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그룹 컨트롤타워]삼성내 "제2미전실' 필요" 목소리.."순기능 봐야"(종합)
"삼성은 연매출 300조원, 시가총액 400조원이 넘는 삼성전자가 있는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글로벌 대기업 집단이지만 방향타가 없다. 그룹의 사업 방향성을 결정하는 컨트롤타워가 없기 때문이다. 일부 계열사들이 사업적으로 더 펼치고 투자해야 한다고 호소해도 ‘비용절감’이라는 4글자로 사업 전개가 막히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삼성그룹 전직 임원)
삼성의 컨트롤타워는 유명무실 상태다. 2017년 2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온 ‘미래전략실(미전실)’이 국정농단 사건 여파로 공식 해체되면서 지금은 ▲사업지원(삼성전자) ▲금융 경쟁력 제고(삼성생명) ▲EPC(설계·조달·시공) 경쟁력 강화(삼성물산) 등 3개의 테스크포스(TF)가 맞물려 돌아가며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세개 TF의 지휘봉은 정현호 삼성전자 부회장, 이승호 삼성생명 부사장, 강병일 삼성물산 건설부문 사장이 잡았다. 2017년부터 ‘삼성그룹’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계열사 자율경영 체제로 전환한 셈이다.
◆삼성 방향타 역할 컨트롤타워=삼성은 컨트롤타워가 끌고 가는 기업집단이었다. 명칭만 비서실,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미래기획실 등으로 바뀌었을 뿐 항상 회사의 현재를 살피고, 미래를 준비하는 컨트롤타워가 있었다. 삼성이 그룹 외형을 갖추기 시작한 1959년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은 조직관리에 강한 일본 미쓰비시와 미쓰이를 벤치마킹해 이서구 초대 실장이 지휘하는 비서실 조직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회장 의전기구 역할에 무게중심을 뒀다. 하지만 1970~1990년대에는 그룹 경영 전반을 다루는 조직으로 발전했다. 당시 비서실은 삼성전관(현 삼성SDI), 삼성코닝, 삼성중공업, 삼성전자, 호텔신라 등을 설립하거나 인수해 그룹 성장을 견인했다.
이후 비서실은 현명관 실장을 끝으로 고 이건희 선대 회장이 취임하면서 1998년 구조조정본부로 외형을 바꿨다. 외환위기 직후 ‘재무통’ 이학수 본부장이 지휘한 이 조직은 외환위기로 경영 어려움을 겪던 삼성의 구조조정과 체질개선을 주도했다.
2006년에는 안기부 X파일 사건이 터지면서 구조조정본부가 해체 압박을 받았다. 컨트롤타워를 포기할 수 없던 삼성은 과거 구조조정본부를 축소 개편해 전략기획실을 만들었다. 2008년 삼성 특검 여파로 전략기획실이 해체되지만 삼성은 2010년 미래전략실을 신설해 컨트롤타워의 명맥을 이었다.
미전실은 2017년까지 김순택 실장, 최지성 실장을 거치면서 삼성의 미래를 결정하는 방향타 역할을 하다가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되면서 해체 수순을 밟는다. 이재용 회장은 당시 "국민들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면 미전실을 없애겠다"며 직접 해체를 지휘했다.
재무통인 정현호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끈 지금의 간이 컨트롤타워는 삼성의 전성기를 이끌어냈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삼성전자는 연 평균 40조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냈다. 고 이건희 선대회장 시절(1988~2014년) 연평균 영업이익은 8조5117억원이었다. 말하자면 현 체제에서 삼성전자는 세계 일류 기업에서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도약했다. 하지만 최근 간이 컨트롤타워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올해 삼성전자 분기 영업이익은 6000억원대로 급락했다. 매출이 60조원대로 영업이익률은 1%에 불과하다.
◆컨트롤타워 부재 속 성장 한계 드러나=삼성은 미래 먹거리 발굴과 선점을 위한 적기 투자 및 추진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3개의 TF가 비슷한 사업을 하는 계열사들의 역량을 모으는 역할은 하고 있지만 서로 다른 사업을 하는 계열사들을 통합해 장차 삼성그룹이 나아갈 방향성을 정하고 신사업을 추진하는 ‘통합 컨트롤타워’ 역할은 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현재 삼성이 미래 먹거리로 내세우고 있는 반도체, 바이오 등은 모두 과거 통합 컨트롤타워가 존재했던 시기 그룹 차원에서 키운 사업들이다. 예를 들어 삼성은 2010년 5대 신수종 사업을 선정, 발표했다. 태양전지·자동차용 전지·LED·바이오·의료기기 등에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삼성의 캐시카우인 반도체, 바이오, 디스플레이 등은 최소 10년 전에 시작한 사업들이다. 심지어 한국반도체를 인수한 시기는 1974년이다. 말하자면 거의 50년전 시작한 사업이 지금 삼성을 먹여 살리고 있다.
현재 삼성 컨트롤타워는 재무 특화형이란 평을 듣는다. 미래기획전략 부문을 보강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최근 삼성 내부에서도 통합 컨트롤타워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은 "삼성그룹에는 전체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며 조직 부활 검토의 신호탄을 쐈다.
전문가들은 많은 계열사들이 하나의 대기업 집단으로 묶여 있는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 특성상 컨트롤타워가 제 역할을 잘 할 경우 효율적인 전략 설정 및 사업 추진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 교수는 "삼성에 대한 위기론이 나오고, 통합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지금이 컨트롤타워 부활의 적기"라고 말했다. 그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경영승계를 하지 않겠다고 공식화했기 때문에 당장 컨트롤타워가 부활한다 하더라도 경영승계에 악용될 리스크도 적다"며 "이제는 컨트롤타워가 재벌의 하수인 조직이라는 과거 인식을 바꾸고 순기능을 볼 때"라고 설명했다.
다만,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컨트롤타워 부활이 쉬운 문제는 아니다. 자본시장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신진영 연세대 교수는 "통합 컨트롤타워가 그룹 차원의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계열사인 각 기업들의 주주, 이사회와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며 "그룹 입장에서는 더 나은 결정이라 할지라도 개별 회사와 이해충돌이 발생해 법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부분을 해결하기가 쉽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조언했다.
박선미 기자 psm8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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