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업소 여직원에 마약 댄 의사…징역형 받고도 "진료합니다" [마약상 된 의사들②]

김민중, 신혜연, 이영근, 장서윤 2023. 9. 5.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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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상 된 의사들②]


3일 오후 의사 A씨가 운영하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의원 간판(위). A씨는 프로포폴 불법 처방(마약류관리법 위반)으로 2021년 4월 면허취소 사유인 징역 1년 4개월의 집행유예 2년형을 확정 판결 받았지만, 최근까지 진료를 본 것으로 확인됐다. 이영근 기자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피부과를 운영하는 의사 A씨는 2018년 32명에게 1118회에 걸쳐 프로포폴 총 1만 532㎖를 의료 외 목적으로 처방했다. A씨는 직접 유흥업소를 드나들며 수면장애를 앓는 여종업원들을 고객으로 유치했다. 결국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A씨는 2020년 1월 1심에서 징역 1년 4개월의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2021년 4월 형이 확정됐다. 1심 재판부는 “중독성을 심화시켜 병원을 계속 방문케 해 안정적인 매출을 올리려고 계획했다”고 지적했다.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의사가 마약류관리법 위반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을 경우 보건복지부 장관은 면허를 취소해야 한다. 그러나 A씨는 형이 확정된 지 2년 반이 흐른 지난 1일에도 진료를 하고 있었다. 그 병원 상담 직원은 “(A씨가) 스킨부스터 등 시술을 하며 프로포폴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A씨는 중앙일보에 “진료를 하고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면허취소 여부 등에 대해선 “말하고 싶지 않다”고 반응했다.


빼돌린 프로포폴에 여친 사망했는데…“해외에서 진료 중”


마약류 의약품 공급책 역할을 하다 적발되는 의사들은 계속 늘고 있지만, 면허취소 등의 행정처벌망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성형외과를 운영하던 의사 B씨는 프로포폴 12병을 몰래 갖고 나와 여자친구에게 투약했고 그 과정에 여자친구가 사망했다. B씨에겐 2021년 9월 면허취소 사유에 해당하는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 판결이 내려졌지만 2년이 흐른 지난 1일까지도 온라인상에서 진료·상담 광고를 계속하고 있었다. 실제 오픈채팅을 통해 상담 요청을 하자 B씨는 “현재는 해외에서 환자 진료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고, 한 성형외과를 추천하며 “내가 보냈다고 하면 잘 봐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정식 인터뷰 요청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논현동의 또 다른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 C씨는 고객 7명에게 의료 외 목적으로 40회에 걸쳐 프로포폴 5250㎖를 투약했다가 2019년 6월 1심에서 면허취소에 해당하는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형은 그대로 확정됐지만, 지난달 31일에도 해당 병원 홈페이지에는 C씨에 대한 소개가 게재돼 있었고, 병원 관계자 역시 “(C씨가) 현재 환자와 진료 상담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C씨는 인터뷰 요청에 “2년 전쯤 면허가 취소됐고, 사실 지금은 진료를 보고 있지 않다. 병원 직원이 잘못 말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보건복지부에 A·B·C씨의 정확한 의사 면허 변동 이력과 현재 상태 등을 물었지만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개인정보보호법 등에 따라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3일 오후 성형외과 전문의 C씨가 운영하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의원 간판(가운데). C씨는 마약류 관리법 위반으로 2019년 6월 징역 10개월의 집행유예 2년형을 확정 받아 면허취소 사유가 발생했지만, 최근까지 진료를 봤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영근 기자

허술한 감시망…3년 버티면 면허 재교부 기회도


전문가들은 먀약류 관련 범죄를 저지른 의사들이 이처럼 버젓이 환자들을 진료할 수 있을 만큼 면허취소 절차가 허술하고, 감시망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의료 전문 로펌 세승의 김선욱 대표변호사는 “금고 이상의 형이 선고되어도 사법당국이 보건복지부에 면허취소 사유 발생 사실을 신속하게 통보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면허가 취소되더라도 행정소송 등을 벌이며 시간을 벌거나, 면허 취소가 확정된 이후 무면허 상태로 진료를 이어가는 등의 꼼수나 불법도 많다. 제대로 관리나 감시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마약류 범죄를 저질러 한번 면허가 취소됐더라도, 3년만 지나면 다시 의사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의료법에 따라 심의를 거쳐 면허 재교부 신청을 할 수 있도록 정해뒀기 때문이다. 백종헌 국민의힘 의원실이 확보한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14~2023년 3월) 마약류관리법을 위반한 의사에 대해 면허취소 처분이 내려진 경우는 33건이고, 재교부 승인 완료 건수는 11건이었다. 2022년 한해 마약류 의약품 과다(오남용) 처방으로 적발된 병원 수가 89곳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의사인 마약류 사범에 대한 면허취소 비율은 미미한 수준이다.

반면 재교부율은 상당(약 33%)하다. 이에 대해 오상윤 보건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장은 “점점 면허 재교부 심사 기준을 엄격하게 보고 있어 재교부율이 낮아지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다수의 전문가는 “여전히 면허 재교부 심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있으나 마나 한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면허 재교부 승인 과정이 사실상 ‘셀프 심사’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달 16일 펴낸
「2023 국정감사 이슈 분석」

을 통해 “보건복지부는 의료인 면허 재교부를 심사하기 위해 7인으로 구성된 면허재교부심의위원회를 운영하는데, 대다수 위원이 전·현직 의사로 구성돼 공정성 시비의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영옥 기자

휘성 맞고 쓰러진 에토미데이트…마약류지정 수년째 “검토중”


한편에선 “마약류 의약품 관련 법에 사각지대가 많아 의사들의 일탈 행위를 오히려 부채질한다”(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장)는 지적도 계속된다. 마약류인 프로포폴과 비슷한 효과를 내지만 아직 마약류로 지정되지 않아 단속망을 피해가는 ‘에토미데이트’가 대표적 사례다.

전신마취 유도제로 사용되는 에토미데이트는 가수 휘성(본명 최휘성) 등 유명인들이 투약한 사실이 알려지며 덩달아 유명해졌다. 휘성은 2020년 3월 31일과 4월 2일 두 차례 에토미데이트를 투약한 상태로 쓰러져 있다가 발견됐지만, 경찰은 매번 별다른 조처 없이 귀가시켰다. 이후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7월 21일부터 처방전 없이 에토미데이트를 구매하는 사람에게 과태료 100만원을 부과하도록 관계법령을 개정했지만, 마약류로 지정하진 않았다.

2021년 3월 9일 가수 휘성인 마약류인 수면마취제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한 혐의로 재판을 받기 위해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에 출석했다. 휘성은 프로포폴과 유사한 에토미데이트를 두 차례 투약한 것으로도 밝혀졌지만, 에토미데이트는 마약류에 포함되지 않는 탓에 관련 부분은 형사처벌을 면했다. 뉴스1


그사이 오남용 의심 사례는 이어지고 있다. 천 원장은 “최근 마약류 중독 환자들을 상담해 보면 단속에 걸리지 않기 위해 프로포폴 대신 에토미데이트를 맞았다는 사례가 많아졌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가 만난 한 마약류 중독 환자 역시 “서울 강남의 병원들 중 의료 외 목적으로 에토미데이트만 전문적으로 놔주는 곳이 있다. 내가 아는 곳만 2곳 이상이다.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식약처에 따르면 연간 에토미데이트 수입량은 2010년 6만 3000개(앰플)였다가 프로포폴이 마약류로 지정된 2011년 17만 5490개로 2.8배 증가했다. 이후에도 수입량은 꾸준히 늘었고, 2019년부터는 매년 30만개 안팎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엔 32만 7000개가 수입됐다.

그러나 관련 기관과 국회 등은 해당 약물 오남용 논란이 일어난 지 수년째 결정을 내리지 못 하고 있다. 김영주 식약처 마약정책과장은 “지속적으로 에토미데이트 오남용 실태를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아직 마약류로 편입시킬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구 면허박탈 등 고려하고 잠재적 수요자 교육도 강화해야”


전문가들은 마약류 범죄를 저지른 의사들에 대한 제재 체계를 재정비하고 교육을 통해 직업 윤리의식을 제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마약 수사 경험이 많은 한 검사장은 “열심히 수사해 형사처벌을 받게 한 수사기관 입장에서 문제의 의사들이 다시 진료하는 걸 보면 헛수고를 한 것 같아 힘이 빠진다”며 “의사 마약류 사범을 대상으로 영구적으로 면허를 박탈하도록 하는 등 행정 처벌망을 더 강력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유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의사들은 당연하고, 잠재적 마약류 수요자를 대상으로도 오남용의 심각한 폐해에 대한 조기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중·신혜연·이영근·장서윤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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