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세탁기 중고 거래... 잠수 타더니 살해 위협까지

조영준 2023. 9. 5.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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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링 무비 294] 영화 <타겟>

[조영준 기자]

 영화 <타겟> 스틸컷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스릴러 장르가 현실의 문제를 소재로 삼고자 하는 욕망은 언제나 있었다. 특별한 장치 없이도 그 문제를 잘 구현해내기만 한다면 관객들의 심리를 쉽게 집어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현실 속에서도 영화 속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관객들의 심리적 밀착은 극 중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을 스크린 밖에서도 훨씬 더 쉽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 이는 최근의 호러 장르가 관객의 두려움을 이용하는 방식과도 매우 유사하다.

영화 <타겟>을 연출한 박희곤 감독은 새로운 시도를 위하여 뉴스와 각종 자료를 찾아보다가 중고 거래, 보이스 피싱 등의 사건과 관련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중고 거래와 같은 사이버 범죄의 경우에는 심각한 피해를 야기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검거율은 2%에 불과했다. 그가 온라인 중고 거래 사기 피해자가 범죄의 표적이 되는 상황을 이번 작품의 주된 소재로 그려내고자 했던 이유다. 지금 현실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현상과 일상의 서스펜스를 엮어 스릴러 장르의 묘미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실제로 국내 중고거래 시장의 규모는 25조 원을 넘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플랫폼의 가입자 수 역시 6000만 명을 상회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고 한다. 시장이 확대됨과 동시에 이를 악용하고자 하는 집단의 범죄율 역시 함께 증가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9년간 중고거래 사기는 81.4%가 증가했고, 피해액은 2021년 기준으로 3606억 원에 달한다. 이 정도면 이 작품 <타겟>이 겨냥하고 있는 목표물은 정확한 것 같다.

02.
"야 차라리 중고를 하나 사. 요즘 중고사이트 대박이야."

영화는 이사 직후 세탁기가 고장난 수현(신혜선 분)이 등장하며 시작된다. 고치자니 50만 원이 넘는 수리비가 부담스럽고, 새 세탁기를 사자니 그 역시 가격이 만만찮아 곤란한 상황이다. 같은 회사의 동료이자 과거 룸메이트였던 달자(이주영 분)가 중고거래를 제안한 것은 그래서였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중고거래 플랫폼을 잘 찾아보면 새것 같은 제품을 싼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으니 좋은 대안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수현의 눈앞에 펼쳐진 중고거래 사이트는 신세계다. 등록되어 있는 매물 가운데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기만 하면 될 정도다.

이제 막 중고거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수현의 이야기 뒤편에서는 피해자가 구매자에 의해 살해를 당하는 범죄가 발생한다. 인터넷 플랫폼에 올라온 매물의 상태를 확인하겠다는 명목으로 집을 찾아온 구매자가 값을 지불하는 찰나의 순간을 이용해 저지른 사건이다. 애초에 구매자는 물건보다 살해에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제 판매자의 집안에 있는 물건 전부를 중고거래 사이트에 매물로 올리기 시작한다.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원래 주인이었던 피해자의 개인 정보를 이용한 또 하나의 사기다.

영화의 초반부에서는 이 두 이야기가 서로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작품 전체의 중심 사건이 되는 수현의 이야기와 그녀가 처하게 되는 사건의 발단이 되는 주변 사건이 발맞춰 전개되는 것이다. 두 이야기가 하나의 내러티브로 합쳐지는 것은 범인이 올린 중고 세탁기를 구매하기 위해 그녀가 30만 원을 송금하면서부터다. 그 세탁기가 설치한 후에 전원이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는, 그 사이 판매자의 계정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수현이다.
 
 영화 <타겟> 스틸컷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03.
뒤늦게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경찰청 사이버 수사대에 신고를 해보지만 수사를 시작하는 데만 3~4개월이 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현은 자신이 직접 범인을 잡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일면식도 없이 거래를 한 뒤 사기 사건을 중심에 두고 양쪽으로 갈라섰던 두 사람이 다시 만나게 되는 건 의외로 금방이다. 인터넷상에 그녀가 사기당했던 내용과 같은 문구로 된 판매글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범인은 자신이 죽인 판매자의 집에 있던 물건을 싹 다 처분하고자 했고, 그 물건들이 같은 형식으로 매물이 되어 등록되었을 것이다.

그의 모든 게시물에 이 매물이 사기라고 댓글을 달기 시작하는 수현과 자신의 거래를 방해하는 그녀에게 보복 행위를 가하기 시작하는 범인. 이후 영화는 이 두 사람의 대립이 어떤 방식으로 번져가게 되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물론 극 중 설정상 각종 불법 프로그램은 물론 해킹 실력까지 갖추고 있는 범인과 그저 평범한 건축 회사 실장에 불과한 수현의 갈등은 결코 동등한 수준에서 이루어지지 못한다. 단순한 신경전처럼 보이던 서로를 향한 두 사람의 공격은 수현의 개인 정보를 손에 쥐고 있는 범인의 쪽으로 점차 기울며 그 수위가 더 강해지기 시작한다.

갑자기 걸려오기 시작하는 세탁기 무료 나눔 문의 전화나 집으로 밀려 들어오기 시작하는 시키지도 않은 배달 음식은 가벼운 축에 속한다. 새벽 시간 전혀 모르는 남자를 집으로 보내 성적인 요구를 하도록 시키고, 자신의 개인 정보와 관련된 사항을 줄줄이 읊으며 집 현관 비밀번호까지 알아내 사적인 공간과 인권을 조금씩 갉아먹으며 침범해 들어오기 시작한다.

04.
"최대한 빨리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영화의 중반부까지 펼쳐지는 두 사람의 갈등과, 그 갈등으로 인해 사기 거래의 피해자가 하나의 극단적인 상황에까지 내몰리게 되는 모습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먼저 피해자가 더 큰 범죄에 노출되는 속도에 비해 이를 막고 지켜주기 위한 공적인 조치는 더디기만 하다는 것이다. 그래도 극 중에 등장하는 주 형사(김성균 분)와 나 형사(강태오 분)는 수현에게 호의적인 편에 속한다. 이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하루에도 수십 건 이와 같은 거래사기 신고가 들어오고, 같은 문제가 쌓이고 쌓일 때까지 문제는 거의 해결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현이 피해와 갈등을 넘어 생존의 위협을 받을 때까지도 실질적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빨리 조치하겠다는 공허한 다짐뿐.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영화는 범인의 또 다른 범죄 대상이었던 인물 혜진(금새록 분)을 이야기 사이에 슬쩍 밀어 넣는다. 수현과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표적이 되어 이미 생명의 위협을 받았던 적이 있었던 피해자다. 그녀의 경우에는 범인이 집을 찾아와 현관문을 부수고 쳐들어올 때까지도 공권력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고 홀로 도망쳐 나와야 했다. 이는 범인이 이후 수현에게 어떤 방식으로 더 잔혹한 보복을 가해 올 것인지를 드러내는 지점이기도 하지만, 범죄라는 이름이 스스로 멈춰 서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첫 피해자에 해당하는 판매자가 사체로 발견돼 가해자로 추측하고 있었던 대상까지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수현이 가지게 되는 공포심은 더욱 커지게 된다. 단순한 사기 사건이 아니라 심각한 범죄임을 깨달은 주 형사가 관심을 갖고 지켜주고자 하지만 24시간 내내 함께일 수는 없고, 범인은 그 틈을 집요하게 노리며 비집고 들어온다. 결국 그녀는 비워둔 집안 곳곳에서 누군가의 사용 흔적이 드러나고, 해킹된 컴퓨터를 통해 메시지가 오는 상황에까지 이르면서 극도의 불안 증세를 보이게 된다. 그리고 관객들은 한 인물이 자신의 공간을 점차 침식 당하며 숨통이 조여드는 과정을 지켜보며 스크린 안쪽으로부터 전이되어 오는 공포와 두려움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영화 <타겟> 스틸컷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05.
다만 한 가지, 이 작품이 후반부에 이르러 수현을 활용하는 방식은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사건의 피해자를 범행의 미끼로 활용한다는 식의 접근이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범인을 반드시 붙잡고 말겠다는 식의 다짐을 수현 스스로가 한 것으로 볼 수도 있는데, 직전까지 보이던 수현의 심리 상태는 결코 그 정도로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또한 주 형사라는 인물의 입장에서도 역시, 그녀가 어떤 위협과 공격을 받았는지 직접 목격한 상황에서 그런 방식을 활용한다는 건 자신이 무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렇게 다시 범죄에 노출이 되는 수현은 자신을 돕기 위해 주 형사가 달려오는 동안 또 한 번 범인으로부터 직접적인 가해와 정신적인 고통을 받게 되는데, 이는 극의 클라이맥스를 구조화하기 위해 극 중 인물을 너무 쉽게 소비하고 활용하는 접근에 지나지 않는다. 범죄자를 잡겠다는 목적 하에 피해자를 다시 한 번 같은 위험 아래에 던지는 선택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 인물의 적극적인 태도나 강한 의지와 같은 말로 포장하기에는 상황의 앞뒤에 놓여 있는 인물의 심리가 조금도 연결되어 있지 않고, 그런 선택을 통한 전개 역시 그저 가볍게만 여겨진다.
 
 영화 <타겟> 스틸컷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06.
영화를 연출한 박희곤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이런 사건을 남의 이야기라고 치부하는 대신 상대가 느끼는 공포를 실감하고 공감해주었으면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시의 적절한 소재와 그와 관련한 여러 실재적인 위협들의 재현, 그리고 무엇보다 이를 표정으로 발산해 낼 줄 아는 신혜선 배우의 연기까지, 이만하면 그의 개인적인 목표는 충분히 달성된 것처럼 보인다. 역시 끝까지 아쉬움이 남는 한 대목은 결말로 향하는 길목에서 조금만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랄까. 그 부분이 꼭 하나 마음에 남는다.

이 작품의 중후반부에 범인이 수현을 납치하기 위해 그녀의 집을 배회하던 장면에서 주 형사를 공격한 뒤에 칼을 꺼내드는 순간이 있다. 그를 죽임으로써 자신의 계획에 장애물이 될 만한 요소를 사전에 제거하겠다는 뜻인데, 그런 그의 의도는 결국 실패하고 만다. 우연히 주변을 지나고 있던 사람들과 골목에 내려와 있던 주민들 때문이다. 짧은 부분이지만 이 사회에 결여된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동시에 해답을 제시하는 날카로우면서도 참으로 인상적인 연출이다. 이 한 장면만 보더라도 이웃과 주변의 관심이 얼마나 중요한지 충분히 깨닫게 된다. 영화 <타겟>이 가진 진짜 메시지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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