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희망의 교회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아이들에 반찬 나눔… “너는 소중하단다”
지난 19일 저녁 인천 계양구 예수이룸교회(김진원 목사) 주방에 중년 여성 여섯 명이 모였다. 교회 가득 멸치 볶는 냄새가 입맛을 돋운다. 안경복 집사를 중심으로 백승은 김미숙 진향희 조순남 집사와 유지연 권사로 구성된 반찬 팀이 더운 날씨에 앞치마를 두르고 가스레인지 앞에 요리에 열중한다. 팀원들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힌다. 접시 위에는 멸치볶음 콩자반 같은 마른반찬과 돼지 불고기가 접시 위에 수북하게 쌓인다. 첫째·셋째 주 일요일, 예수이룸교회는 계양구에 사는 학생 10여명을 위해 반찬을 전한다. 주로 한 부모 가정이나 조손가정 아이들에게 간다.
전날부터 준비한 반찬이 박승호 안수집사와 이홍배 집사의 손에 전달된다. 한 꾸러미에 일주일 이상 먹을 분량이 담겼다. 이들은 차에 올라타 주소에 적힌 집으로 향한다. 문고리에 반찬 꾸러미를 걸어두고 다음 주소지로 출발한다. 도시락 어디에도 교회의 이름은 없다. ‘힘내’ ‘너는 소중해’ 같은 메시지가 도시락 위에 붙어 있다.
김진원(44) 목사는 “반찬을 받는 아이들은 교회에서 배달한 것인 줄 모른다. 우리도 주소만 알뿐 어떤 아이에게 가는지 모른다”고 했다. 김 목사는 “반찬 좀 준다고 교회 이름을 크게 박아서 붙여 놓으면 아이들에게 교회 나오라고 강요하는 것 같아서 일부러 교회 이름을 넣지 않았다”며 “기왕 주는 거 치사해지고 싶지 않았다”고 이유를 밝혔다.
교회 1층에 자리한 카페 ‘아크’는 지역 아이들을 품는 베이스캠프다. 기자가 찾아간 날도 지역 주민들로 보이는 손님들 사이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하거나 공부를 하고 있었다. 카페에 들어서면 나무와 노란빛 전구를 활용한 실내 장식이 눈길을 끈다.
‘선불카드 5만원 이상 충전 시 10% 추가 충전.’ 매대 한쪽에 선불카드 이용에 대한 안내 문구가 적혀 있다. 선불카드는 카페를 처음 시작하면서부터 도입한 제도다. 김 목사는 “매달 수수료를 내면서까지 선불카드를 활용하는 진짜 이유는 아이들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카페 아크에서는 인근 두 학교 교사들이 선정한 학생 10여명에게 분기마다 6만원씩 선불카드를 자동으로 충전해주고 있다. 반찬 사역과 마찬가지로 누가 혜택을 받는지 교회에서도 알지 못한다.
교회의 관심은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에게 한정되지 않는다. 시험 기간이 되면 SNS에 인근 두 학교 이름을 해시태그 걸고 무료 음료 이벤트를 진행한다. 이벤트는 늘 성공적이다. 채수빈 전도사는 “하루 500잔 넘는 음료를 제공하다 보면 일반 영업을 못 하는 것은 물론이고 직원들도 녹초가 된다”며 “그런데도 아이들이 기뻐하는 얼굴을 보면 힘이 난다”고 했다.
사단법인 월드바리스타협회(회장 김기화)의 공식 검정장인 카페 아크는 바리스타를 양성하는 교육 기관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인천예일고등학교 특수학급 학생들이 공식 수업으로 카페를 찾아 김 목사의 지도를 받고 있다. 김 목사는 최근 사회복지 공부를 시작했다. 발달장애 학생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적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는 “얼마 전 제 수업을 받은 발달장애인 학생으로부터 바리스타로 취업했다는 전화를 받았다”며 “커피로 인해 아이의 인생이 바뀌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본격적으로 해볼 계획”이라고 전했다.
2019년 1월 1일 창립한 예수이룸교회는 개척교회다. 충북 청주에서 부교역자로 사역하던 김 목사가 인천에 올라와 가족 4명 청년 몇 명과 함께 시작한 교회다. 4년 만에 재적 70명 평균 출석 인원은 60명 안팎으로 성장했다. 개척 직후 코로나19를 만났지만 오히려 이 기간에 인원이 늘었다. 청년이 전체 인원의 65%를 차지한다.
제직회 대신 26명의 리더 그룹을 만들어 교회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맡겼다. 지역 아이들을 돕는 사역뿐 아니라 고국 방문 선교사를 위한 자동차 대여 사역, 인천 계양구 26개 학교에 기도 모임을 세우는 사역, 미자립교회와 선교지를 위한 재정 지원까지 규모를 뛰어넘는 사역을 전개할 수 있었던 것도 리더 그룹의 결정 덕분이다. 다음 달이면 귀국 선교사들을 위한 선교관도 개관한다.
김 목사는 “우리 교회 1년 결산 규모가 2억원이 넘는다. 교회 규모를 생각하면 큰 금액”이라며 “돈이 많아서 나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교인들의 나눔에 대한 마음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했다. 김 목사는 “카페에 드나드는 분들 대부분 여기가 교회라는 사실을 안다”며 “카페를 오가며 본인은 교회에 안 다니지만, 자녀를 교회학교에 보내신 분들이 계실 정도로 입소문이 좋게 났다”고 했다. 그는 “폐지 줍는 어르신이나 택배 배달하시는 분들이 지나가면 어김없이 음료를 대접한다”며 “교회다운 친절을 베풀었을 뿐인데 손님들로부터 교회가 이래야 한다며 칭찬이 돌아왔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인천=글·사진 손동준 기자 sd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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