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가르칠 수 있는 용기

2023. 9. 5.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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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대학원의 한국교회사 수업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제가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학생들을 전쟁으로 내모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 같고요. 그렇다고 신사참배에 반대하다가 감방에 갇히고 고문당하는 것도 견디기 어려웠겠지요. 그러니 아마 일본이나 만주로 망명하여 숨어 살지 않았을까 싶네요." 대다수 학생이 나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교사는 그들의 순수한 영혼에 매혹되기도 하고, 그들의 도전에 중산층 전문인이라는 작은 탑이 균열을 일으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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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대학원의 한국교회사 수업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일제 말 교회가 박해받던 시절 기독교 지도자들의 대응에 대해 강의하고 있었다. 한 학생이 짓궂은 질문을 했다. “교수님이 그때 사셨다면 어떤 길을 택하셨겠습니까.”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제가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학생들을 전쟁으로 내모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 같고요. 그렇다고 신사참배에 반대하다가 감방에 갇히고 고문당하는 것도 견디기 어려웠겠지요. 그러니 아마 일본이나 만주로 망명하여 숨어 살지 않았을까 싶네요.” 대다수 학생이 나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 학생이 기말 리포트 끝에 편지를 썼다. “교수님께서 고난의 때 외국으로 도피하신다는 대답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이리가 올 때 양들을 버리고 도망하는 삯꾼의 길을 걸으시렵니까. 이런 자세로 어떻게 목회자를 양성하실 수 있습니까.” 훅 들어온 도전에 머리가 멍해졌다. 나의 견고한 세계가 구멍 나는 느낌을 받았다.

교육은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의 영혼의 만남이다. 영혼이 만나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한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 눈을 통해 서로의 영혼이 들락거린다. 교사가 용기 있게 자신을 열어 보이면 학생들은 교사와의 인격적 만남을 통해 그의 세계를 경험하고 그 세계로 끌려간다.

우리의 경험을 돌이켜보자. 수많은 선생님이 거쳐 갔지만 생각나는 선생님은 한두 분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이 가르쳤던 학과의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교실에서 불꽃이 튀는 순간, 교사의 영혼과 학생의 영혼이 만나는 순간, 일종의 초월을 경험한 기억만 남아 있다. 그 기억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교사가 학생에게 영향을 받기도 한다. 교사가 열어준 영혼의 틈으로 학생이 침입해 오는 것이다. 교사는 그들의 순수한 영혼에 매혹되기도 하고, 그들의 도전에 중산층 전문인이라는 작은 탑이 균열을 일으키기도 한다. 고통당하는 학생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 절망하며 그들이 보여주는 작은 희망에 찌릿찌릿 전율을 느낀다.

우리의 교실은 영혼들이 만나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역동의 장이다. 철로 철을 두드려 날카롭고 빛나게 만드는 대장간이다. 인격이 형성되고 파괴되기를 반복하는 옹기가마다. 인류 정신사의 샘물이 흘러가는 땅속 심연이다.

교실에서의 만남을 방해하는 저항이 있기 마련이다. 자기를 열어 변화하는 일은 떨리는 기쁨이면서 동시에 귀찮고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학생은 영혼의 교류가 가져올 위험에 대해 지레 겁먹고 본능적으로 자신을 방어한다. 교사에게 끌려가지 않으려고 반항하고 교사를 무시한다. 자기만의 잣대로 교사를 평가하고 때로는 거짓을 퍼뜨리기도 한다.

위험성을 간파한 교사는 자신의 지위와 성적을 주는 권한 뒤에 자신을 감춘다. 시간이 없다고 회피하며 학생을 통제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자칫 아이들의 영혼에 부딪혀 상처받을 것이 두려운 것이다.

학부모도 두려워한다. 자기 아이가 언제까지나 애완견으로 남기 원하는 미성숙한 학부모 말이다. 이들은 자녀들이 더 큰 인격에 끌려 자기 영향력이 축소될까 봐 끊임없이 잔소리하고 간섭하고 갑질하고 자신을 과시한다.

여기에 교육 당국도 가세한다. 선발과 배제라는 천박한 교육환경을 만들어 놓고 일제고사로 학생을 줄 세우려 한다. 교사들을 학교라는 괜찮은 곳에 취업한 생계형 인간으로 취급해 위협하며 찍어누르려 한다.

영혼의 만남을 소명 혹은 천형(天刑)으로 여기며 오늘도 피곤한 걸음을 내딛는 대한민국의 교사를 응원한다.

장동민 백석대 교수 (흥광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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