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현의 이코노믹스] ‘성장 엔진’ 멈춘 중국, 국가주도 모델 이젠 안 통해

2023. 9. 5.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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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에 선 중국 경제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최근 월가를 중심으로 세계 제2위의 경제 대국 중국이 추락할 수도 있다는 위기론이 부상하고 있다. 실제 중국 경제는 성장률이나 실업률, 내수, 투자, 수출 등 대부분의 경제지표에 빨간불이 커진 것이 사실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중국의 성장률은 2020년 2.24%, 2021년 8.45%, 그리고 지난해 2.99%를 기록했다. 리오프닝이 본격화한 올해 성장률 전망치도 5% 내외여서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6% 달성에 실패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으로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는 데 반해 중국의 소비자물가지수와 생산자물가지수는 각각 -0.3%와 -4.4%로 후퇴해 오히려 디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만큼 내수가 얼어붙었다는 얘기다. 청년 실업률은 20%를 상회하고 투자 역시 3.4% 소폭 증가에 그치는 와중에 수출은 7월 기준 전년 동기 대비 14.5% 줄었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 디플레에 수출 줄고 실업 폭등
지방정부·국영기업 과잉 투자

가계대출 부동산 투기로 쏠려
‘내수중심 성장’ 정책 답보 상태

정부통제 증가, 민간 신뢰 약화
정치 불안정이 성장 발목 잡아

총체적 난국에 빠진 중국 경제

안동현의 이코노믹스

중국 경제가 본격적으로 성장을 구가한 시점은 덩샤오핑(鄧小平)이 집권한 1978년부터다. 개혁과 개방을 표방한 국가주도형 발전모형을 통해 이후 중국이 값싼 노동력을 활용해 저렴하게 생산한 물품을 미국이 소비해주면서 중국은 성장을, 미국은 저물가를 교환하는 공식이 정립되면서 중국의 성장률은 비등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추세는 1997년 덩샤오핑 사후에도 계속되어 2010년까지 지속적 성장을 기록했다. 그러나 당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8000달러에 육박하면서 중진국 초입에 들어섰던 중국은 이후 성장률이 뚜렷한 하강세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 중국경제의 부진을 단순히 코로나 사태 후유증으로 인한 단기적 현상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보다 구조적인 문제로 볼 것인가에 따라 전망이 달라진다. 최근 중국경제 위기설은 후자 쪽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이러한 중국경제 위기론에는 크게 두 가지 견해가 있는데 하나는 경제적 문제를 지적하는 반면 다른 하나는 정치적 문제를 지적한다.

강력한 내수 진작만이 활로

첫 번째 견해, 즉 경제적 요인은 마이클 페티스(Michael Pettis)나 폴 크루그먼(Paul Krugman)과 같은 주류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으로 기존 중국의 국가주도형 투자중심 성장전략은 한계에 달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내수, 특히 소비 중심 성장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경민 기자

덩샤오핑을 비롯한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한국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발전 모델을 연구해 이를 상당 부분 차용한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박정희 발전모형의 특징은 민간소비를 억제하고 저축률을 높여 이렇게 형성된 자본을 집중적으로 투자해 성장을 견인하는 것이다. 중국 역시 이와 유사한 방식의 성장전략을 좇았으며 한때 고정자산 투자가 GDP의 40%에 이를 만큼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했다. 이러한 투자중심 성장전략은 성장률이 고공행진을 할 경우 투자수익률이 자본조달 비용을 상회해 추가적인 성장을 견인하게 된다.

그러나 성장률이 하락해 투자수익률이 자본조달비용 이하로 떨어지게 되면 오히려 성장을 저해하게 되는 과잉투자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우리도 이러한 과잉투자 결과로 1997년 외환위기를 겪었는데 중국이 바로 이와 유사한 국면에 처해 있다고 볼 수 있다.

공교롭게도 우리가 외환위기를 겪은 1996년 1인당 GDP가 1만3400달러였는데 현재 중국의 1인당 GDP가 1만2700달러로 유사한 수준이다. 이럴 경우 성장의 중심을 투자에서 소비로 전환해야 한다. 인구 대국 중국은 이런 면에서 유리한 환경을 갖춘 것이 사실이고 최근 중국 정부가 내수중심의 경제성장으로 전환하겠다고 표방한 것은 이런 면에서 시의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인위적 금리 인하의 부작용

박경민 기자

문제는 아직 이러한 정책적 전환이 실제로는 답보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이를 엿볼 수 있는 것이 금리 수준이다. 중국은 인위적으로 시장금리를 낮추는 ‘금융억압(financial repression)’ 정책을 통해 정부의 재정지출을 늘리고 기업의 투자를 촉진해 왔다. 실제 홍콩대 석좌교수 첸지우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은 균형금리 대비 5% 포인트 이상 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추어 왔고 이러한 정책을 아직도 견지하고 있다. 투자수익률이 하락하면 투자를 축소해야 하는데 투자수익률이 하락하는 만큼 조달금리도 인위적으로 낮춰버리니 과잉 투자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저금리 정책의 최대 수혜자는 지방정부와 국영기업이다. 중국 지방정부의 무분별한 과잉투자는 이제 임계점에 달했다. 후베이성 형주시에서 막대한 자금을 들여 세운 관우 청동상 철거는 지방정부가 얼마나 예산을 낭비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국영기업 역시 저금리 정책의 최대 수혜자다. 첸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저금리 정책을 통한 부(富)의 이전이 국영기업의 경우 2016년 한 해만 1조2000억 위안에 달하는 반면 민간기업은 8000억 위안에 그쳤다. 상대적으로 민간기업보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국영기업에 자금 혜택이 주어지면서 자원 배분에 왜곡이 더 심화한 것이다.

절대권력 시진핑의 기업 옥죄기

최근 중국 정부가 내수 중심 성장전략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 이러한 움직임은 시진핑(習近平)이 집권한 2015년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2015년부터 가계에 대한 주택 담보부대출이 급증한 것이다. 첸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2014년 저금리로 인해 주택 담보부대출 차입자가 얻은 수혜가 2000억 위안에 불과했지만 2015년 5000억 위안으로 급증한 후 2021년에는 1조3000억 위안까지 치솟았다.

즉 내수를 촉진하기 위해 저금리 가계대출을 늘렸지만 대부분이 부동산 투기에 전용되어버린 것이다. 그 결과 민간소비 증가는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소비를 진작시켜 성장을 견인해 미국을 넘어서겠다는 중국의 전략은 시작부터 삐끗거리는 것이다.

두 번째 견해는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아담 포즌(Adam Posen)과 같은 정치경제학자들의 주장이다. 중국 정치의 불안정성으로 추가적인 성장을 담보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덩샤오핑 사후 유지되었던 집단지도체제는 시진핑의 등장으로 막을 내렸다. 공산당 혁명 원로를 아버지로 둔 태자당 출신의 시진핑은 덩샤오핑과는 달리 보다 교조주의적이고 원론적인 공산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이러한 절대권력의 등장으로 권위주의가 강화되고 반간첩법을 통해 기업감시가 심화하였다. 정보통신기술(ICT) 부문을 비롯한 신산업에 대한 통제권이 강화되면서 규제 면에서도 역주행하고 있다.

‘중진국 함정’에서 탈출 못 해

이런 면에서 포즌은 현재 중국은 경제적으로 ‘장기 코로나 사태 (economic long COVID)’에 처해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통제 및 간섭이 증가하면서 코로나 이전부터 이미 약화한 민간 섹터의 신뢰가 코로나 기간 도시봉쇄 정책을 겪으면서 더 악화하는 바람에 기업은 투자를 축소하고 가계는 저축을 늘리는 식으로 모두 안전만 도모하다 보니 경기부양책이 전혀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 두 가지 견해, 과잉투자와 정치적 불안은 서로 상이한 듯 보이지만 결국 중진국의 함정에 빠진 중국의 단면이라고 볼 수 있다. 과잉투자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성장의 축을 소비로 전환해야 한다. 미래 불확실성이 높을 경우 예비적 동기의 화폐 수요가 높아져 소비가 위축되는 만큼 정치적 안정이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하다.

그런데 때마침 권위주의적 정권이 들어서 오히려 불확실성이 높아졌으니 중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경제와 정치 양쪽 모두 불안정할 경우 정권의 정당성이 약화할 수밖에 없고, 이를 회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외부에 적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중국의 ‘대미 강경노선’의 배경이다. 마침 지난 40년 동안 중국이라는 호랑이를 키웠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미국 역시 중국을 견제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결국 미·중의 강 대 강 대치는 조속한 시일 내에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종합하면 중국 경제의 미래는 국가주도형 성장모형이 시장경제체제 성장모형으로 전환되는 변곡점에서 발생한 과잉투자와 정치적 후퇴를 어떻게 갈무리하느냐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 금융억압 정당화되려면 성장률 높아야

「 금융억압(financial repression)은 정부가 인위적인 저금리 정책을 통해 정부나 기업의 자본조달 비용을 낮추는 정책을 일컫는다.

정부의 재정이 열악하거나 산업 자본이 빈약한 경우 성장을 위해 금리를 시장에서 결정되는 균형 금리 이하로 낮춰 정부는 재정 소요자금을 저리로 조달하고 기업의 경우 투자수익률 대비 자본조달 비용을 낮춰 투자를 촉진하게 하는 방법이다.

결국 가계의 유휴자금이 제대로 된 이자를 받지 못하는 만큼 가계의 부(富)가 정부나 기업으로 이전되는 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이를 정당화하려면 국가의 부가 증대해 가계에 분배된 과실이 저금리로 인한 손실을 상회해야 하는 만큼 성장률이 높아야 한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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