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대표적 기독교 사상가 우치무라 간조 간토대지진 때 자경단 활동 밝혀져 논란

장창일 2023. 9. 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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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표적인 기독교 사상가인 우치무라 간조(1861~1930·사진)가 1923년 간토대지진 후 조선인을 학살했던 자경단원으로 활동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 기독교계에도 논란과 혼란이 교차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우치무라 간조가 남긴 일기를 통해 알려졌으며 직접 학살에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자경단 활동의 핵심인 야간 순찰(야경·夜警)에 적극 참여하면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등의 유언비어도 믿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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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학살엔 가담 안 했지만 자경단 참여 경험 일기에 기록
홍이표(가운데) 일본 야마나시에이와대 교수가 지난 2일 서울 새문안교회에서 우치무라 간조의 자경단 활동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기독교 사상가인 우치무라 간조(1861~1930·사진)가 1923년 간토대지진 후 조선인을 학살했던 자경단원으로 활동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 기독교계에도 논란과 혼란이 교차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우치무라 간조가 남긴 일기를 통해 알려졌으며 직접 학살에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자경단 활동의 핵심인 야간 순찰(야경·夜警)에 적극 참여하면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등의 유언비어도 믿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내용은 홍이표 일본 야마나시에이와대 교수가 지난 2일 한국기독교역사학회(회장 이재근 교수) 주최로 서울 종로구 새문안교회(이상학 목사)에서 열린 학술 심포지엄에서 발표하면서 공개됐다.

이에 대해 민대홍 함석헌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그의 한국인 제자 중 김교신과 함석헌 등이 간토대지진을 전후로 도쿄에 있었는데 스승의 자경단 활동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없다는 점이 의아하다”면서 “100년이 지나 이런 일이 드러나는 게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우치무라 간조에 대한 칭송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앞서 홍 교수는 심포지엄에서 “우치무라 간조가 대지진 이후 조선인 학살에 대해 ‘적극적 긍정형’ 입장을 갖고 학살에는 냉소적 태도로 자경단에 참여했다”면서 “이 유형은 조선인 폭동설 등 유언비어를 진실로 믿는 사람들이었다”고 분류했다.

그의 일기에는 그동안 알려졌던 내용과 다른 이면이 드러난다. 조선인 학살에 앞장섰던 군대를 적극 지지하고 자경단에 참여한 경험담을 남긴 것이다.

“센다이 사단 제29연대 제3중대 제2소대 병사가 오늘 이마이관을 떠났다. 그들에 대하여 깊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백성에게 평안을 안겨 주기 위한 군대라고 생각하면 존경하지 않을 수 없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1923년 9월 22일)

“어젯밤 순번에 따라서 자경단의 야번(夜番)을 섰다. 우치무라 의학사(도쿄제대 의학부 출신 아들)는 콘고즈에(수도자들이 쓰는 지팡이)와 제등(자루가 달린 휴대용 등)을 들고 앞장섰고 노 선생(본인)은 효시기(딱딱이) 소리를 내면서 그 뒤를 따랐다.”(1923년 10월 5일)

학계에서는 이 일로 인해 우치무라 간조 자체가 지워져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서정민 일본 메이지가쿠인대 교수는 “우치무라 간조를 균형적으로 이해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의 업적 자체를 지워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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