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디에나 있는 강훈
Q : 강훈이라는 두 글자, 참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이름입니다
A : 항상 다들 본명이냐고 물어봐요. 아버지께서 딸을 낳으면 누나의 이름으로, 아들을 낳으면 훈이라 짓기로 결심하셨대요. 생각해 보니 뜻을 제대로 물어본 적 없길래 오늘 여쭤봤더니 별 뜻 없이 예쁘게만 짓고 싶으셨답니다(웃음). 집안의 돌림자도 따르지 않고요.
Q :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건 2021년 〈옷소매 붉은 끝동〉 이후였죠. 91년생이라는 나이에 비해 꽤 늦게 알려진 것 같은데, 어떤 시간을 보냈나요
A : 우연히 연기를 시작한 이후 TV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뿐 연극영화과에 진학했고, 연극을 올렸고, 단편영화를 찍으며 어디서든 차분히 연기하고 있었어요. 막상 졸업하니 연기하고 싶어도 쉽지 않더군요. 혼자 프로필을 여기저기 돌리면서 고되지만 단단한 시간을 보냈어요. 삶의 자양분이 된 순간들이죠.
Q : 개인적으로는 2017년 수지의 10년 된 ‘남사친’으로 등장한 어느 소주 CF에서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지금보다 앳된 얼굴이었거든요
A : 아, 그건…(웃음). 그땐 광고 촬영이 처음이라 너무 정신없이 촬영해서 몸도 마음도 굳어 있었어요. 하루가 어떻게 흘렀는지 몰랐죠.
Q : 이후 작품으로 꽤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줬어요.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성덕임의 오빠 역으로 오디션을 봤지만 “친절하고 착한 느낌인데 어느 순간 서늘한 눈빛이 보였다”는 정지인 감독의 판단으로 충신에서 점점 ‘흑화’하는 홍덕로를 맡았죠. 이 말뜻을 이해했나요
A : 꽤 잘 웃는 편인데, 갑자기 정색하거나 가만히 있으면 엄마도 “무슨 일 있냐”고 물을 때가 있어요. 그게 서늘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배우로서 그런 느낌도 낼 수 있겠구나 생각했죠. 이후 제 안에서 서늘하거나 혹은 날 선 얼굴을 찾기 시작했어요. 누군가 또 새로운 나를 발견해 주지 않을까 기대하면서요.
Q : 얼마 전 종영한 〈꽃선비 열애사〉에서 한량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폐세손이자 파수꾼이었던 김시열의 온도 차도 마찬가지였어요. 반전 캐릭터 혹은 강렬하게 대비되는 감정을 품은 인물을 좋아하나요
A : 새로운 면을 끌어내줄 캐릭터에 끌리긴 해요. 극 초반에는 밝고 능청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다가 후반부에서 서늘하고 아픈 과거를 지닌 얼굴로 시열을 변주해 낼 자신도 있었고요.
Q : 친절하고 착한 얼굴 혹은 서늘한 눈빛. 스스로 어느 쪽에 가까운 사람 같나요
A : 밝아요. 고민이나 힘든 감정을 제 안에 오래 두지 않아요. 어두워지면 그 속에 갇혀버리는 느낌이 답답해서요. 스스로 너무 괴롭히면 힘들잖아요. 주변 사람에게도 늘 밝기만 한 사람이고 싶어요. 사람은 그렇게 살아야 맞는 거라 생각해요.
Q : 늘 밝은 와중에도 텐션이 가장 높아지는 순간을 꼽는다면
A : 아마도 치킨 먹을 때?
Q : 로맨스는 어땠나요. 지난해 〈작은 아씨들〉의 종호는 이성적인 판단력을 갖췄지만 진실에 맞서 싸우는 인경(남지현)에게는 마냥 따뜻하고 의지 되는 남자였어요. 실제 강훈도 이런 ‘남사친’ 같은 면이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잘 어울렸죠
A : 종호와 성격이 가장 비슷해요. 저도 그런 사랑을 꿈꾸고요. 무조건적으로 믿어주고, 지지해 주고, 어떤 부분에서는 단단한 조언도 건네는 종호 같은 남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연기했어요.
Q :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농구선수로 활약했어요. ‘인기로는 군산고에 강훈 없으면 기둥이 무너진다’며 너스레를 떤 적도 있죠
A : 초등학교 때까지는 확실히 인기가 많았습니다(웃음). 중학교 때는 머리를 빡빡 밀고 다녔어요. 3교시 수업이 끝나면 바로 운동하러 가야 해서 바빴고, 농구를 그만둔 시점에도 남고를 다녀서 인기를 느낄 시간이 전혀 없었어요!
Q : 〈슬램덩크〉에 비유하면 정대만이었다고요
A : 3점 슛밖에 쏠 줄 몰랐거든요. 그만큼 잘했다는 말이 아니라, 그거 하나로 경기를 뛸 수 있었어요. 농구를 늦게 시작한 편이라 처음부터 3점 슛 자세 하나라도 제대로 배우자 싶었어요. 한 우물을 열심히 판 거죠.
Q : 소년체전에서 동메달도 땄고, 그때 팀 내 득점 2위를 할 정도로 잘했는데 왜 그만뒀나요
A : 더 이상 키가 클 것 같지도, 실력이 늘 것 같지도 않았어요. 그러니까 어린 나이에 주제 파악을 잘했던 거죠(웃음). 뭐든 잘하는 편이지만 항상 중간까지는 해도 그 이상 못 가요. 농구를 그만두고 도전할 또 다른 직업을 몇 달간 고민하고, 부모님께 배우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Q : 배우로는 그 이상이 보이던가요
A : 계속 돌파해 보고 싶어요. 연기하다 보면 제게 없던 능력들이 하나씩 추가되면서 갈수록 재미와 욕심이 커져요. 다른 것에는 욕심이 별로 없는 편인데. 특히 대본 볼 때 계획하거나 상상했던 것이 아닌, 현장에서 저도 모르는 액션이나 예상치 못한 무언가가 표출될 때 쾌감을 느껴요.
Q : 지난 〈라디오스타〉 첫 출연 당시 엉뚱한 멘트와 예능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진한 얼굴로 김구라를 포함한 패널 모두를 ‘넉다운’시켰죠. 클립 조회 수도 129만이 넘었고요.
A : 솔직히 스스로 웃기다고 생각하죠 사람들을 웃기지 못하면 잠을 못 자겠어요. 행복하면 좋잖아요! 어디서든 웃기려 합니다.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웃음).
Q : 8월 18일 첫 방송된 〈택배는 몽골몽골〉에서 김종국, 장혁, 차태현 등 76년생 용띠 형들과 몽골로 택배 배달을 갔습니다. 혼자 열다섯 살이나 어린 막내로서 쉽지 않은 여정이었겠어요
A : 종국 형님의 유튜브 채널 ‘짐종국’에서 형들이 몽골로 간다길래 재밌겠다고, 꼭 보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제작진에게 연락이 왔어요. 〈런닝맨〉 출연 때만 해도 종국 형과 재밌게 촬영 했었는데 이번에 또 인연이 닿았죠. 고민 없이 하겠다고 했어요.
Q : 김민석 PD는 당신의 출연을 두고 ‘로또 맞았다’고 했습니다
A : 그저 형님들께 엄청난 사랑을 받았을 뿐이에요. 계속 챙겨주고, 어떠냐고 물어봐주고, 걱정해 주셨어요. 막내라 어려워할까 봐 그런 것 같은데, 원래 형들을 좋아하고 잘 따르는 성격이라 저는 재밌었거든요. 현지 음식이 입에 안 맞으면 형님들이 뚝딱 한식도 만들어주셨죠!
Q : 몽골에서 펑펑 울었다는 증언도 들었습니다
A : 저 힘들다고 오열하는 사람 아닙니다(웃음). 그냥 울기 직전이었다 정도? 제작발표회 때 재밌자고 그렇게 말씀하신 게 아닐는지. 잘 우는 편이긴 한데 힘들어서 울지는 않았어요. 가장 최근에 운 적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잘 울어요. 슬픈 걸 보면, 특히 혼자 있을 때 거의 ‘자동 반사’죠. 〈D.P.〉 시즌2를 보면서도 엄청 울었습니다.
Q : 강훈을 ‘덕질’하려면 영국 내셔널갤러리 특별전의 오디오 가이드를 들어야 한다던데요. 국립중앙박물관 홍보대사 활동은 어떤 재미가 있나요
A : 사극을 꽤 많이 해서 연락 주신 것 같은데, 국립중앙박물관 마니아들이 많은 축하를 건넸어요. 전시를 소개하고 주변에 초대권을 선물하기도 하는데, 나름 사명감으로 임하는 활동이에요.
Q : 9월 8일에는 대만 드라마 〈상견니〉 리메이크작 〈너의 시간 속으로〉가 찾아옵니다. 원작 속 모쥔제이자, 1998년으로 시간 이동한 준희(전여빈)를 짝사랑하는 인규 역에 강훈이 ‘찰떡’이라는 반응이 많던데요
A : 그런 부담을 느끼며 열심히 했어요. 원작은 일부러 촬영을 모두 끝내고 봤어요. 미리 보면 어느 순간 비슷한 느낌의 연기를 하게 될 것 같아서 아껴두었죠. 지금까지 운 좋게 좋은 작품을 만났지만, 인규만큼 해보고 싶었던 캐릭터는 없었어요. 어떻게든 내가 해야겠다는 열망이 오디션을 보며 점점 커졌고요. 인규와 결이 비슷하기도 하고, 제 안에 인규의 모습이 꽤 많거든요. 온전히 새로운 작품이라 생각하면서 만들어나갔습니다.
Q : 극중 음악을 매개로 타임슬립한다는 설정이죠. 오늘의 온도와 습도에 맞는 추천곡은
A : 잠시만요, 폰을 좀 뒤적여볼게요. 아, 슈퍼키드의 ‘그리 쉽게 이별을 말하지 말아요’. 나온 지 꽤 됐는데 몇 년째 들어도 질리지 않아요.
Q : 실제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언제로 가보고 싶나요
A : 후회 같은 건 하지 않는 성격이라 어느 때로 가도 상관없지만 엄마 아빠가 가장 젊고 예뻤을 때, 가장 돌아가고 싶으실 그때로 가보고 싶긴 해요. 계속 따라다니면서 두 사람을 지켜보기만 할래요. 상상만 해도 너무 소중하니까요.
Q : 강훈이 생각하는 ‘멋’이란
A : 누구에게든 똑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요. 강한 사람에게 약하고, 약한 사람에게 강한 사람은 싫습니다.
Q : 강훈이 가장 뜨거워지는 순간은
A : 촬영 들어가기 전까지 캐릭터를 연구하고, 구체화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딱 그 시간. 그때 저는 가장 치열하고 뜨거워요. 이 마음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일을 그저 ‘일’로 만들고 싶지 않아요.
추가 B컷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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