구조구급 현장에서 19년 동안 198구의 시신을 인양해서 가족에게 인계한 일을 가장 잘한 일로 꼽았다. 구조대원으로서 망가지고 훼손된 시신을 보게 되는 일은 피할 수가 없는 일이다.

"구조대원이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 거쥬. 일반인들은 못해유. 사명감이 물에 퉁퉁 불은 시신을 건져내고 높은 곳에 올라가 목 맨 시신을 내리게 하는 거쥬."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리실 것 같은데요?"
"없다고는 못하쥬. 그래서 과음하기도 하고 인생을 너무 무겁지 않은 척 사는 거유. 활을 쏘고 과녁에 집중하는 국궁을 하며 나름대로는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있어유. 요즘 정책적으로 그런 일을 처리하고 나면 병원에 가서 심리 치료 프로그램을 받게 돼 있어유. 저는 그런 프로그램 보다 국궁을 쏘면서 풀어유."

그는 국궁 부여군 대표 선수이며 4단의 실력을 갖추기도 했다. 구조 현장에서 가장 오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경우는 요구조자를 구조하는 중에 사망하는 경우였다. 살려달라는 애절한 눈빛을 보며 애타게 구조 작업을 하던 중에 힘없이 스러져버리는 눈빛을 마주하게 되면 구급대원들의 심리적 타격도 이루 말할 수 없다.

구급 대원의 옷을 입는 순간 그들은 불길 속으로 뛰어들 용기가 솟아나고 익수자를 구조하기 위해 물에 뛰어들게 된다. 구조대원이기 때문에 훼손된 시신도 객관적으로 대할 수 있고 망설임 없이 구조하게 된다.

황은익 센터장은 오랜 구조 활동 경험으로 '샌드위치 패널 파괴창'(가칭)라는 장비를 발명하기도 했다. 구조 현장에서 샌드위치 패널을 제거하는 시간이 오래 걸려 골든타임을 놓쳐 요구조자들의 생명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 샌드위치 패널 파괴창(가칭) 황은익 센터장은 다년간의 소방구급구조 현장의 경험으로 샌드위치 패널을 효과적으로 제거하고 요구조자를 구할 수 있는 장비를 발명했다.
ⓒ 오창경
 
그래서 오랜 경험을 토대로 샌드위치 패널을 한번에 찍어서 벽면에서 뜯어내는 장비를 고안하게 됐다. 이 장비는 '2023국민 안전 발명 챌린지' 집합 교육에서 소개되었고 특허청, 관세청, 해양 경찰청, 소방청의 심의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얼마 전, 그는 동물보호협회로부터 들개 학대 혐의로 고발당하기도 했다. 들개 피해 신고를 받고 출동한 적이 있었다. 민원인으로부터 동의서를 받고 절차에 따라 처리하고도 구급대원들이 고소, 고발 당하는 일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이런 순간마다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묵묵하게 걸어가고 있는 119 고조구급대원들은 사기가 떨어지고 의욕을 상실하게 된다.

올해 수난 구조 출동 횟수는 6회였다. 우울에 시달리고 삶을 비관하는 사람들은 깊은 강물이 흐르고 다리가 있는 곳을 찾는 경우가 많다. CCTV 관제센터에서 24시간 면밀하게 다리 위를 관찰하고 경고 방송을 하고 있지만 떨어지려는 사람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 백마강 수상 구조 훈련 백마강 나간에서 줄을 타고 내려가 백마강에 빠진 요구조자를 구조하는 훈련을 하고 있는 부여 119소방구조구급대원들
ⓒ 오창경
 
부여소방서에서는 다리 위에서 백마강으로 떨어진 사람들을 신속하게 구조하기 위해 수상 전문구조 요원이 다리 위에서 로프를 타고 내려가 구조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보트가 출동하는 시간보다 빠르게 익수자를 구조하는 방법이다. 이런 훈련은 1년에 4회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으며 약식으로 하는 훈련은 거의 매일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마강은 유속은 빠르지 않지만 물이 탁해서 요구조자들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시신 한 구를 구조하기 위해서는 인력과 예산이 많이 든다. 민간 자원봉사자들과 인근 공주와 논산의 소방 인력까지 동원되기까지 한다.
 
▲ 백마강에서 구조 활동 중에 우연히 조우한 황은익 센터장과 아들 아버지를 롤모델로 소방안전학과에 진학해 대를 이어 119 구조 활동을 하고 있다.
ⓒ 오창경
 
지난 여름의 구조 현장에서 황은익 센터장은 논산소방서에서 같은 일을 하는 아들을 강 위에서 우연히 조우하기도 했다. 20여 년전 <긴급 구조 119> 라는 TV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했던 황은익 센터장의 모습을 롤모델로 간직했던 아들은 소방안전학과에 진학했고 아버지와 같은 길을 가고 있다.

황은익 센터장에 의하면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는 현장에 출동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주로 외롭고 병들고 혼자 사는 사람들이다. 사회복지제도로 그런 사람들을 살펴보고 있다고 하지만 그 틈새와 사각지대가 있다. 거기에 위기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해서 사회복지 시스템과 연결해 주기도 한다.

그의 34년 119 소방 인생 중에 가장 보람이 있던 일은 논산 황산 대교에서 추락한 차량 안에서 사람들을 구조했던 일이었다. 당시 그의 구조 활동으로 생명을 건졌던 사람은 최근까지 연락하고 지내고 있으며 고맙다는 말을 항상 잊지 않는다고 한다.

'살려서 돌아오라, 살아서 돌아오라.'

구조대원들이 긴급 구조 요청으로 출동할 때 항상 새기는 말이다. 그만큼 긴급 구조 현장은 위험하고 급박하다는 뜻이다. 항상 긴장 속에 살기 때문에 삶은 가볍게 즐기고 싶어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한다는 황은익 센터장의 하루는 백마강이 보이는 부여 119 소방안전센터에서 시작된다.
 
▲ 지난 여름 부여 수해로 인해 축사가 침수된 현장. 부여 119소방구조구급 대원들이 물에 떠내려 가는 소를 구해서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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