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하게 섬뜩하고 독특한 ‘잠’ [쿡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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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부부 현수(이선균)와 수진(정유미)은 평범하고 단단하다.
만삭 워킹맘 수진은 그런 현수를 위로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려 애쓰지만, 노력은 번번이 수포로 돌아간다.
아이를 낳은 뒤 수진은 현수의 이상행동에 과민반응하기 시작한다.
수진은 살벌한 기행을 벌이는 현수를 꼭 붙들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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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부부 현수(이선균)와 수진(정유미)은 평범하고 단단하다. 볕 들 날 없이 살면서도 함께라면 모든 걸 해낼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이 단란한 가정을 뒤흔든 건 다름 아닌 잠. 어느 날부터 남편 현수가 잠에 든 뒤 이상행동을 보이면서 부부의 일상엔 균열이 생긴다. 가족의 평화를 위해 난관을 극복하겠다고 마음먹는 수진. 이 부부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오는 6일 개봉하는 영화 ‘잠’(감독 유재선)은 신선한 아이디어에서 시작하는 공포감이 도드라지는 작품이다. 극 중반 넘게까지 이어지는 근원 모를 오싹함이 이 영화의 가장 큰 힘이다. 이번 작품으로 데뷔전에 나선 유재선 감독의 당돌한 장면 연출이 베테랑 배우 이선균, 정유미와 만나 좋은 시너지 효과를 냈다. 섬세한 연출력으로 정평 난 봉준호 감독의 휘하였던 만큼 ‘잠’ 역시 세심한 구성이 돋보인다.
영화는 총 세 장으로 나뉜다. 신혼부부의 일상을 파괴한 균열의 시작점을 다룬 제1장과 아이를 낳고 3인 가족이 된 이후를 담은 제2장, 걷잡을 수 없이 뒤틀리는 이야기를 그린 제3장이 핵심 얼개다. 부부가 직면한 상황이 달라질수록 인물 역시 변화를 겪는다. 현수는 떠오르는 연극배우지만 TV에선 단역 신세에 불과하다. 하지만 수면장애로 단역 자리마저 놓치고 가정 평화까지 위협받자 고민이 깊어진다. 만삭 워킹맘 수진은 그런 현수를 위로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려 애쓰지만, 노력은 번번이 수포로 돌아간다. 아이를 낳은 뒤 수진은 현수의 이상행동에 과민반응하기 시작한다. ‘둘이 함께라면 극복 못 할 문제는 없다’는 가훈에 섬뜩하리만치 집착하며 부서지기 일보 직전인 가정을 어떻게든 지키려 든다.
수진을 고난에 빠뜨린 현수의 수면장애가 극 전반을 이끈다면, 현수를 경악케 하는 수진의 과잉행동이 후반부를 책임진다. 이들 캐릭터를 표현한 배우들의 활약이 강렬하다. ‘잠’은 이선균과 정유미를 십분 활용해 전개 사이사이 공백을 양껏 채운다. 이상증세를 연기하는 이선균은 극 중반까지를 견인한다. 역할은 하나지만 수면 중 드러나는 기괴한 자아와 평상시 다정한 면모 등 상반된 모습을 1인 2역처럼 연기한다. 이후부터는 정유미가 독보적인 역할을 해낸다. 신경쇠약에 시달리다가도 광기 어린 눈동자를 번뜩일 때면 스크린 너머로까지 폭발적인 에너지가 와닿는다.
유재선 감독의 연출방식 역시 새롭다. ‘잠’은 공포 대상을 인지하고 이를 밀어내는 모습으로 긴장감을 자아내는 일반적인 패턴과 다르다. 수진은 살벌한 기행을 벌이는 현수를 꼭 붙들어둔다. 자신도 모르는 모습에 겁이 나 거리를 두려는 남편에게 도리어 “문제가 생기면 함께 극복해야 하는 게 부부”, “부부는 쉽게 포기하면 안 된다”며 혼을 낼 정도다. 익숙한 문법을 뒤집자 새로운 긴장감이 발생한다. 음악과 클로즈업을 적절히 활용해 공포감을 끌어올리는 솜씨 또한 탁월하다. 스크린에 몰입하다 보면 의도치 않게 새된 비명이 나올 정도다.
견고한 만듦새로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에 충실하던 영화가 방향을 잃고 헤매는 건 극의 중후반부터다. 가족을 지켜내려 몸부림치던 수진은 자꾸만 변해간다. 다만 그 변화가 급진적이다 보니 이야기 사이 유기성이 흔들린다. 해석할 여지를 열어둬도 여운 아닌 모호함이 앞선다. 아쉬운 점을 상쇄하는 건 극 전반부터 쌓아올린 스릴감이다. 흡인력 좋게 끌어가는 힘이 좋다. 섬뜩하고 독특하며 기발한 이야기가 신선한 매력을 준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으나, 살벌한 ‘쪼는 맛’만큼은 이견 없을 듯하다. 적당한 상영시간 역시 작품을 깔끔하게 즐길 수 있도록 돕는다. 6일 개봉. 94분. 15세 이상 관람가.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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