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멈췄다…"바뀐게 없다, 교권 살려라" 10만 교사 외침

최민지 2023. 9. 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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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일을 '공교육 멈춤의 날'로 정한 4일 재량휴업에 들어간 세종시 한 초등학교 입구에 '수업권과 학습권을 지켜 주세요' 문구가 붙어 있다. 뉴스1

서울의 한 초등학교 3학년 담임인 강모 교사는 4일 오전 3학년 4개 반 모든 학생을 가르쳤다. 이날 학교 교사 28명 중 오전에 출근한 교사는 6명 뿐이었다. 강 교사도 오후 국회 앞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반차를 냈다고 했다. 그는 “두 반 씩묶어서 수업을 하다 보니 대면 수업은 힘들어서 영상 자료를 이용해 수업을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서울의 초등학교에선 교장, 교감, 보건교사 등이 한 학년씩을 맡았다. 병가를 내고 학교에 가지 않은 이 학교 2학년 교사는 “교장 선생님은 교과목이 아닌 공동체 예절 등을 주제로 수업을 했다”고 전했다. 그는 “학생들도 거의 학교에 나오지 않아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학교에 불이 꺼져 있어서 아이가 집으로 돌아왔다’고 항의하는 학부모 전화도 있었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월요일인 4일 대한민국의 학교가 멈췄다. 지난 7월 고인이 된 서울 서이초 교사의 49재에 맞춰 교사들이 ‘교권과 교사의 생존권 보호’를 호소하기로 약속한 이날, 전례없는 교사들의 ‘우회 파업’이 이뤄졌다. 형식은 자발적인 연가·병가가 주를 이뤘지만, 대부분의 학교 교사들은 직·간접적으로 집단 행동에 참여했다. 교육부는 호소문을 쓰고 징계 카드를 내거는 등 차단에 나섰지만, 하루의 교육 공백을 막을 수 없었다. 교육 당국에 협조적이었던 일부 교장들도 휴업이 아닌 단축수업 등의 우회로를 찾아 후배 교사들의 뜻을 받아주기도 했다.


사실상 하루 멈춘 학교


4일 서울 양천구의 한 초등학교에 마련된 교사 A씨의 추모공간을 찾은 추모객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뉴스1
이번 연가투쟁은 지난달 21일 초등교사 커뮤니티 ‘인디스쿨’에 올린 한 교사의 제안으로 시작됐다고 한다. “서이초 교사의 49재에 연가나 병가를 내자”고 제안하는 내용의 글이 교사 사회의 호응을 얻으면서 공교육 멈춤의 날로 확대됐다. 과거 교사들의 연가투쟁이 주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반정부 시위 성격으로 추진됐다면, 이번엔 특별한 구심점이 없이도 자발적으로 진행됐다. 학교장들이 재량 휴업이나 단축 수업 등으로 교사들의 의사에 맞춰 학사 일정을 조정한 것도 과거엔 없었던 일이다.

교육부는 이날 오후 5시 기준 38개 초등학교가 휴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휴업은 전체 초등학교(6286개교)의 0.6% 수준이지만, 교사 개인의 연가나 병가가 대부분의 학교에서 발생했다. 교육부는 연가·병가 교사 수는 공개하지 않아, 교사들의 참여율은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서울교사노조 관계자는 “지역마다 다르지만, 서울의 경우 대부분 학교에서 50~90% 교사가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휴업을 한 서울의 한 초등학교 관계자는 “사전 조사 결과 교사 49명 중 47명이 연가를 쓰겠다고 했다. ‘차라리 그만두고 다른 직장을 찾는다’고 할 정도로 교사들이 단호했다”고 말했다. 지방 학교의 참여도는 각 지역 교육청의 방침과 성향에 따라 편차가 있었고, 초·중·고 순으로 참여도가 높았다고 한다. 부산시교육청의 경우 초등학교 교사 9369명 중 1634명(17.4%)이, 경남도교육청은 1만2400명 중 1300명(10.5%)이 학교에 나오지 않은 것으로 추산했다. 이날 전국 13개 지역에서 개최된 추모 집회 주최 측은 참여 인원이 10만명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전국 초·중·고 교사가 50만명임을 감안하면 초등뿐만 아니라 중·고교 교원들도 상당수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교육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단축수업 예고했으면 학교 안 갔을텐데” 학부모 항의도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1일 “학교 상황에 따라 병합 수업이나 하교 시각 조정 등 탄력적인 학사 운영으로 안전한 학교 운영에 만전을 기해달라”는 타협책 성격의 공문을 보냈지만, 교육부는 “단축수업도 제재 대상”이라는 입장을 냈다. 이 때문에 휴업 대신 단축 수업을 택한 학교가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 휴업을 단축수업으로 돌린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장은 “오늘 29명 중 15명의 교사가 나왔다. 교장, 교감, 부장교사 등이 모두 동원돼 4교시 단축수업을 끝냈다”고 말했다.
서울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일을 '공교육 멈춤의 날'로 정한 4일 재량휴업에 들어간 세종시 한 초등학교 교실이 비어 있다. 뉴스1
교육 현장은 혼란스러웠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학교장이 정상수업 할 거라고 공지했고 아이들도 전원 출석했는데 교사들이 다 안 왔다. 아이가 ‘2교시에 한 번 꼴로 체육 선생님이 왔다갔다 하고, 학습지 나눠준 건 친구들도 금방 끝내서 한창 놀다가 집에 왔다’더라”는 글을 올렸다. 서울 초등 1학년 학부모 장모씨(41)는 “우리 집은 미리 체험학습 신청서를 냈는데, 맞벌이 가정은 어쩔 수 없이 아이를 학교에 보냈다더라”고 했다. 한 학부모는 커뮤니티에 “9·4 추모집회는 지지하지만, 단축 수업을 미리 공지했더라면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을 것”이라고 적었다.

교육부, 강경 대응→선처 선회

이날의 ‘멈춤’은 서이초 교사 사건 이후 교사들의 분노가 증폭되고 있다는 의미라고 교육계는 분석하고 있다. 교육부가 교권 보호 종합 대책을 내놓기는 했지만, 지난달 31일 이후 나흘 사이 교사 4명이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교권 침해의 심각성은 더 커지고 있다. 참석 인원 5000명으로 시작한 교사들의 주말 집회는 7차까지 진행되면서 20만명(지난 2일, 주최 측 추산)까지 불어났다. 9·4 연가투쟁을 이끈 한 교사가 개설한 ‘공교육 멈춤의 날 서명 집계’ 사이트에는 8만명이 넘는 교사가 연가나 병가를 낼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부가 예고한 징계가 현실화할 경우 교사들의 반발이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징계권을 가진 교육감들의 찬반이 엇갈려 이념 대립 구도가 심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교육부는 선생님들에 대한 징계 방침을 철회해달라”고 밝혔다. 한 지역 교육청 관계자는 “무더기 징계 사태만은 막아야 한다. 교권 세우기에 앞장서겠다고 말한 교육감들이 교사를 징계하면 결국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49재 추모일인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의사당대로가 추모 집회 참가자들로 가득하다. 연합뉴스

서울교사노조 관계자는 “교육부가 교권 침해를 막겠다며 내놓은 학생생활지도고시는 인력이나 예산이 불분명한 상태이고, 대부분의 교권 보호 법안은 여야 이견으로 통과가 미뤄지고 있다. 모두 반쪽 짜리 대책”이라고 비판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어제도 학생들이 싸워서 학부모 항의를 받았다는 동료의 얘기를 들었다. 한 달 동안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교권본부장은 “지난 7월 교총 설문조사 결과 전체 응답 교사의 99%가 본인이 감정노동자라고 느낀다고 밝혔다. 그간 무고성 아동학대, 무분별한 수업 방해 등에 맞서 부탁하는 것 외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교사들이 자신들의 무기력함을 감정노동자란 단어로 표현한 것”이라며 “법 개정에 앞서 ‘그저 존중 받고 싶다’는 교사들의 요구를 이해하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비판이 일자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밤 늦게까지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윤석열 정부는 교권을 확실하게 챙기겠다”며 “추모에 참가한 교사에 대한 징계는 검토하지 않겠다. 교사들을 징계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민지 기자 choi.minji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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