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마무리 할 때, 이러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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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우 기자]
나는 내 글을 자주 읽는다. 글이 잘 써지지 않거나 침울해져 있을 때, 내 글을 찾아 읽는다. 나르시시즘이라 비판받을지도 모르나 내 글은 내가 기댈 수 있는 언덕과 같다.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나를 위함이기 때문이다.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 쓰는 게 글이다 보니, 내가 쓴 글만큼 나를 위로하고 내게 힘이 되는 글도 드물다. 쓸 때만 해도 끙끙 안간힘을 쓰며 적지만, 훗날 문득 열어볼 때면 글 하나하나가 무척 생경하면서도 따뜻하게 다가온다.
쌓아놓은 글이 늘어나니 기억에 선명한 글보다 흐릿한 글들이 더 많아졌다. 내 글인데도 남의 글을 엿보는 것 같아 설레다가도, 나도 모르는 내 글의 존재가 한편으로는 두렵다. 그러니 읽고 쓰며 수시로 다짐을 한다. 정직하게 써야지. 솔직한 나를 드러내야지.
정직하지 않은 글은 흔들리는 돌이자 금이 간 기둥과 같아서, 미래의 어느 시점에 나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내가 쓴 글에 내가 걸려 넘어질 수도 있는 것. 거짓을 덮을 수 있는 건 또 다른 거짓뿐이기 때문이다. 거짓을 한 번이라도 적으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건 시간 문제다. 나를 위한 글이 나를 해하는 글이 된다면 얼마나 당혹스러울까.
▲ 진실을 말하라 거짓을 쓰면 언젠가 나의 글이 나를 무너뜨린다. 정직하게 쓰는 게 가장 중요한 이유다. |
ⓒ unsplash |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정직함을 꼽는다. 마음에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바르고 곧음을 뜻하는 정직(正直). 나에 대해, 내 상황에 대해, 내 생각에 대해, 적을 수 있는 데까지만 적는 게 바람직하다. 혹여 좀 모자라 보이더라도 아는 것까지만 쓰기. 좀 얕은 사람으로 보일지라도 깨달은 것까지만, 생각이 닿은 지점까지만 쓰기. 무리하지 않아야 내 글이 내 발등을 찍는 일을 막을 수 있다.
글을 쓰다 보면 메타인지가 발달한다는 느낌이 드는데,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쓰다 보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하는 힘이 생긴다. 막상 써보면 안다.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지, 겉핥기로만 알고 있는지. 내가 그때 그 일을 온전히 이해했는지, 이해하는 척만 했는지. 내 안에서 해결된 문제인지, 덮어놓은 문제인지. 글은 모든 걸 명료하게 드러낸다.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다 보면 다수의 사람들이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이상적인 결말로 글을 끝맺으려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난 사람으로 보이기보다 둥근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한다. 모자란 사람이기보다 더 아는, 더 깨달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한다. 실체가 없는 욕심은 공허함을 남길뿐이다. 어설픔은 티가 난다. 누군가는 내 글을 읽으며 나의 새카만 속내를 꿰뚫고 있을지도 모른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적기
글은 내가 완벽한 사람이라는 걸 드러내기 위해 쓰는 게 아니다. 성인군자처럼 다 깨달은 사람인 걸 과시하기 위해 쓰는 것도 아니다. 나의 행복을 만천하에 떠벌리기 위해 쓰지도 않는다. 애써 깨달은 척 다 이해한 척 하지말고, 모르면 모르는 대로 모나면 모난 대로 깨닫지 못하면 못한 대로, 끝을 맺어도 무방하다. 나를 깎고 깎아 남들과 똑같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글을 쓰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쓰면서 나를 알아가고, 어떤 생김이든 어떤 기질과 환경 속에 있든 가감 없이 마주하기 위해 글을 쓴다. 남들과 똑같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면 글은 쓸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저 남이 하는 대로 따라가면 그뿐이니. 글을 쓰는 건 타인과 다른 나의 고유성을 알기 위함이다. 비슷한 사람은 있어도 똑같은 사람은 없다. 같은 유전자를 물려받은 일란성 쌍둥이도 다른 성격을 지니고 다른 삶을 살아간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옛말이 있다. 특히 한국 사회는 튀는 사람을 가만 두지 않는다. 눈에 띄는 사람을 욕하거나 시기 질투한다. 아이들은 고학년이 될수록 무채색 옷만 입고, 왕따가 될까 봐 튀는 행동을 자제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보다 남들도 다 가는 길을 그저 따라간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사람들은 튀어 보이는 걸 극도로 경계한다. 조금이라도 다르게 살아가는 걸 겁낸다.
나를 감추고 비슷비슷하게 살아가면 행복할까. 나의 내면을 들여다 보지 않고, '참 나'를 알아가는 길을 포기하는 삶이 과연 만족스러울까. 튀는 사람들을 덮어놓고 비난하는 세상이 과연 살기 좋은 세상일까. 오히려 모나면 모난 대로 둥글면 둥근 대로, 다름을 인정하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더 살 만한 게 아닐까.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처음 저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왈칵 눈물을 쏟았다. 내 모습대로 살지 못했던 시간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시간 속의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나를 알아보기보다 남을 알아갔던 시간, 나의 모남을 들킬까 봐 전전긍긍했던 날들, 진짜 나를 감추고 무난한 척 연기하듯 살아가던 시절.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가장 유명한 문구는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이다. 여기서 '알을 깬다'는 표현은 결국 온전한 나를 세상에 드러내는 일이 아닐까. 내가 나를 알아야, 나의 생김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비로소 나의 알을 깰 수 있다.
생김을 부정하고 지우기보다, 자신의 개별성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살아가야 삶이 만족스럽다. 정직하게 글을 쓴다는 건, 바로 그런 나를 세상에 내보이는 일이다. 스스로 알을 깨는 과정인 것이다.
▲ 달걀에 그려진 다양한 표정 달라야 아름답다. 다름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 적는 정직한 글쓰기만이 나를 바꾼다. |
ⓒ unsplash |
여행이 즐거운 건, 여행지에서 만나는 풍경과 사람들이 일상에서 보던 모습과 다르기 때문이다. 지구가 아름다운 건, 우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다양한 생물들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사회란 무엇일까. 다양한 사람들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회가 아닐까. 타인과 다른 나를 드러내는 걸 주저하지 않는 분위기. 개개인의 생김도, 살아온 배경도, 선택한 삶도 모두 다르다는 걸 마땅히 인정하는 문화. 그럼에도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회.
정직한 나를 드러내는 건 바로 그런 세상을 향해 가는 작은 발걸음인지도 모른다. 애써 둥글게 보이지 말고, 화가 나면 나는 대로, 속상하면 속상한 대로, 특이하면 특이한 대로 감추지 않고 드러내 적는 것. 쓰다 보면 알게 된다. 나의 화가 정당한 것인지, 속상함의 근원이 타인인지 나인지, 왜 나는 남들과 다른지.
나의 감정을 명확히 들여다 보고 그 시간 속의 나를 꺼내 보면,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한다. 남과 다르더라도, 세상이 원하는 상이 아니더라도, 시대와 맞지 않는 나일지라도, 보듬어주게 된다. 나의 타고난 생김과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나의 미숙함과 나를 둘러싼 환경들이 조금씩 이해된다.
그러다 보면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구분할 수 있다. 이걸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면 쓸데없는 감정 낭비를 하게 된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붙잡고 속앓이를 하는 것만큼 답답하고 소모적인 일이 있을까.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려 노력하고, 바꿀 수 없는 것은 인정하고 내려놓다 보면, 조금씩 내 주위가 변한다. 내 관점이 바뀌니 내가 달라지고, 내 삶과 나를 둘러싼 세상도 변하는 것이다.
거짓으로 글을 쓰면 이런 과정과 결과가 소거된다. 마무리되지 않은 감정을 글로 쓰기 위해 억지로 종결시키면, 마음의 응어리는 풀리기는커녕 도리어 엉켜버린다. 진실을 적지 않으면, 이야기는 왜곡되거나 축소 혹은 과장된다. 나를 위한 글쓰기가 나를 해하는 글쓰기가 되는 것이다. 정직한 글쓰기만이 나를 치유하고, 내 삶을 바꾼다. 우리가 써야 하는 글은 바로 그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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