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멤피스’ 한준용 “모두와 가까운 배우이고 싶어요” [D:히든캐스트(141)]
뮤지컬에서 주연배우의 상황을 드러내거나 사건을 고조시키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코러스 혹은 움직임, 동작으로 극에 생동감을 더하면서 뮤지컬을 돋보이게 하는 앙상블 배우들을 주목합니다. 국내에선 ‘주연이 되지 못한 배우’라는 인식이 있는데, 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7월 20일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멤피스’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을 처음으로 라디오에 송출한 기념비적인 인물 DJ듀이 필립스의 실화를 각색해 만든 작품이다. 국내 공연은 이번이 처음으로, 박강현을 비롯해 고은성, 정선아, 유리아, 손승연 등 내로라하는 뮤지컬 배우들이 참여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선 유독 앙상블 배우의 존재감이 남다르다. 작품에서 앙상블은 아크로바틱부터 탭댄스까지 고난도의 다이내믹한 안무를 완벽하게 소화하면서도 각자가 맡은 캐릭터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는 여유까지 보여준다. 특히 한준용은 윌슨을 비롯해 방송사 WDBJ, 백인 청년, 휴이의 매니저까지 모든 캐릭터들을 극에 스며들도록 균형을 잘 맞춘 배우 중 한 명이다. 드러날 땐 화끈하게 나서고, 때로는 자신의 존재감을 숨기면서 맞춰나가는 균형이 ‘멤피스’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2014년 데뷔해 햇수로 딱 10년차가 됐죠.
제가 벌써 10년차라니, 시간이 참 빠르네요. 제가 처음 뮤지컬을 시작했을 때 제 자신과 약속했고,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던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 문구가 있어요. 배우로서 저에게 주어진 역할에 대해 ‘매 순간 혼신을 다하자‘입니다. 그 약속을 저와 함께 했던 많은 배우분들, 스태프분들 또 관객분들께서 한준용이라는 사람을 사랑해주시고, 제가 연기한 모든 캐릭터들을 사랑해주신 덕분에 그 약속이 흔들리지 않았고, 지금의 단단해진 저라는 배우를 만들어 주신 듯 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데뷔 때와 지금, 한준용 배우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요?
데뷔 당시엔 그저 열심히 매일 처음처럼하자는 마음을 품은 배우였어요. 매일 무대에 나가기 전에 틀리지 않기 위해 한 번씩 계속 체크하고, 매번 떨리지만 그 떨림을 즐기는 친구였달까요? 무대에서의 저에게 주어진 캐릭터를 체크하는 것은 현재까지도 이어오고 있는 패턴이지만, 달라진 점이라면 그 떨림을 즐기고 나아가 조금의 여유로움, 그리고 그 여유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움이 생겼다라고 할 수 있겠네요(웃음).
-긴 시간 동안 힘든 시기도 있었을까요?
제 섬세한 에튜티드가 어떠한 작품을 만났을 때 ‘어우러지지 않으면 어떡하지’라는 고민을 많이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작품을 만날 때마다 큰 역할, 작은 역할 할 것 없이 장면 분석을 통해 캐릭터를 심사숙고 만들어내면서 어떤 극이든 저라는 사람을 점점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고민했던 만든 디테일들을 재미있게 바라봐주신 관객 여러분들이 제 원동력의 중심에 계십니다.
-현재는 뮤지컬 ‘멤피스’에 함께 하고 있죠.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 작품에서 저의 밝은 에너지로 함께 호흡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고,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작업한 이 소중한 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멤피스’라는 작품의 첫인상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솔직히 ‘멤피스’라는 작품을 잘 알진 못했습니다. 오디션을 준비하면서 ‘멤피스’에 대해 찾아보게 되었는데, 다양한 장르의 넘버를 듣고 크게 감명받았습니다. 하지만 시대 배경도 그렇고 동양인이 다른 인종을 표현하는 것에 관객분들이 어찌 받아들일지에 대한 생각이 들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다행히 연습을 해오면서 이 초연 멤버들과 함께라면 뭐든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극중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캐릭터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저는 극중 백인 역할을 연기하고 있고, 첫 등장인 윌슨을 비롯해 방송사 WDBJ, 백인 청년, 휴이 매니저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우선 윌슨 씨는 원작에서는 연륜이 있으신 배우분께서 연기하는데, 제가 연기한 윌슨 캐릭터는 돈이 많은 ‘젊은 꼰대’ 느낌으로 설정을했어요. 흑인을 무척이나 혐오하는 천주교의 보수적인 집안의 고상한 사람입니다. 방송사 WDBJ는 연출님께서 다양하고 재미있는 캐릭터를 시도해볼 수 있게 열어 주셔서 잔망스러운 시큰둥이가 나온듯합니다(웃음). 백인 청년은 부끄러움은 많지만, 친화력이 좋은 휴이의 방송을 좋아하는 순수한 10대 소년이고요.
제 마지막 캐릭터인 휴이 방송 매니저는 그 당시 현실을 조금 더 반영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백인 중에 유일하게 빨간 머리를 하고 있는데, 빨간 머리 백인이 어떤 사람들이었을지 살펴보니 같은 백인이지만 ‘하얀 검둥이’라 불릴 정도로 차별받았던 백인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금발 백인의 감독들이 저를 무시하는 태도로 대해 줬으면 한다고 부탁했고, 휴이가 흑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여태까지 어떤 활동들을 펼쳐왔는지 알기에 같은 차별을 받은 인종으로서 그들을 모두 안타까워하는 캐릭터로 설정했습니다.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화도 있을까요? 평소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어 나가는지 궁금해요.
1막 초반에 백인들이 처음 등장하는 백화점 장면의 안무를 배우고, 드라마와 같이 연결을 했을 때였어요. 백인들이 흑인 음악에 맞춰 춤을 추게 되는 장면에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도 모르게 흑인 음악에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을 잘 표현했다고 연출님께서 칭찬해주셨을 때가 기억에 남아요. 정말 감사했죠.
저는 평소에 캐릭터를 만들 때 앞뒤 상황을 인지하고, ‘이 장면에서 추구하는 목표가 무엇일까’ ‘이 상황에서 어떠한 캐릭터들이 가미되었을 때 더 다채롭고, 활력을 불어 넣어줄까’를 생각해보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에 출연하면서 배우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장면에서 추구하는 목적이 명확히 있을 때 배우의 욕심을 내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배우라면 당연히 무대에서 존재감이 커야 할 테지만, 내 존재감보단 그 상황에만 온전히 몰입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순간 본인의 존재감이 자신한테는 막연해 보여도 훨씬 더 장면적으로 잘 보이고,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정말 보고 듣고 느끼면 더 자연스러운 액션과 리액션이 표출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멤피스’의 주연 배우들도 물론 멋지지만, 앙상블에 반했어요. 완벽한 호흡은 물론이고, 그 안에서 자유롭고, 여유로움까지 보여주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델레이 역의 재현이 형이 그러시더라고요. 이번 앙상블은 어디 가서 어떤 역할을 시켜도 다 할 수 있는 배우들만 모였다고요. 그만큼 진짜 다들 너무 잘하고, 매 순간 느끼지만 이렇게 3박자가 고루 갖추고 있는 배우들과 함께 하는 이 순간이 너무 즐겁고 또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특히 앙상블들의 안무가 굉장히 격하잖아요. 작품을 연습하면서 안무를 익히는 과정, 그리고 격한 안무에 노래까지 불러야 하는 상황들이 쉽진 않았을 것 같아요.
정말 춤과 노래가 상당히 고난도에요. 그리고 줄넘기, 점프, 텀블링 등을 배우들이 직접 하다 보니 배우들과 댄스 캡틴이 고생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멤피스팀의 모든 분들이 끝까지 다치지 말고 무사히 행복하게 끝까지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연습 과정(혹은 공연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을까요?
휴이가 방송사고를 친 후 심각한 장면에서 예기치 않게 소품인 대형 카메라의 큰 렌즈가 부러지는 사고가 있었어요. 장면은 계속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 렌즈가 물통같이 생기고 너무 크고 무거워서 처리가 난감했었어요. 그래서 대형 카메라 뒤에 숨어서 카메라 감독인 나인석 배우에게 넘겨준 적이 있었는데, 둘이 눈이 마주치는 순간 ‘왜 나한테 주냐’는 눈빛을 보내는데, 그 렌즈 때문에 다시 장면에 몰입하려고 해도 계속 머릿속에 맴돌아서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던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네요. 하하.
-이 작품에서 한준용 배우가 가장 애정하는 넘버(혹은 장면)와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2막 ‘스탠드 업’(Stand up) 넘버를 좋아합니다. 드라마와 쇼가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있고, 펠리샤의 소울과 고음, 그리고 마지막에 다같이 ‘스탠드 업’을 계속 반복할 때 그 짜릿함까지 구성이 너무 좋아요. ‘네가 누군지 보여줘’라는 마지막 가사가 저를 위한, 또 우리 모두를 위한 소리 같기도 했고요. 누구나 인생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지만, 더 당당하게 힘차게 딛고 일어나 멋진 나를 발견 했으면 합니다.
-‘멤피스’에 직접 참여하시면서 이 작품을 통해 얻은 교훈, 배운 점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우리 모두 각자의 신념을 가지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누가 어떤 선택을 했을 때 잘못된 것은 없다고 생각했고, 각자의 자리에서 꿈을 이루어간다는 건 정말 경이롭고도 참 멋진 일인 것 같아요. 저도 제 길에서 멋지게 해내고 싶습니다.
-아직 작품을 보지 못한 대중에게 이 작품의 매력, 꼭 봐야 하는 이유를 어필해보자면?
칼군무, 희열, 고음, 떼창, 카타르시스, 재미, 감동을 다 느끼고 싶으시다면 ‘멤피스’로 오세요. 그리고, 제가 있어요. 하하.
-최근엔 드라마 ‘가면의 여왕’에도 출연했다고 들었어요. 첫 매체 연기인데, 어땠는지 궁금해요.
뮤지컬과는 확실히 시스템이 달랐습니다. 한 장면에서 여러 각도로 촬영을 해서 대기하는 시간도 많았고, 기다리는 시간 동안에 선배님들께서 뮤지컬을 너무 좋아하신다면서 분위기를 편안하고 화기애애하게 해주셔서 같이 참여했던 동료들과도 너무 재미있게 촬영하고 왔습니다. 아무래도 카메라에는 표정이나 제스처가 디테일하게 담기다 보니 조금 더 자연스럽게 릴랙스한 상태를 유지했던 것 같아요. 한번 경험을 해보니 현장 분위기도 알게 되고, 다시 도전해보고 싶어요.
-앞으로 매체 연기로도 계속 만나볼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되겠죠? 무대 연기와 매체 연기를 함께 함에 있어서 어떻게 중심을 잡아나갈지도 중요할 것 같아요.
배우는 다 같다고 생각해요. 연기는 당연하고, 춤과 노래‘도’ 잘하는 배우가 뮤지컬 배우라고 생각이 됩니다. 관객분들께 진심을 다한 것과 같이 마찬가지로 시청자분들께 진심으로 연기하면 또 알아봐 주시지 않을까요?
-뮤지컬은 물론 연극, 예능, 드라마까지 다양한 도전들을 해오셨는데요. 또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을까요?
조금 더 많은 사람들과 가까워졌으면 해요. 그래서 현재 유튜브 채널인 ‘주뇽티비도’ 다시 살려볼까 고심 중입니다. 간간히 숏츠 영상을 업로드하고 있는데, 더 재미있는 콘텐츠가 생기면 바로 도전해보려고 합니다.
-한준용 배우의 최근 가장 큰 고민거리는 무엇인가요?
제가 2019 ‘DIMF 어워즈’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았었는데, ‘조연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앙상블을 하면 앙상블로 기억된다. 그냥 조연으로 남아있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하지만 조연, 주연, 앙상블을 모두 경험을 하면서 어느 포지션에서든 저라는 사람이 필요한 역할은 나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함이 있다고 생각해왔어요. 그래서 수많은 관객분들을 만나고 또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연차가 쌓이면서 이제는 저의 연기를 많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시기인 것 같아요. 그래서 조금 더 큰 도전을 많이 해보고 싶어요.
-배우로서 자신만의 신념이 있을까요?
어떤 사람은 공연이라는 문화를 처음 접한 것일 수 있잖아요. 그래서 항상 ‘처음 같은 마음’으로 임하는 것. 관객으로 하여금 공연이라는 문화를 사랑하게 만들어내는 것은 공연에 임하는 배우의 마음가짐이라 생각해요. 그 신념은 꼭 지키고 싶어요.
-한준용 배우의 최종 목표도 궁금합니다.
제가 SNS를 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과 소통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래서 SNS로 많은 분들과 인사도 하고, 대화하고 있는데, 그 분들 중에 기억이 남는 DM 중에 ‘제 공연을 보고 심적로 힘들고, 어려울 때 저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 덕분에 큰 위로를 얻고, 행복해졌다’면서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받은 적이 있어요. ‘나로 인해 이렇게 행복해지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다’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였습니다. 제 목표는 제 삶의 과정을 신뢰하고, 나 자신을 끝까지 사랑하는 것, 그 신뢰가 쌓여 언젠가 누군가에게 꿈이 되어주고, 누군가에겐 목표가 되어주고,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많은 사람과 서로 다독이며 나아갈 수 있는 ‘모두와 가까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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