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철 입법조사처장 "입법영향분석, 국회 권위 살리는 길"
노태우·김대중 '통합 정치'가 나라 살려
보수와 진보가 통합되면 일 해결
"국회 입법 과정을 들여다보면, 중요한 부품 없이 달리는 차 같지 않나요? 정치적으로 부딪히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국회에서 만들어진 법을 믿을 수 있으려면 입법영향분석이 필수적입니다."
박상철 국회입법조사처장은 최근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입법영향분석은 국회의 권위를 살리는 길"이라며 이처럼 말했다. 박 처장은 올해 4월 취임 이후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대한 입법영향분석 제도를 도입하는데 총력을 쏟고있다.
입법영향분석은 제·개정되는 법안의 사회적 영향 등을 분석해 이른바 '입법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추진되고 있다. 정부입법의 경우 입법예고 후 규제심사, 법제처 심사에서 영향분석을 거치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지만, 의원입법은 10명 이상 공동 발의자의 서명만 있으면 법안 발의가 가능해 과잉ㆍ부실입법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일례로 음주운전에 대한 법정형을 강화한 국회의 도로교통법 개정(일명 ‘윤창호법’)은 2회 이상 음주운전에 대한 일정한 시간적 기준 제시와 법정형의 세분화를 하지않았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가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같은 입법 리스크는 17대 국회 이후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이 주요 평가지표가 되면서 '묻지마 법안 발의'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 21대 국회 들어 의원입법은 전체법안의 90%를 넘었다. 이 때문에 관련법이 잇따르고 있다. 여당에선 윤재옥 원내대표를 비롯해 이종배·정경희·홍석준 국민의힘 의원들이 대표발의했고, 야당에서도 김태년·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제출했다.
박 처장은 취임 이후 층간소음(건축법)과 마이데이터(의료법) 등 생활밀착형 법안에 대한 입법영향분석을 실시했다. 그는 입법영향분석을 통해 가치중립적인 입법 분석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폈다. 박 처장은 "층간소음을 줄이기 위해 발의된 법안의 경우 시공사가 분양 받을 사람에게 건축 자재를 공개하면 일반 국민에게는 좋겠지만 시공업자들에게는 규제가 될 수 있다”면서 "과연 이렇게 규제했을 때 어떤 영향이 있는지를 알아보면 법안 통과에 오히려 힘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마이데이터’ 관련 입법영향분석도 마찬가지다. 병원을 옮길 때 기존 병원에서 받았던 투약 정보나 검사 결과 등 진료 기록을 이전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의 경우 병원이 직접적인 규제를 받는 만큼 반대할 수 있지만, 과학적인 입법영향분석을 통해 합리적인 선을 찾을 수 있다고 박 처장은 주장했다.
그는 성균관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원 법학 석사 및 박사를 거친 헌법학자다.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과 헌법개정 TF 팀장,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분과 위원, 국회혁신자문위원회 위원을 맡는 등 오랫동안 한국정치사 현장을 지켜보며 정치 내공을 쌓았다.
박 처장은 현재 여소야대 상황에서 거대 야당의 법안 단독처리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점도 입법영향분석이 필요한 이유로 꼽았다. 박 처장은 “입법 과정에서 정쟁화하고 이해관계자, 이익단체들만이 나서서 이들의 의사만 반영되는 법안이 자꾸 나와서는 안 된다”면서 “기껏 법안을 만들었는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헌법재판소에 쟁의권한 심판을 청구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국민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법안을 국회가 만들기 위해선 입법영향분석이 분명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앞서 김진표 국회의장은 지난 1일 정기국회 개회사에서 "정부가 복잡한 입법 추진과정을 생략하고 의원입법에 의존하는 경향이 늘면서 입법과정에서 여야 간, 상임위원회 간에 과도한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면서 "입법조사처와 예산정책처 전문인력까지 참여한 입법영향분석을 통해 전문위원 검토 보고가 좋은 입법을 추진하는 원동력이 돼야 한다"며 힘을 실었다.
박 처장을 자신을 '정치통합론자'라고 지칭했다. 보수와 진보, 여야가 서로 통합할 수 있는 기반을 입법조사처를 통해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는 "역대 대통령 중 보수에서는 노태우 전 대통령, 진보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장 일을 많이 했다"면서 "일을 가장 많이 할 수 있었던 이유로 '통합의 정치'를 실현해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은 3당 합당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야당과의 소통을 굉장히 중요시했고, 김 전 대통령은 DJP 연합을 통해 연립정부를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특히 보수정권이던 노 전 대통령이 1991년 남북 동시 유엔 가입을 성사시킨 것은 야당과 함께 소통한 결과라고 소개했다.
그는 "보수와 진보가 통합되면 일을 진짜 많이 해낸다. 연합정치란 표현도 있는데, 자기 세력끼리만 정치를 한 사람들은 실질적으로 돌이켜보면 일을 이룬 게 없다"면서 "서로 머리를 맞대면 일이 해결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회가 행정부보다 효율적이진 않지만, 생산적일 수 있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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