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역대급 엔저'의 두얼굴…파죽지세 日증시에 드리운 불황 그림자
니케이225 올초대비 26%↑
내년3월까지 훈풍 기대
엔저 수출호황은 '반짝효과' 비판도
중소기업·서비스업은 타격 상>
올해 일본의 니케이225 지수가 버블경제 붕괴 이후 33년 만에 심리적 저항선인 3만3000선을 돌파하면서 일본 증시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국내 투자자들은 일본 주식 매수 행렬에 속속 가담하고 있으며, 국내 자산운용사들은 이들을 모실 투자상품 마련에 분주하다. 엔저에 따른 일본 기업들의 실적 증가와 일본 정부의 증시 부양책,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의 일본 5대 상사 투자 등 각종 호재가 일본 증시를 끌어올린 결과다.
소위 ‘일학개미’로 불리는 투자자들의 관심은 향후 일본 증시의 우상향 여부다. 일본 자본시장에서는 증시 상승세의 ‘양날의 칼’로 엔저를 꼽는다. 엔저의 행진이 단기적으로는 니케이225의 3만8000 고지 탈환에 기폭제가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일본 경제 불황을 심화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日 증시 대표지수, 최고점 경신…엔저 수혜에 증시 훈풍블룸버그에 따르면 4일 도쿄 주식시장에서 닛케이225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0.7% 상승한 3만2710.62엔에 거래를 마쳤다. 니케이225는 올 1월 2만5000~2만7000선을 그리며 완만한 상승세를 보이다가 지난 4월말 부터 급격히 치솟기 시작했다. 지난 6월에는 1990년 버블경제 붕괴 이후 33년 만에 3만3000엔 선을 돌파했다. 3만3000엔 선은 니케이225 지수에서 심리적 저항선으로 평가되는 구간이다. 니케이225의 올초 대비 상승률은 26%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 코스피 상승률은 15.22%에 그쳤다
대형주 중심의 토픽스(TOPIX) 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1.02% 상승한 2373.73에 장을 마쳤다. 토픽스 지수는 지난 5월 장중 한때 2127.18을 기록하며 1990년 8월 2일(2215.43) 이래로 33년 만에 최고점을 돌파했다 이후에도 토픽스지수는 소폭 등락과 하락을 반복하며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엔저의 심화가 일본 증시 상승세에 기폭제로 작용하고 있다. SMBC닛코증권은 지난해 일본주요 상장사들의 2022년 회계연도(2022년 4월~2023년 3월) 순이익이 역대 최대 기록이었던 2021년의 34조엔을 소폭 웃돌 것으로 추산했다. 특히 종합 상사나 수출 비중이 높은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어닝서프라이즈를 기록하며 순이익 증가를 견인한 것으로 분석했다.
일본 증시와 산업은 수출주 중심으로 구성돼 있어 이들 기업의 실적 개선은 증시 상승의 동력이 된다. 시장조사기관인 제국데이터뱅크가 지난해 1만1503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의 18.1%가 엔저가 매출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거나 타격이 없다고 답했는데, 대기업일수록 이 같은 응답을 한 비율이 높았다.
신한투자증권의 김성환 수석연구원은 대형 수출 기업들에 엔저 혜택이 집중된다는 점을 토대로 "엔화 가치가 10% 절하되면 일본 기업들은 미국 기업에 비해 10% 가까이 실적이 오르며 증시 상승을 이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 니케이225 내년 3만8000선 관측일본 증권가에서는 증시 훈풍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엔저에 따른 기업들의 호실적 외에도, 일본 정부와 기업이 근로자들의 임금 인상에 적극 나서고 있어 증시에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봤다.
노무라 증권은 내년 3월까지 니케이225 지수가 최대 3만8000엔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는 버블경제가 절정에 달했던 1989년에 기록된 최고치인 3만8957.44엔에 근접한 수치다. 토픽스 지수는 최고 2600까지 오를 수 있다고 예측했다. 노무라 증권은 "엔저로 기업의 마진이 기대 이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며 종전 최대 3만2000엔으로 예상했던 니케이225 지수 전망을 상향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기치카와 마사유키 미쓰이스미토모 DS 자산운용사 수석 매크로 전략가도 내년 1분기에 닛케이 지수가 3만8000선까지 상승할 것이라며 긍정적 전망을 내놨다. 기치카와 전략가는 "일본의 거시 경제 환경이 변화의 조짐을 보인다"며 "임금 인상 등으로 일본 기업들이 원재료비를 제품 가격에 전가해 수익을 개선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기업들이 자발적 지배구조 개선도 증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전망이다. 도쿄증권거래소가 지난 3월 PBR(주가순자산비율)이 1을 밑도는 상장기업들을 대상으로 기업가치 제고를 요구하면서 주요 상장사들이 잇달아 자사주 매입에 나섰다. 증권 당국의 요청에 미쓰비시상사는 자사 주식의 최대 6%를 22억달러에 환매하기로 했으며 혼다는 주주 환원 차원에서 2023년 회계연도(2023년 4월~2024년 3월)에 전체 지분의 4%에 해당하는 2000억엔의 자사주를 매입할 방침이다.
상장사들의 배당금도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니혼게이자이는 일본 상장기업들의 올해 회계연도 기준 예상 배당금이 15조2000억엔(약 142조1382억원)에 달할 것으로 집계했다. 이는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던 전년 대비 1000억엔 증가한 규모다. 이처럼 기업들의 적극적인 주주환원 움직임에 나서면서 일본 증시 상승세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소기업, 엔저로 휘청…日 국민 실질구매력 떨궈일각에서는 엔저의 파고가 단기간 증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제 둔화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수의 수출 대기업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중소기업과 서비스 기업들은 엔저로 경영에 극심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데이터제국의 조사에서 엔저가 실적에 악영향을 준다고 답한 62%의 기업들은 엔화 가치 하락으로 해외 인력들의 인건비와 원자재 수입 비용 증가할 것에 우려를 표했다. 이들 기업은 주로 서비스, 도·소매기업들이었다.
단기적으로는 시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은 기업들에게 엔저의 악영향이 미치는 만큼 증시 방향성에 영향을 주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엔저로 인한 손실을 서비스와 도·소매품 가격에 전가할 경우 그 파급 효과는 증시뿐만 아니라 경제 전반에 퍼지게 된다. 일본의 실질 임금이 물가 상승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14개월째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급격한 물가 상승은 소비 감소와 경기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
또 일본 국내총생산(GDP)에서 가계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50%나 된다는 점에서, 경기 둔화에 따른 기업들의 실적 저하는 증시에도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제국데이터뱅크는 "엔저로 인한 (원자재) 매입 가격 상승으로 기업들이 도산을 하는 건수가 늘고 있다"며 "수출기업들은 점점 해외 생산을 늘리고 있어 엔저로 인한 수출 호황은 반짝 효과에 그칠 것이며 오히려 일본 국민들의 실질 구매력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야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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