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겨울의 행복한 북카페] 70년 전의 히스테리
“제길, 나는 이 나라를 사랑한단 말이야.”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오펜하이머가 하는 이 말은 평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에도 기록되어 있는 오펜하이머의 발언이다. 미·소 냉전의 핵심 인물이었던 조지 프로스트 케넌이 증언한 바다. ‘원자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가 1950년대 미국의 매카시즘 속에서 고초를 겪을 때 캐넌은 그에게 외국에 나가서 살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다. 오펜하이머의 대답은 간결했다. 그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말했다. 제길, 나는 이 나라를 사랑한단 말이야.
오펜하이머의 조국에 대한 사랑이 무슨 소용이었겠는가. 그 스스로는 공산당에 가입하지 않았으나 공산당에 가입한 경력이 있는 여성과 결혼을 했으며, 마찬가지의 경력이 있는 친동생을 두고 있었다. 전쟁 시작 전 손을 뗐으나 노조 문제에 관여하기도 했다. 세계 2차대전 당시 유대계였던 그의 적은 나치였고, 미국과 소련은 동맹이었으나 이 사실은 선택적으로 잊혔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선두에 서서 미국의 승전에 기여한 오펜하이머는 수년 후 매카시즘 광풍과 정치적 알력 다툼 속에서 청문회에 불려 나온다. 오펜하이머에 대한 고발장은 “사실을 왜곡해 보다 강력해 보이도록 말을 바꾸어 놓기까지” 한 것이었다. 그의 명확한 공적과 애절한 조국 사랑은 이념 논쟁 앞에서 지워졌다.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온 인물 중에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보안 담당자였던 존 랜스데일도 있었다. 1943년 당시 스페인에서 공산주의자들을 육군 장교로 임관하는 데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상관들에게 비방을 받은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최근의 히스테리가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 나는 1940년 당시의 공산주의자들을 현재의 공산주의자들과 똑같이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히스테리의 징후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1954년의 히스테리는 스크린에 생생히 재연되고 있다.
김겨울 작가·북 유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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