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의 인사이트] 내 얼굴에 눈이 두 개인 이유
인물 평가… 정율성 기념공원
홍범도·김좌진 흉상도 논란
좌우 반으로 갈려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 심화
편파·가짜 뉴스 퍼트리는
미디어와 유튜브도 문제
일본 오염수 투쟁 명분 잃은
야당 대표의 '방탄 단식'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에서
균형 잡고 바로 봐야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내 얼굴에 눈이 한 개다/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캄캄한 절벽이다/ 어디로 갔을까…(중략) 한쪽에만 눈이 달린 내가/ 두 눈 가진 너를 보고 병신이라 할 것 같다/ 부패한 수족관과 같은 TV 뉴스 화면에서/ 한 눈 가진 사람과 두 눈 가진 사람이/ 서로를 병신이라 우기고 있다/ 나는 울었다/ 그런데 내 눈물은 어디에다 두나/ 좌파도 우파도 아닌 내 한쪽 눈/ 어디로 갔을까/ 내 눈물은 어디에다 두나.”
호남 출신의 문정희(76) 시인이 계간 ‘문학나무’ 가을호에 게재한 ‘눈물은 어디에다 두나’라는 신작이다. 몇 달 전 80대 노 시인이 무릎을 탁 쳤다며 소개했던 시를 며칠 전 같은 호남 출신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 페이스북에서 다시 접하고 감탄이 절로 나왔다. 어쩌면 좌와 우로 갈라진 지금 시대를 이렇게 잘 표현했을까.
20대에 광주에서 신학교를 다녔고 5·18 광주민주항쟁을 겪었다는 소 목사는 이 시를 인용하며 “정율성 기념공원은 한쪽 눈으로 볼 때는 일리가 있지만 두 눈으로 볼 때는 아무래도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며 “그것을 강행함으로써 광주가 민주화의 성지가 아닌 좌파 이념의 이미지로 인각(印刻)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설령 그가 독립운동을 했을지라도 6·25전쟁에 중공군 일원으로 참전하고 팔로군 행진곡과 조선인민군 행진곡을 작곡했는데 국민 세금으로 기념공원을 추진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호남지역은 6·25 때 가장 많이 순교했던 곳이기도 하다. 정치인도 아닌데 이런 글을 쓸까 말까, 여러 번 썼다가 지웠다는 소 목사는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이런 글을 올렸을까 싶다. 2020년 광주광역시가 48억원을 들여 조성하겠다고 발표한 정율성 기념공원은 연말 완공을 앞두고 있다.
육군사관학교는 지난달 25일 봉오동·청산리 전투의 영웅 홍범도·김좌진 등 교내에 있는 독립영웅 5인의 흉상을 철거·이전하겠다고 밝혔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홍범도 장군을 겨냥해 “공산 세력과 싸울 간부를 양성하는 육사에 공산주의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되겠느냐는 지적이 있었다”고 했다. 홍범도 장군이 소련 공산당에 가입한 전력이 있어 생도들이 수시로 지나다니는 장소에 둘 수 없다는 것이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가 정권 따라 갈지자다. 독립투사가 다른 정부에선 전범(戰犯)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수십, 수백 년 전 영혼들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판이다. 윤석열정부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확증편향 현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모두가 빨강이라고 해도 파랑으로 보고 싶으면 파랑으로 보고, 가짜 뉴스라도 각자가 믿고 싶으면 진짜라고 믿는다. 이를 부추기는 것은 미디어다. 우파, 좌파로 갈라져 이념전쟁을 일으키고 자극적인 기사와 본질이 아닌 말초적인 내용으로 싸움을 부채질한다. 조회수가 돈으로 환산되는 미디어 생태계에 기생하는 유튜버들은 가짜 뉴스를 진짜인 양 포장해 퍼나른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핑계 삼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단식 투쟁을 하며 국민 선동에 나섰다. 그런데 국민 수준을 한참 잘못 판단했다. 2008년 광우병 사태를 겪은 대다수 국민은 이제는 가짜뉴스에 속지 않는다. 수산물 매출 급감 사태는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매출이 늘었다니 단식 명분이 무색하다. 턱밑까지 치고 올라온 자신의 대북 송금 의혹과 대장동 사업 특혜 의혹과 관련한 검찰 수사에 대비한 ‘방탄 단식’이라는 의혹만 커질 뿐이다.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해 놓고 차일피일 검찰 출석일을 미루는 모습에 국민은 신물이 날 지경이다. 내년 총선 때까지 후쿠시마 오염수 의혹을 정치 이슈화하려던 야당은 1주일도 안 돼 약발이 떨어지자 뻘쭘해졌다. 이 와중에도 거액의 코인 보유·투자로 제소된 김남국 의원에 대한 제명안을 부결시키며 ‘방탄 대오’를 과시하는 모습은 역겹다.
아무리 상대 진영이 마음에 안 들더라도 “공산 전체주의를 맹종하는 세력”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 “종북세력” 등으로 몰아가선 안 된다. 대통령이나 여권 인사들이 이렇게 정제되지 않은 강성 발언을 하는 것도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 보편적인 생각, 합리적인 상식이 통하지 않는 시대다. 한쪽 눈으로만 보면 중심을 잃는다. 균형을 잡고 제대로 보려면 두 개의 눈이 필요하다.
이명희 종교국장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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